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의 지각변동을 관측하다
패권의 지각변동을 관측하다
  • 김유문 기자
  • 승인 2013.11.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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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나라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이때 주된 논쟁 지점은 해양생태계 오염 및 강행추진 문제였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외교적 쟁점까지 제기됐다는 것이다. 상하이로부터 500km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의도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해군은 북한 도발 억제를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굳이 중국을 향해 전진 배치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제주해군기지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초기지라는 주장이 나왔다. 비록 진위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중국이냐 미국이냐’가 우리에게 준 정치적 당혹감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외교를 펼쳐야 하는 것인가? 

해군기지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향후 우리나라가 군사정책이나 외교를 펼칠 때 미중관계는 중요한 구조적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난 5월에 본교 아시아연구소 산하에 설립된 ‘미중관계연구센터’는 국내 최초의 미중관계 전문 연구기관이다. 이 기관은 미중관계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외교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설립됐다. 『대학신문』은 미중관계연구센터 소장 정재호 교수(정치외교학부)를 만나 미중관계연구센터의 설립 배경 및 목표에 대해 들어보고, 미중관계연구센터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한다.

미중관계연구센터 소장 정재호 교수와의 대담
▲ 사진: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정 교수는 미중관계연구센터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며 “2020년대에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한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예측은 연평균 10%를 웃도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한다. 덧붙여 정 교수는 “중국은 양적인 성장률 외에도 13억 인구를 이용해 자생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선진 기술 수입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며 중국의 부상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설명했다. 이런 폭발적인 성장으로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자연히 현재 1위국인 미국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향후 양국 간에 패권경쟁이 일어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는 등 ‘미중관계’는 향후 세계 정치가 어떤 구도로 편성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취급됐으며, 미국과 중국 당사자들을 비롯한 각국에서 미중관계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정 교수는 “미중관계연구센터는 기본적으로 이런 국제적 맥락을 배경으로 설립된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중관계연구센터가 무조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사실을 전제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군사력에선 미국이 압도적이며 미중관계나 G2 개념은 단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강대국으로서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을 중국이 개도국의 지위로 외면하려는 것을 미국이 견제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미중관계연구센터는 특정한 입장을 지지한다기보단 예측 가능한 미래 상황들을 모두 고려한다”며 “중국이 2위로 남는 경우와 1위로 올라설 경우 각각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한국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다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미중관계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사안이지만 특히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중국의 세력 확장과 미국의 견제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미중관계의 양상에 따라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도 달라진다”며 우리나라 외교에 미중관계가 중요한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함을 강조했다. 따라서 미중관계연구센터는 미중관계를 연구함으로써 한국 외교를 둘러싼 세계의 판도를 면밀히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외교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정 교수는 미중관계연구센터를 구체적인 외교정책을 구상하는 정치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관점과는 선을 그었다. 정 교수는 “이 기관이 정부 부처처럼 직접적인 정책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진 않다”며 미중관계연구센터의 학술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군사 동맹국인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와 협력해야 할지를 제시하는 것은 이 기관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정 교수는 “가까운 나라와는 협력 기회가 잦은 대신 갈등도 빈번하다는 ‘근접성의 역설’이 우리나라 외교에 적용될지를 분석하고, 만약 그렇다면 대중, 대미 관계는 어떻게 변하며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등을 분석한다”고 말했다. 즉 미중관계연구센터는 미중관계가 우리나라 외교를 제약하는 메커니즘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이 연구는 정책가들이 외교 방향을 모색하는 참고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미중관계연구센터가 걸어온 길   

미중관계 전문연구기관이자 한국 외교의 지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미중관계센터는 설립 후부터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먼저 미중관계연구센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발간된 미중관계 연구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군사, 경제, 지식,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중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됐지만 ‘미중관계연구’ 자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한 작업은 없었다. 또한 이 기관에선 미중관계에 대해 영문 및 중문으로 발간된 연구들의 서지 목록을 작성하는 등 국내 첫 미중관계 연구기관으로서 향후 미중관계 연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미중관계연구센터는 위의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서지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미중관계연구론』이란 단행본 발간을 계획 중이다. 정 교수는 “올해 12월 11일 아시아연구소에서 단행본의 공개 발표회가 있을 예정”이라며 “발표회에선 ‘미중관계 연구의 평가’, ‘미국·중국·한국에서의 저작물 평가’ 등을 주제로 국내외 미중관계연구들을 돌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중관계연구센터의 첫 성과물인 『미중관계연구론』은 산발적으로 진행된 국내 미중관계 연구들 및 해외의 연구들까지 폭넓게 다루는 미중관계의 종합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으로 미중관계연구센터는 9월부터 매달 해외 미중관계 연구자들을 초빙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정 교수는 “미국과 중국 스스로가 미중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소개하고 싶었다”며 세미나 개최의 동기를 밝혔다. 미중관계에 대한 당사자들의 시각을 알아봄으로써 현재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나아가 앞으로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려는 것이다. 현재까지 세 번에 걸쳐 진행된 세미나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세미나에선 중국의 연구자들이 자국의 입장에서 본 미중관계를 논했다. 

첫 번째 세미나에서 중국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의 먼홍화 교수는 <중국의 관점에서 본 미국>이란 제목 아래 중국인들이 자국의 능력 및 미국의 행보를 파악하는 방식을 논했다. 그는 “중국인들이 아직 미국과의 상당한 군사적·경제적 격차를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이 부상하는 중국에 상대적인 위협을 느끼고 중국을 포위하려 한다”고 말했다. 즉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자국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평화발전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여론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먼홍화 교수는 이런 낮은 정치적 신뢰감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정부 스스로도 국제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주변국들과 협력적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 번째 세미나에서 중국 푸단대학교의 우신보 교수는 양국의 협력방안과 관련해 ‘신흥대국관계’라는 구체적인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흥대국관계’는 ‘세계화 속에서 상호 경쟁하는 한편 협력한다’는 개념이다. 그는 그런 관계를 위해 “중국이 미국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않으며 아시아에서 배타적인 영향력을 구축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주장했다. 두 차례의 세미나에서 중국의 미중관계 연구가들은 공통적으로 협력적인 미중관계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미중관계연구센터는 당사자들의 논지를 들어봄으로써 중국에 대한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중관계에 민감한 인도의 연구자를 초빙한 것도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려는 맥락이다. 세 번째 세미나의 발제자로 나선 인도의 콘다팔리 교수(네루대학, 동아시아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인도와 전략적 협력을 맺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양국이 인도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한 다툼’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연구센터의 청사진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정 교수는 “미국의 미중관계 연구가를 초빙해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 청사진으로 정 교수는 ‘의제 확장’을 꼽았다. 그는 “아직 설립 초기 단계라 정치, 경제, 지식,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이뤄지는 미중관계를 모두 다루기 힘들다”며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미중관계 제반을 다루는 전문연구기관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세기 국제정세의 조류에 현명히 대처하지 못해 나라를 잃은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21세기의 새로운 판도를 설계하는 미중관계는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미중관계연구센터가 미래를 위한 주춧돌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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