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한숭희 교수(교육학과)

▲ 한숭희 교수
교육학과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마음은 마치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마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늑대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합니다.

늑대 같은 세상에서 한 마리 양처럼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상식이 뭉개지고 조작되는 세상, 이십 퍼센트의 소수를 위해 팔십 퍼센트의 국민이 희생하는 세상, 근로의 본질이 훼손되고 창고대방출세일 상품처럼 땡처리되는 세상, 한 인간의 가치보다는 일원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여러분이 “코스모폴리탄 신(新)르네상스맨”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인간 문명이 구축해온 삶의 보편적 가치가 여러분 손에 의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서울대학교 교육의 강점 중 하나는 일종의 이론가적이고 공상가적인 기질을 길러준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틀 안에서의 방법을 개발하는 차원을 넘어 그 틀 자체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대안을 디자인합니다. 보상이 아닌 목적을 위해 일하고, 사적 이익을 넘은 공적 정의를 생각합니다. 믿음이 이익을 앞서갑니다.

서울대학교의 선배들은 나름의 시대적 믿음을 추구했고 그를 위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리더였습니다. 해방 후 나의 선배들이 독립과 자유, 그리고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위해 싸웠다면, 우리 40~50대 세대는 민주, 노동, 인권, 환경을 위해 거리로 나갔고 최루탄을 맞았습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여러분이 바로 그 위치에 섰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위해 촛불을 들며 세상에 외치려고 합니까?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참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들은 그것을 보이지 않는 미래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우리의 미래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 미래는 업(業)으로서 여러분 어깨에 얹혀져 있습니다. 지금 졸업을 하지만, 이건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졸업’은 아닙니다. 업(業)은 여러분 어깨에 놓인 소명이고, 그 소명을 졸(卒)하는 것은 오늘이 아니라 여러분이 정의롭게 믿는 가치가 실현되는 그날이 될 것입니다.

갈 길은 멀어보입니다.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불평등 양상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육은 사회평등화의 기능을 상실했고, 똑같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해도 누구는 기업을 물려받지만 누구는 사회 첫발을 빚 갚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복지를 외치지만 아무도 세금을 더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진 자들이 탈세와 병역 회피에 더 눈멀어 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에 목을 매고, 비정규직은 길거리에 넘쳐납니다. 종북몰이로 세상은 갈라졌고, 정치와 행정은 사회갈등을 부채질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새바람을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려야 할 때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단 한 번 사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회의 미래 가치를 위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이야말로 이 질문을 던지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나이를 먹고, 또 시간이 흐른 뒤, 아마도 역사는 2010년대 학번들의 족적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였고, 무엇을 했으며, 어떤 가치를 외쳤는가? 우리 사회와 역사에 의미있는 방점 하나를 찍기를 기대합니다. 오늘도 나는, 이제는 가지만 앙상하지만 푸른 봄날을 기약하는 내 창밖 감나무를 시린 눈으로 내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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