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의 43주기 추도식이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43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전태일이 등장했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 씨가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 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라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나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최종범 씨를 죽음으로 내몬 삼성전자서비스를 사례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를 짚어봤다.
 
여전히 탄압받는 노동조합

노동조합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즉 노동3권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집단이며 그 설립은 헌법으로 보장돼있다.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노동자 스스로가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회사 측은 임금상승,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합법적으로는 노조설립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에 사용자 측이 불법, 편법적 수단을 동원해 노조 설립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삼성의 경우도 무(無)노조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 즉 근로자의 노동3권 행사에 대한 사용자의 방해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의혹만 나돌 뿐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삼성의 노조파괴 전략과 관련된 ‘2012년 S그룹 전략문건’을 공개했다. 그동안 삼성의 무노조 전략에 대해 수많은 불법, 편법 의혹만이 제기됐으나 구체적인 물증을 통해 실체가 알려진 것이다. 이번 문건에선 삼성이 노조의 결성 자체를 막기 위해 노조 설립 시도자에 대해서 불법적인 밀착 감시 및 개인정보 수집, 노조 방해를 위한 예비조직 활용, 어용노조 설립 등 온갖 불법, 편법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삼성전자서비스를 대상으로 노조 탄압이 이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 업체 노조 측은 평소 최 씨가 노조 활동 때문에 사측으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생전 표적 감사에 시달리며 징계를 위협받는 한편, 최 씨를 포함해 천안센터 노조원들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등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황은 전략문건의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해당 문건 및 노동부의 방관에 유가족을 포함한 야당과 노조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개발 속에서 노동권을 등한시했던 관행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며 “무노조의 부작용을 시정하고 바람직한 노사정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동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자행했나?

한편 일부 기업들은 직접고용의 부담을 회피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불법파견(위장도급)까지 저지르며 노동자들의 고용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도급’계약은 본사가 외부에 업무 자체를 맡기고 외부사업주는 스스로 노동자를 고용해 그 업무를 완수하는 계약이다. 이때 본사는 외부사업주의 노동자를 지휘할 수 없다. 반면 ‘파견근로’ 계약은 외부사업주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이 사용사업주(본사)에게 가서 업무 지휘를 받으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약을 말한다. 만약 본사와 외부사업주(협력업체)가 도급계약을 맺었음에도 본사가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지휘권을 행사했다면 이는 계약만 도급일 뿐 실질적으로 파견근로이므로 불법파견(위장도급)에 해당한다.

최 씨의 죽음으로 문제가 된 삼성전자서비스 역시 지난 9월 불법파견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됐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전산시스템과 업무매뉴얼을 제공하고 그들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지급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등 높은 수준의 업무간섭을 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간접고용 중 하나인 불법파견을 통해 사업주가 비용절감을 시도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의 하락, 고용불안 야기 등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부담을 떠넘기는 처사라는 점에서 문제”라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직원이었던 최 씨 역시 간접고용의 열악한 근무여건에서 고통받았다”고 밝혔다.

노동자 외면하는 고용노동부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에, 노사관계를 중재하는 노동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조직법 제40조에서 고용노동부가 노사관계의 조정, 노동자의 복지후생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노동자의 권리가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도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편만을 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노동부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여부에 대한 조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불법파견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전자서비스의 행동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업무상 특성이며 원활한 도급 업무 수행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노조와 야당은 이것이 명백한 불법파견이라는 입장이다. 본사에서 ‘익일 이후로 넘어가는 지정 건 금일 당겨서 처리 요망’과 같은 문자를 노동자들에게 직접적, 상시적으로 보냈기 때문에 사실상 업무 지휘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사 대상 센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필수적 사실조사를 누락하는 등 노동부가 ‘부실조사’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불법파견 제보 지역을 조사대상에서 배제하고 오히려 삼성에게 유리한 센터를 조사대상으로 포함했다”며 “조사가 진행되던 도중에 의도적으로 조사방향을 전환하는 등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부실수사였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노동부는 노조 무력화에 앞장선 삼성에게 지난 2009년부터 매년 노사상생협력 포상을 수여하며 3년간 정기 근로감독 면제, 대출 금리 우대, 신용평가 가산점, 세무조사 유예 등 많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한편 노동계에선 수상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노동부의 표창을 ‘기업 감싸기’라 비판하고 있다.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주임교수는 “정부가 기업중심의 사고를 하는 만큼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에 따라 공정하게 기업과 노동자를 중재해야 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부조차도 노동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또 다른 전태일과 최종범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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