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없는 일상, 상상할 수 있나요?=오늘날 카페 없는 거리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한 블록마다 기본적으로 하나 이상의 카페가 들어서 있다. 중심가 속 끝없는 카페 행렬은 ‘커피 시장에 불황은 없다’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존 가맹점에서 반경 500m 이내에는 신규 출점을 금할 정도다. 한국콘텐츠미디어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커피전문점 매장 수는 1만 5천개를 넘어섰다.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한 카페지만 이 공간을 한 가지로 정의내리긴 힘들다. 카페는 커피로 치자면 마치 ‘카페모카’ 같다. 우유, 설탕 시럽, 초콜릿 등 갖가지 재료가 한 잔에 섞여 들어가듯이 개인과 군중이 공존하고 사적인 일과 공적인 약속이 함께 이뤄지는 공간이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학교 근처의 카페들은 어떨까? 대학가에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공부하고, 조별 과제를 할 수 있는 ‘스터디 카페’가 활성화돼있다. 대학로 근처의 한 카페는 1층은 일반 커피전문점과 같지만 2, 3층은 각각 개인별 스터디룸과 그룹 스터디룸이 마련됐다. 아예 인테리어를 독서실처럼 꾸민 카페들도 있었다. 게다가 일부 카페에서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빌려주기도 했다.
 
키즈 카페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카페 한쪽에 마련된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부모들은 커피를 마시며 육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 역시 노인정을 대신해서 카페를 이용한다. 한 할머니는 “일부러 젊은 사람들이 찾는 카페에 가는 편인데 수다를 떨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활력을 얻는 것 같다”며 카페에 온 이유를 말했다.
 
다른 카페의 창가에선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에게 카페란 일종의 사랑방이었다. 한 아주머니는 “예전엔 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집 주인이 청소부터 음식 준비까지 도맡아 노력과 경비가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카페에선 커피와 디저트를 살 돈만 있으면 다른 준비 없이 친구들과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이전보다 더 많이 모임을 가지게 됐다”며 만남의 장소로서의 카페의 장점을 말했다.
 
시끌벅적한 무리의 뒤편, 카페 한쪽 벽면은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은 채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는 직장인들의 차지다. 그들에게 카페란 임시 사무실이다. 언론사에 근무한다던 한 손님은 “카페는 또 다른 기자실”이라며 “급한 일이 생길 경우 인터넷이 지원되는 카페에서 업무를 본다”고 이야기했다. 사무실이라는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직장인들에겐 큰 매력이다. 종이에 펜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던 한 손님은 “사무실이라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카페에 들어가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난다”고 말했다.
 
◇이제껏 이런 공간은 없었다=카페가 없었던 시절 사람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사람들은 흔히 카페의 역할을 하던 공간이 과거에도 있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각 시대마다 카페의 속성에는 차이점이 있다. 이기훈 교수(목포대 사학과)는 “다방과의 비교를 통해 오늘날 카페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방은 1920년대에 처음 들어왔다. 당시의 다방은 이국적 풍취의 실내장식에 고전음악이나 재즈가 흐르는 장소로 식민지시기 지식인과 예술인의 아지트로 사용됐던 공간이었다. 반면 그 시절 ‘카페’라 불렸던 공간은 여급이 나오는 술집으로 룸살롱이나 유흥주점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해방 후 1940년대에 들면서 다방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1950년대 들어선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쟁으로 피난온 문인, 예술가, 지식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이면서 점차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기훈 교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레지’가 있고 소위 말하는 ‘다방커피’를 마시는 다방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인 전화는 물론 공중전화조차 흔하지 않았던 당시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다방은 직장인들이 약속을 잡고 업무상의 만남을 갖는 공간이었다. 여급을 뜻하던 ‘레지’들은 서류를 맡아주거나 업무를 잡무를 처리하는 등 비서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는 ‘DJ’로 유명한 음악다방이 등장하면서 젊은 대학생들도 다방을 찾게 됐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현대 카페의 전신인 ‘커피 전문점’이 등장함과 동시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정학 교수(울산과학대 호텔외식경영전공)는 다방의 몰락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한계에 부딪쳐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다방은 세대별 문화의 산실로 불렸다. 젊은 사람들이 찾는 음악다방에서는 미팅을 비롯한 대학생들만의 문화가 싹텄고, 중년층이 찾는 다방들은 영화인이나 문학인부터 회사원까지 단골손님들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문화를 창출했다. 다방과 카페는 인테리어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테이블 사이의 파티션, 벽에 걸린 동양화, 짙은 색의 가구들은 다방이 어둡고 폐쇄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반면 커피전문점은 거리를 시원하게 보여주는 통유리 창문과 밝은 색의 나무 소재 가구들로 장식하여 밝고 개방적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색다른 매력의 커피전문점에 매료됐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커피전문점들을 밀어내고 스타벅스를 비롯한 오늘날의 카페가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에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카페 프렌차이즈 업체들은 ‘커피 한 잔 가격이면 뉴욕의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식의 홍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초기 카페들의 마케팅은 시작부터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우아한 분위기를 즐긴다는 인식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밥값보다 비싼 커피 가격으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는 ‘된장녀’라는 용어는 비싼 돈을 내고 ‘쓴 물’을 사먹는 카페 이용객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카페는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지하나 2~3층에 있었던 다방들과는 달리 카페는 1층에 입점해 매장 자체의 접근성을 높였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모임 등의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현호 교수(홍익대 실내건축학과)는 “여기에 노트북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와 무선인터넷 등 기능적인 공간 디자인 요소들이 갖춰지면서 카페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고 말한다.
 
◇제3의 공간으로서의 카페=카페는 카페테리아의 줄임말로서 ‘커피’와 ‘행위가 이뤄지는 장소’ 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카페는 19세기 레이 올덴버그가 제시한 ‘제3의 공간’과 연결지을 수 있다. 올덴버그는 그의 저서 「아주 좋은 장소(The Great Good Place)」에서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장소를 세 가지 공간으로 구분했다.
 
제1의 공간은 의식주 중 ‘주’가 이루어지는 가정이다. 제2의 공간은 ‘연출된 주거 공간으로 발전한 일터’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감각적 경험을 이용한 마케팅을 통해 대중적 시설들을 개인의 공간처럼 느끼게 하는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러한 '제3의 공간'의 특성으로는 크리스티안 미콘다의 논의를 참고할 만하다. 그는『제3의 공간』이란 책에서 제3의 공간이 지닌 요소들이 소개하는데 이를 카페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우선 ‘랜드마크’란 고객의 눈길을 끄는 것들로, 카페의 간판과 외양이 해당된다. 두 번째로 ‘몰링’이란 사람들이 공간구조를 빨리 파악하게 하는 요소로 내부를 비추는 통유리 등이 카페의 몰링 요소이다.
 
카페가 제3의 공간임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특징은 '콘셉트 라인'으로 업무, 공부, 모임 등 각각의 컨셉트들이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해준다. 허경옥 교수(성신여대 소비자학부)는 “카페는 어떤 것을 하는 공간인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카페에 가서 모임을 가지면 그곳은 만남의 장이 되고, 공부거리를 가져가면 독서실이 되며 노트북과 일거리를 챙겨가면 나만의 사무실이 된다.
 
문화평론가 김원 씨는 “카페는 문이 반쯤 열린 공간”이라고 밝혔다.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며 앉아서 자기가 뭘 하든지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처럼 제3의 공간이 갖춘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지녔기에 카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대표적인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 속 제3의 공간은 현대인들이 오늘날 가진 욕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제3의 공간 속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간섭과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이렇듯 대중으로부터의 소속감과 타인으로부터의 무관심이 공존하는 ‘모순된 공간’ 카페는 이를 가장 잘 투영하고 있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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