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범선 교수조선해양공학과

흑인 노예는 중세기의 유럽 부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를 열고 1415년 북아프리카의 상업 도시 세우터를 점령한 후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타고 노예사냥을 시작하였다. 로마 교황 니콜라우스 5세의 정당화 칙령은 윤리적인 거리낌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후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시절, 담배 경작으로 인한 대 호황으로 흑인 노예는 더욱 급증하여, 독립 전쟁 직전 남부 인구의 3분의 1이 흑인 노예로 채워졌다. 흑인 노예 무역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기간에 걸쳐 가장 큰 수익을 낸 삼각무역의 한 축을 구성하였다.

노예의 이동은 아래 그림과 같은 노예선의 의해 이루어졌다. 갑판에 빼곡히 채워진 노예들은 기막히게 가지런하면서도 각기 다른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 섬세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느 뛰어난 설계 능력과 예술적인 감각까지 겸비한 엔지니어가, 본인의 뛰어난 기량과 솜씨를 한껏 발휘하고 나서 우쭐해 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 뛰어난 기량 덕에 항해 중 노예의 평균 20~30% 정도가 열악한 환경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엔지니어는 과연 도덕적인 가치로부터 중립적일 수 있을까? 주어진 업무에 본인의 지식과 기술을 발휘하는 본분만 다한다면, 그 결과가 오용되거나 비윤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더라도 그 책임은 일을 시킨 사람의 몫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심리학 실험 중 역사상 가장 끔찍하면서도 중요한 실험이 있다. 1963년에 스탠리 밀그램에 실행된 인간의 복종에 대한 실험이다. 두 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은 방 밖에서 문제를 내고, 다른 한 명은 방 안에서 문제에 대한 답을 하는데 진행자와 미리 짜고, 일부러 틀린 답만 계속 말한다. 그때 마다, 진짜 참가자는 점차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누르도록 요구 받는다. 물론 전기 충격은 진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가짜 비명만 들려준다. 전기 충격은 15V에서 450V까지 주게 되어있는데, 놀랍게도 참가자의 65%가 450V이상, 나머지는 300V까지 전기충격을 주었다. 진행자는 그저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었는데, 참가자들은 상당히 괴로워하면서도 450V까지 눌렀다. 진짜 참가자들은 왜 그 말에 복종하였을까? 바로 ‘책임’의 유무이다. “어떤 일이 생겨도 진행자가 책임진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450V까지 충격을 주는 참가자가 있었지만, “안에 있는 사람이 잘못된다면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무도 높은 충격을 주지 않았다. 실험을 마친 참가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로 한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어, 결국 실험참가자에 대한 ‘윤리강령’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실에서 실질적인 개발을 담당하고 있지만 본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요구 받을 만큼 직급이 높지 않은 엔지니어들이 많다. 이러한 엔지니어들이 설계 개발한 것들이 반사회적으로 사용된다면, 그들은 과연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들의 비난은 용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자신을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평생 괴로움에 시달릴지 모른다. 엔지니어들의 역할과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다. 반듯한 가치관을 확립하고, 본인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식을 가지고, 결코 노예선 설계도에 스스럼없이 서명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