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놀고, 고민하고, 사랑하면서 한 사람의 대학생활은 그럭저럭 지나간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누군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햄릿이 되기도 하고 파우스트가 되기도 한다. 캠퍼스 속 숨겨진 마법 같은 연극 무대의 안과 밖에서 배우, 연출, 기획 영역을 넘나들며 관악의 연극판을 이끌어왔던 신주훈 씨가 올해 졸업한다. 『대학신문』은 연극으로 대표되는 대학생활에 대한 그의 소회를 들어봤다.
 
연극으로 보는 대학시절 
 
   ▲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신주훈 씨는 입학 첫 학기 과선배가 기획한 창작극에 배우로 출연하며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됐다. 그해 인문대 학생들이 의례적으로 준비하는 외국어연극제(외연제)에 참가한 후 그는 직접 연극을 준비하고 상연해보자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학과 내 연극 동아리는 활동이 뜸한 상태였다. 2010년대엔 취업준비 및 스펙쌓기 외의 학생자치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연극 동아리를 통해 동기들 및 선배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고 싶었다”며 “그 결과 2008년 체호프의 <청혼>과 <곰>을 상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연출을 맡았는데 부족한 경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연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부재한 채 어떻게든 장면을 만드는 데 급급했다”며 “배우가 잘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단 기대에 못미치는 배우의 연기에 섭섭한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격렬히 싸우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배우들에게 화를 내라고만 지시하고 그들이 왜 감정이입을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의 교훈으로 “연출자는 배우가 잘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배역을 철저히 이해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 씨는 이후 연극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그리스 비극을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교내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한 것은 ‘스풀(스트레스 풀자고 하는 짓)’이라는 극단과 함께하면서다. 스풀은 학부생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극단으로 신 씨는 “자유롭게 그리고 즐겁게 연극하자는 극단의 특성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봄 스풀과 함께한 연극에서 배우로 출연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일본 희곡 <행인두부의 마음>이라는 작품에선 기획을 담당하게 된다. 배우와 연출자로서만 활동하던 그에게 기획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획자로서 그는 지원금을 알아보고 공연장을 빌리는 등의 행정적인 일을 도맡았고 장면마다 필요한 소품 및 무대장치를 파악하고 준비해야 했다. 그는 “한 마디로 총감독같은 직책이었다”며 “공연 당일엔 관객을 통제하는 등 시작부터 끝까지 연극이 원활히 상연될 수 있도록 감독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신 씨는 작년 ‘인문대연극동(인연동)’이라는 연극 동아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는 “기존의 외연제는 해당 학과의 언어와 작품을 선택해야한다는 제약이 있었고 특히 인문2 재학생들은 아예 연극을 접하기 힘든 구조였다”며 “인문대 전체 및 타대 학생들과 자유롭게 연극하길 바랐다”고 설립 취지를 밝혔다. 인연동은 작년 여름 연기 및 발성 연습을 가졌고 가을엔 신 씨의 연출 아래 배우들의 독백연극인 ‘모널로그’를 상연했다. 이때 과거의 연출경험이 도움이 됐다는 신 씨는 “예전 미숙한 연출의 교훈으로서 배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려했고 그들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다”고 말했다.
 
연극, 대학생활의 짐이자 해방구    
 
대학생활을 연극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마냥 즐겁고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막이 닫히면 그도 여느 대학생처럼 임박한 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졸업 후 진로문제도 그를 압박해왔다. 그는 “학기 중에 연극을 준비하면 기본적으로 시간을 많이 뺏기고 오롯이 학업에 집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며 “연극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항상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 씨는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었으나 결국 이를 작년에 취소하고 불문과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그는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았고 결국 그 일을  밀고나가고 싶었다”며 “희곡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바탕으로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고 향후 인연동의 연극활동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도 바쁜 학부생활 대신 연극을 선택하고 대학원 진학까지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신 씨는 “연극은 나를 이해하고 바꾸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배우가 등장인물의 언행을 관찰하기 위해선 현실에서 배우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배역에 대한 관찰 과정에서 역으로 배우 자신의 내면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3월 열릴 <갈매기> 공연을 연습하던 경험을 예시로 설명했다. 그는 성공한 소설가 역할을 맡았으며 그 배역이 ‘글쓰기 행위’를 느끼는 방식을 이해하고 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글쓰기에 대한 대사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다”며 “평소 나 자신이 글쓰기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이 배역과 동화되는 데 문제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평소 자신이 스스로를 필요이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 씨는 자신을 이해하고 바꾸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재학생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당장 해야할 일들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활동을 통한 소통이 아니라도 틀에 박힌 대학생활에 대해 돌아보고 자신만의 길을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찾으면 열정을 갖고 도전해볼 것을 제안했다. 현재 그는 인연동 회원들과 함께 봄에 있을 <갈매기>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연극과 함께였던 그의 대학시절은 이제 막을 내리지만 그의 연극생활은 변함없이 막을 열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