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기사를 쓸 책을 선정할 때 종종 선택된 책 중 국내서에 비해 번역서의 비중이 너무 높다고 지적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원작이 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거나 학술 가치를 인정받아 번역되는 경우가 많기에 기사화할 만한 번역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출판 시장에서 유통되는 번역본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번역서의 높은 선정 비율은 원작의 질적 우수성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자료를 보면 2012년 한 해 동안 출판된 도서 중 번역서의 비중은 25.7%에 달하고 이 중 어린이 도서를 제외하면 그 비중은 더 높아진다. 이처럼 ‘번역’은 우리 사회의 지식의 흐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번역서가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큰 비중에 걸맞게 번역에 대한 논쟁도 계속돼왔다. 한 예로 김화영 교수(고려대 불어불문학과)가 번역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원작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보다 번역가가 ‘자기식’으로 번역했다는 이정서 번역가의 비판을 들 수 있다. 이렇듯 학계에서 적지 않은 존재감을 차지하는 '번역'이라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먼저 데이비드 벨로스(미국 프린스턴대 번역과 문화간 의사소통 과정 책임 교수)의 『내 귀에 바벨 피시』는 번역 행위의 기원, 인류학 등 문화사적 관점에서 번역을 분석했지만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 예찬』은 전문 번역가의 입장에서 번역에 대한 오해와 비관적 시선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내 귀에 바벨 피시』는 번역이 원작과 번역본에 쓰인 언어의 변화에 기여한다는 주장에서부터 ‘번역이 원작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통념에 대한 반박 등 폭넓은 분석을 담고 있다. 번역자는 새로운 문법을 수입해 자국의 언어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번역이 도착어(번역본의 언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는 빈번히 사용되지만 스웨덴어에서는 사용 빈도가 적은 ‘말하다(he said 등)’가 영어책이 스웨덴어로번역되면서 스웨덴어 문법에 영향을 끼쳤다. 번역이 도착어의 어휘나 문법을 변화시키는 현상에 대한 평가는 ‘번역을 통해 언어가 풍성해진다’는 입장과 ‘번역이 언어를 파괴한다’는 입장으로 갈린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에 대해 저자는 “‘혜택’이나 ‘피해’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번역과 언어의 관계에 대한 가치 판단이 ‘모국어가 번역어의 계층구조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새로운 어휘와 함께 도착어 문화에 유입된 대상에 개인이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는 번역본이 원작을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의 근거로 문학사에서 일어났던 번역 사건(원본을 번역본으로, 또는 번역본을 원본으로 포장한 사건)을 든다. 수십 년간 유럽 북서단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고대 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간주됐던 『핀골, 고대 서사시 여섯 권』이 제임스 맥퍼슨이라는 이류 시인의 시로 밝혀졌다. 또한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알려졌던 『포르투갈 수녀의 편지』는 3세기 동안 독자들을 매료시켰지만 원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번역본과 원작을 구분할 수 없었던 이 사건은 번역본과 원작에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통념을 반박하는 증거가 됐다.

한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영역(英譯)하여 “스페인 걸작 문학을 영어로 가장 훌륭하게 옮긴 책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번역가 이디스 그로스먼은 『번역 예찬』을 통해 번역에 대한 불신이나 평가절하에 대해 항변한다. 그는 책 전체에 걸쳐 “번역가는 작가”라고 힘주어 말한다. 번역가는 원작을 읽는 독자이며 동시에 그 내용을 새로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필자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독자가 읽는 번역본은 번역가의 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자는 제2의 저자라고 할 정도로 독자에게 큰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번역의 존재감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독자들은 소위 말하는 ̒스타 번역가̓가 아니라면 번역가 이름에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문학 평론가들조차도 번역에 대해 ‘훌륭하다’거나 ‘매끄럽다’는 식의 언급에 그치는 세태가 이를 반증한다. 이디스 그로스먼의 표현대로 “번역가는 마치 어떤 익숙한 풍경의 일부인 듯” 여겨지고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그가 일하는 미국 출판시장이 번역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문제의식을 전개한다. 미국은 출판 도서의 약 3%만을 번역서가 차지하는데 저자는 이런 미국 번역출판의 경향을 번역에 대한 불신과 외부 세계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학교에서 외국어 교육이 축소되고 언론사가 해외 뉴스 보도의 비중을 줄이는 미국의 현실을 지적하며 미국인들의 편협성을 비판하고 그 연장선에서 번역서의 비중이 낮은 이유를 해석한다.

이디스 그로스먼이 미국 출판시장의 적은 번역서 비중을 걱정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번역서의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만큼 국내 번역가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출판 시장 내 번역서의 높은 비중도 번역에 대한 신뢰나 외부 세계에 대한 많은 관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외국 시장의 반응을 바탕으로 흥행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 저렴한 번역비용으로 신속하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이렇듯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번역서 의존 현상은 ‘질 낮은 번역서’의 원인이 되고 그 결과 번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을 낳게 될 위험이 있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책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번역가들을 “인간의 오만에 대한 바벨탑에서의 벌을 극복하고 인간들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들”로 표현했다. 저자와 독자 사이에 묵묵히 다리를 놓던 번역가들의 이 책 두 권은 번역의 중요성을 환기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번역 예찬
이디스 그로스먼 저 ㅣ 공진호 역
현암사 ㅣ 200쪽 ㅣ 1만 2천원
▲ 내 귀에 바벨피시
데미비드 벨로서 저ㅣ정해영 외 역 
메멘토 ㅣ 488쪽 ㅣ 1만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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