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축제 ‘지스타 2013’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의 칼바람 속에서 국내 게임업체들이 대대적으로 항의차 불참했음에도 역대 최다인 18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최대 규모인 1억 850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달성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이번 행사에선 게임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로펌 ‘김앤장’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로펌이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국내 게임 산업을 둘러싼 법적 규제와 해외 게임 시장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게임산업의 빛과 그림자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게임 산업은 기를 펴지 못했다. 게임 산업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부정적이었고 무단 복제, 복잡한 유통망 등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로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과 PC방의 확산, 스타크래프트 열풍 등이 연계되면서 한국 게임 산업은 온라인 게임 위주로 급속히 발전해 나갔다. 폭발적인 성장세가 10여 년간 지속되면서 온라인 게임을 이용한 e스포츠 종목이 탄생했고 만화, 소설 등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결합해 게임은 젊은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현재 한류 열풍의 중심에도 게임 산업이 위치해있다. 온라인 게임의 수출액은 게임 외 문화콘텐츠(영화, K-POP 등) 수출액의 5.7배나 되며 박근혜 정부는 영화, 드라마와 함께 게임 산업을 ‘창조경제를 이끌 5대 킬러 콘텐츠’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 산업이 몸집을 키우는 동안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 또한 늘어났다.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한 중학생이 게임을 못하게 말리는 어머니를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으며 이외에도 장시간 게임으로 인해 학업에 소홀해지거나 건강이 크게 나빠지는 등 게임 과몰입에 대한 사회적 병폐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게임으로 인한 부작용을 개인과 가정의 차원이 아닌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하게 됐다.

12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게임의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한 규제는 지난 2011년 ‘셧다운제’로 시작됐다. 셧다운제란 심야시간에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는 제도로,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경우 자정부터 아침 6시 사이에는 강제적으로 게임이 종료된다. 자정이 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게임이 종료된다고 해서 ‘신데렐라법’이라고도 불렸다.

셧다운제가 발의되자 취미 생활인 게임 이용을 국가가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발이 쏟아졌다. 아이건강국민연대 김민선 사무국장은 “셧다운제는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위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곧바로 청소년도 자기 결정권 및 행복 추구권이 있으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청소년 수면권을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우습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논란 끝에 재작년 11월부터 셧다운제가 시행됐지만 현재는 실효성 없는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은 규제 범위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온라인 게임을 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 게임 시간은 하루 15분 정도 줄었지만 이는 통계적으로 의미 없는 수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가에 의한 '악'의 규정

기성세대는 자녀들에게 해가 되는 것을 '사회의 악'으로 규정하고 격리하려 시도해왔다. 1960년대에 만화방은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불량만화’가 폭력과 범죄를 조장한다는 학부모들의 원성으로 결국 정부는 1967년에 밀수, 탈세, 폭력, 마약, 도벌과 함께 만화를 ‘사회 6대 악’으로 규정했다. 매년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 되면 풍속을 해친다는 미명 하에 만화책을 모아 불태우는 행사도 열렸다. 하지만 현재 만화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구세주로 떠올랐고, 인터넷 만화인 웹툰은 영화로 리메이크 될 만큼 국민적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국가에 의한 ‘악’의 규정은 1967년에 이어 2013년에 다시 나타났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4대 중독법(게임중독법)은 온라인 게임을 알콜, 도박, 마약과 함께 중독물로 분류하고 정부가 예방교육 및 치료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률안의 <제안 이유>에서는 ‘개인의 건강 저해와 강력범죄 발생, 청소년의 학습기회 손실 등 중독자의 가족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사회적 폐해가 유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뒤 ‘중독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폐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이에 반대하는 측은 4대 중독법이 개인에 대한 지나친 국가의 간섭이며 사회적 낙인이 초래하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인터넷문화콘텐츠협동조합의 4대 중독법 반대 성명서에는 ‘청소년들과 국민이 새로운 놀이문화에 빠질 때마다 그 놀이문화를 국가가 규제해야 하는가’라며 국가의 과잉 입법 행태를 비판했고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김성곤 사무국장은 “최근의 게임 규제가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켜 신작 게임 출시가 연기되거나 게임 개발을 포기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게임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하지만 4대 중독법을 지지하는 측은 해당 법안의 발의 목적과 게임 산업 위축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4대 중독법에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 조항이 없다”며 “게임 산업이 아니라 오직 전문가의 의학적 진단을 받은 ‘중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며 게임 업계를 고사시킨다는 표현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인화 교수(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는 4대 중독법이 단지 중독자를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게임의 문화적 정체성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지지 측을 재반박했다. 이 교수는 “1935년 나치 독일이 만든 뉘른베르크법은 단지 유태인에게서 독일 시민권을 박탈했을 뿐이지만 이후 유태인이 탄압받는 시초가 됐다”며 “4대 중독법이 시행되면 게임은 중독 물질이 돼 문화 콘텐츠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이는 앞으로의 규제를 정당화시킬 것”이라 지적했다.

▲ 삽화: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엇갈리는 시각, 엇갈리는 대접

국내와는 달리 게임 선진국에선 게임 산업에 대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분위기인데 이는 게임을 보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한다. 게임 산업이 앞서 발달한 미국 역시 총기, 폭행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게임의 폭력성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독유발 물질로 보기보다는 남녀노소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규제를 하기보다는 사회적 교육과 캠페인, 자율적 정화를 우선시 하고 있다.

또 미국의 경우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현상에 대해서는 이를 규제 대상이 아닌 가정에서 돌봐야 할 ‘양육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미국게임등급위원회(ESRB) 패트리샤 반스 의장은 "미국의 학부모들은 게임 중독을 의학적인 치료가 아니라 부모의 양육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게임 중독을 의학적인 중독으로 다루는 일부 연구결과가 발표되긴 하지만 주류 학계에서 다루는 연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게임에 대한 규제가 늘어 국내 사업 환경이 나빠지자 해외에서 국내 게임 기업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독일 NRW 연방주 경제개발공사는 지스타 행사장에서 한·독 게임산업 세미나를 열고 “독일은 문화 산업인 게임을 중독물질로 보지 않는다”며 “규제가 없는 독일에 온다면 해외진출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국내 게임업체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중국 역시 과거에는 외국 게임 기업이 자국에 직접 진출하는 것을 금지했었지만 최근 이를 허용하며 외국 게임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해외에선 게임 업계를 반기는 분위기라 국내의 규제 칼바람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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