▲ 왕신연 시간강사
동양화과
“베니스 비엔날레는 유럽 상위문화의 사치스러운 한 지점이고 그곳에 참가하는 것이 문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프라이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아시아를 생각해 보면, 종래의 미술의 개념에서는 아트월드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그것이 하나의‘게임’룰처럼 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고 내가 일본인이며 아시아인으로서 그 무대에 있다는 것에 위압감을 느꼈습니다.” - 나카무라 마사토(中村政人, 1963~)
 
이것은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미술부분 황금사자상 수상자였던 일본작가가 수상경험을 회상하면서 한 고백이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미술계는 베니스를 바라보며 이런 ‘게임’에 열중하는 작가와 작품들로 넘쳐난다. 우리의 눈과 귀가 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한국화는 인기 없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되어갔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화 분야 작가들 또한 동시대에 인기 있는 ‘게임’의 룰들을 참고하면서 새로운 모색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한 ‘게임의 장’이 국제무대를 궁극으로 서열화 되는 것밖에 없다면, 과연 전통미술의 맥을 지키려고 하는 작가들은 이 침체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의 한 예를 일본의 전통을 대하는 자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교토에 있는 대덕사 취광원(聚光院)의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장벽화는 모모야마시대 최고의 화가였던 카노 에이토쿠(狩野永德, 1543~1590)가 그린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일본은 이토에 취광원의 별원을 설립하면서 내부장식을 옛 그림을 모사해서 채우지 않고, 동시대 작가에게 그 일을 맡겼다. 이 작업을 맡게 된 센주 히로시(千住博, 1958~)라는 수묵의 웅장한 폭포그림으로 유명한 일본화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5년에 걸쳐 자신의 작품으로 내부의 장벽화를 완성했다. 이렇게 해서 전통은 과거의 ‘무덤’이 아닌 현재의 ‘삶’속에 살아있게 되고, 일본화라고 하는 그들의 전통은 그 생명력과 존재이유를 획득할 수 있는 ‘場’을 하나 획득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자유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궁궐이 있다. 바로 창덕궁이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게임의 장’을 꿈꿔본다. 미술분야에서 이 궁궐은 무엇보다 6점의 그림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대조전(大造殿)과 희정당(熙政堂), 경훈각(景薰閣) 이 세 건물에는 1920년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김은호(金殷鎬, 1892~1979),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오일영(吳一英, 1890~1960), 이용우(李用雨, 1904~1952), 노수현(盧壽鉉, 1899~1978), 이상범(李象範, 1897~1972) 등 6명이 그린 6점의 대형비단그림이 벽화형태로 부착되어 있다. 2005년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지금도 일반인들은 건물외부에서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재 그림의 훼손 상태가 심각하여 대조전의 그림을 시작으로 보존처리작업과 동시에 원본의 모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창덕궁에는 이 모사본들이 설치될 예정이다. 만약, 모사본을 설치하는 대신 동시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작가 중 이 역사적인 작업을 감당할 만큼 역량이 뛰어난 작가를 선정하여 동시대성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부벽화를 설치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10년에 한번 씩 창덕궁 부벽화 작가를 선정하고 그 시기의 동시대성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바꾸는 일을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 새로운 게임의 장을 바라보며 전통과 어우러지는 동시대성을 고민하는 새로운 게임의 룰이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예산 편성 문제나 작가 선정의 문제 등을 생각하면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상상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미래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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