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숭례문이 이번에는 부실 복원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8년 예기치 못한 화재로 불타버린 숭례문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눈물을 흘렸다. 까맣게 재가 된 숭례문은 그렇게 영영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해 6월, 숭례문 복구를 위해 발굴 조사가 시작됐고 문화재청은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정확한 고증을 거쳐 복원한다는 원칙하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숭례문 양측 성벽이 철거됐는데 인위적으로 바뀐 부분은 되돌리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져 조선 전기로 복원 시점이 정해졌다. 이후 5년 3개월의 시간과 3만 5천여 명의 인원이 투입된 대공사가 지난 5월 마무리되면서 숭례문은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완공 5개월 만에 80여 곳에서 단청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기둥에 1m 이상의 균열이 생기는 등 문제가 발생하며 복원 과정에 대해 논란이 일자 문화재청장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국보 1호 숭례문은 왜 다시 논란의 중심에 떠오른 것일까.
 
◇실험대에 오른 숭례문=이명박 정부는 숭례문 단청의 재료나 기법을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는 첫 사례로 삼았을 만큼 전통을 이으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소실 이후 사용 가능한 목재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고 추가로 필요한 목재는 조선시대 왕실이 사용했던 금강송을 사용했다. 기와 또한 공장제 기와가 아닌 수제 전통 기와를 사용했다.
 
하지만 6개월이 채 안 돼 총체적 부실 공사 의혹이 일었다. 우선 예산 분배와 관련해 재료비가 지나치게 적게 책정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안료와 아교, 목재 등의 재료비는 예산 총액의 6%인 13억 7천만 원에 불과한 반면 관련 영상물 제작, 전시관 보조금 등 홍보사업에는 24억 원이 쓰인 것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임기 내 숭례문 복원을 서두르느라 나무를 덜 건조시키는 우를 범했다. 일반적으로 목재의 건조기간은 3년이고 수분을 머금은 비율인 함수율은 18~20%인데 비해 문화재청은 1.5년의 건조기간을 거치고 함수율 기준을 24%로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기둥에는 여러 갈래로 갈린 자국이 깊게 생겼다. 기와와 관련해선 구울 때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변색과 탈색이 일어났으며 물 흡수율이 공장제보다 높아 동파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졸속행정 뿐만 아니라 전통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부족했음이 단청작업 진행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이 내세웠던 ‘전통 방식으로 짓는다’는 원칙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단청 복원과정에선 안료로 일본산 수간분채(水干粉彩)를 사용, 이를 접착제 역할을 하는 아교와 배합한 뒤 빛을 내는 호분을 넣었다. 주요 언론들은 단청에서 물감조각이 떨어지는 박락현상이 일어난 원인으로 조개껍질로 만든 흰색 안료인 호분(胡粉)을 꼽았다. 숭례문 단청작업은 녹색을 바탕색으로 칠한 뒤 호분을 칠하고 붉은색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바탕색인 녹색과 붉은색 안료가 겹치지 않게 해 위에 덧입히는 색을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두껍께 칠해진 호분이 박락현상의 원인이라는 게 단청작업을 총지휘한 홍창원 단청장의 공식입장이다.
 
이에 손연칠 교수(동국대 불교미술학과)는 “전통적인 작업과정에서 어느 기술자도 바탕칠을 할 때 호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호분을 숭례문 복원에 적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홍창원 단청장은 경복궁, 선암사, 부석사 무량수전 등에서도 호분을 칠한 사례가 있어 그 기법을 숭례문에서 되살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시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이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재했다.
 
단청 안료의 사용에 있어서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일본산 수간분채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보도가 나간 이후 국보 1호에 ‘일본산’ 안료를 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의 항의가 문화재청에 빗발쳤다. 하지만 복원을 담당한 측에서는 국내에서 당장 천연 안료를 대량 생산하기 어려운 실정에 일본산 안료의 사용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손연칠 교수는 “현재 일본이 동양에서 가장 질 좋은 안료를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수간분채’가 천연 안료는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간분채는 흰 흙이나 또는 하얀 조개가루에 화학적인 안료를 물들인 합성 안료다. 단청기술자인 북촌 불교미술 보존 연구소의 김한옥 선생은 “수간분채라는 재료는 숭례문 공사에서 처음 들어봐 이에 대해 뭔가를 언급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조차 생소한 재료를 사용해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남’의 대문이 된 남대문=재료의 문제보다 근본적인 부분은 ‘전통’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가 불충분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통문화대학의 한 교수는 “안료의 경우 문헌에서 대략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재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료를 만들 때 돌을 분류하는 과정, 불순물을 버리는 과정, 순수한 안료를 추출하는 과정 등 상세한 부분은 문헌만으론 부족하며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야 구현될 수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손연칠 교수는 이번 숭례문 복원사업에 대해 “단청을 시행한 시공사의 어떤 임원이나 직원, 단청기술자 역시 미술대학에서 채색에 대한 체계적인 실기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단청작업 시행 전 문화재청 관계자 3명은 일본에 견학을 갔다 왔는데 한 번의 견학으로 단청에 대해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문가의 부족으로 단청 보수작업에 허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복원사업에서 단청을 칠할 때 사용한 전통 아교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전문가도 많지 않다. 아교는 물감입자가 표면에 잘 고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김한옥 선생은 “요즘에는 프리졸이라 하여 아교를 대체해 쓰는 성분이 있다”며 “사람들이 막대아교라고 부르는 가락아교 즉, 전통 아교의 국내제작은 이미 40년 전에 단절됐고 이 재료는 안 써본 사람은 다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렇듯 전통의 맥이 끊긴 현실을 무시한 채 진행된 ‘전통 방식’의 복원사업은 결국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전통이란 단어는 얼핏 생각하기에 ‘옛 것’,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숭례문을 복원할 때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한다는 맥락에서 전통적인 복원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원형’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대학신문』 2013년 4월 7일자) ‘전통의 계승’으로 넘어오면 얘기는 조금 복잡해진다. 김한옥 선생은 “문화재는 그 시대 선인들이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를 상기해 그 시대의 건물에 가장 가깝도록 정성을 다해 복원, 보수를 해야 한다”며 “선인의 문화를 이해하며 복원해 전통의 맥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 교수는 “전통의 의미를 어디서부터 찾느냐가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무조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장인을 육성한다 해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뒷받침이 없으면 안 될 것”이라며 “생각하고 고민할 부분이 많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천연안료의 사용도 사실 국내에서의 생산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용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에 일본산 안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을 지켜나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이를 그대로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은 오랜 논의를 필요로 하며 이 과정에서 ‘전통’이 지켜질 수 있다. 뒤틀린 숭례문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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