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대화] 손보미 소설가

지난 14일(목) 「산책」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거머쥐며 한국 문학계의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손보미 작가. 그녀는 단편소설 「담요」란 작품으로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손 작가는 등단 1년차에는「폭우」으로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계에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오해와 비밀로 인한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평이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손 작가만의 시선이 단숨에 주목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화려한 경력을 채워넣은 '무서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자리에서의 그는 "아직 내 문학 세계의 실체를 모르겠지만 열심히 쓰겠다"고 고백하는 풋풋한 문학 소녀의 모습을 보였다. 손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처럼 아직 무르익지 않은 문학 세계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 사진: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크레바스(crevasse)'의 세계 

이토록 빨리 대중을 사로잡은 '손보미'라는 문학세계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사람들은 결국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런 의심에서 촉발되는 불안감이라는 감정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를 반영하듯 손 작가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언뜻 보면 평온하지만 미세한 긴장이 흐르는 삶을 살고있다. 이들의 삶은 타인 또는 세계와의 비밀스런 '균열'을 내포하는데 이는 작품의 후반부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틀어진 관계, 혼자만 아는 비밀은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 때까지 서술자도, 주인공도 모르는 어떤 베일에 감춰진 채 밝혀질 결정적 순간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손 작가의 대표작「그녀에게 린디합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길 감독'은 이 세상의 모든 춤을 아우르는 작품을 찍고자 3년간 세계를 방황하지만 결국 하와이의 훌라춤과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아무런 논리 없이 교차편집된 난해한 다큐멘터리 '댄스, 댄스, 댄스'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에 다다르면 이 '댄스, 댄스, 댄스'란 허구의 다큐멘터리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두 남녀가 길 감독의 아내와 그녀의 불륜 상대를 암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댄스, 댄스, 댄스'는 손보미 작가가 생각하는 균열의 정체를 은유한다. 길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 폭로하고자 했던 관계가 여러 춤이 무의미하게 교차되는 대부분의 러닝타임 안에 숨겨져 있던 것처럼 언어도 그렇다는 것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애매한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같은 예술만이 아니라 사람이 전하는 모든 말도 포함된다. 손 작가는 이러한 언어의 특성이 "끌림이 있는 상대를 거부한다든지, 감정을 거부한다든지, 자신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렇게 작가는 '언어는 결국 말하는 이의 모든 것을 전달해줄 수 없다'는 불가능성의 명제를 선언한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모든 어긋남은 마치 눈에 덮여 평지처럼 보이는 계곡의 깊은 틈인 '크레바스'처럼 일상으로 위장한 채 누군가가 밟을 때만을 기다린다.  이런 손 작가의 믿음은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이를테면「육 인용 식탁」을 보자. 부잣집 아내와 결혼한 주인공 '나'는 '윤' 부부와 '한' 부부와 함께 한가한 교외로 피크닉을 나가기도,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오직 '나'의 아내만이 불만족스러워 보일 따름이다. 그녀가 자리에서 겉도는 이유는 모두가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 어느 날 밝혀진다. 그것은 '나'가 '윤'의 아내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는 것. '윤'의 아내는 울음을 터뜨리며 이를 인정하지만 '나'는 그 어떤 기억도 없다. 소설은 이렇듯 사태에 대한 어떤 확답도 내리지 않은 채 인물 간의 균열만을 선연히 내보일 따름이다. 손 작가는 수줍게 웃으며  "평소에도 많이 불안해하는 편이고 많이 걱정하는 편이다. 이런 성격이 소설적으로 형상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는 "이런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위해 영국의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의『깨어남』과 같이 신경증 환자들의 임상 사례들을 보여주는 책들을 자주 접했다"고 덧붙였다. 

자기기만의 폭로 

손 작가의 문학세계가 가진 이런 특징은 인물에 대한 담담한 관찰을 넘어 이들의 자기기만성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현대인들에게 계승된, 사생활과 비밀에 대한 소부르주아의 계급적 집착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작가의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위 '잘 나가는' 인물들은 화목한 가정이라는 중산층 신화에 자신의 모습을 끼워맞추려고 하지만 결국 이와 부합할 수 없는 저마다의 비밀을 가진다. 

이들은 누구일까. 손 작가에 따르면 '누구나' 될 수 있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이중적이고 '찌질'한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고싶었다"고 밝혔다. 이 경우 위에서 말한 관계의 미세한 균열은 감추고 싶지만 결코 감출 수 없는 대상이 풍기는 어떤 '악취'로 드러난다.
이제 아내와 그리고 몇 명의 남자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겠지. 그는 자신이 아내와 함께 연주하는 남자들의 얼굴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진심으로 그들이 별볼일 없어 보이기를 바랐다. 아니, 아니지. 그는 그 남자들이 누구보다 젊고 매력적이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중 「여자들의 세상」)

「여자들의 세상」엔 오직 아내를 위하여 전 여자친구와 '굳이' 계속해서 만나는  한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전 여자친구가 아내가 나가고 싶어하는 관현악단 대회의 관계자라는 사실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어느덧 '나'는 아내 또한 정기적으로 만나는 관현악단원과 부정을 저지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나, 공연 당일 오직 여자 단원들만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보고 안심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아내를 섣불리 의심한 데에서 동원되는 감정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낀 부정(不貞)에 대한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가 정말 아쉽다는 의미로 전 여자친구의 손등을 쓸어내린 것처럼 누군가가 아내의 손등을 쓰다듬을까봐 걱정하는 이중 잣대가 드러나는 것이다.           

손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과학자의 사랑」에 등장하는 '고든 굴렉'도 비슷한 유형의 남자다. 「여자들의 세상」의 '나'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어느 궤도에 오른 고든 굴렉은 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정성스럽게 들어주려 노력하는 가정부 '에밀리 로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지식인 남성의 비대한 자의식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었다. 작가는 이렇듯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인물들의 이면과 그들의 비밀이 지닌 허위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낯설면서도  친숙한 이런 인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어려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왔는데 그런 세계에서 목격한 문제들이 작품을 쓰는 데 기반이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오차를 끌어안기

관계의 미세한 왜곡, 사건과 인물 사이의 틀어짐. 손보미 작가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다. 작가는 이런 어긋남을「과학자의 사랑」의 등장 인물인 고든 굴렉이 중력 연구에 있어 해결하고자 하는 '100억분의 1이라는 오차'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고든 굴렉도 해결하지 못한 오차를 우리는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이 삶의 오차가 인간의 힘으로는 풀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에 산재하는 균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에 작가는 "이 오차가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닌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가정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어 가정과 연구를 모두 잃은 고든 굴렉이 결국 그녀의 가정에서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는 점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어느 정도 찾은 셈이다. 작가의 이런 증언은 비밀과 허위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윤리를 제시한다. 

…(중략)… 어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고. '우린 인간쓰레기예요'라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소. 다만 그 부부의 머리를 잠시 동안 쓰다듬어보았소. 그 작고, 동그랗고, 차가운 아이들의 머리를 말이오.
위 인용문은「담요」의 주인공 '장'이 그의 아들이 사고로 세상을 뜨기 전 덮고 있던 담요를 처음 본 놀이터에서 추위에 떠는 어린 부부에게 건네주고 난 뒤의 소회를 말한 것이다. 이 장면은 아들이 죽은 후 대상을 찾지 못하던 그의 사랑이 가장 낮은 곳을 향하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따뜻하게 담담하고 평이한 문장으로 그녀만의 세계를 전했다. "몇 년전만 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감사하고 신기하다"는 손보미 작가. 그녀는 "구체적인 작품 구상은 없지만 별 사건, 별 감정 없이 흘러가는 담담한 소설을 집필하고 싶다"며 홀가분한, 그리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차기작 집필 계획을 밝혔다. 인간 군상에 대한 그녀의 예리한 관찰력이 어떻게 형상화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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