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주경철 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36쪽 l 2만원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의 산살바도르 섬에 발을 디딘 순간 세계는 하나의 역사적 흐름에 합류했다.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을 가르던 바다라는 장벽이 서로를 연결해주는 통로로 변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사가 하나로 통합된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세계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는 근대적 세계의 첨병 역할을 한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게 된 내면적 동기를 밝히며 그가 ‘중세적으로 사고했던 인간’이라고 결론짓는다.

콜럼버스의 내면적 동기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다. 실제로 콜럼버스는 출세욕, 명예욕, 재물욕이 강했던 인간으로 보인다. 그는 대서양 항해의 대가(代價)로 스페인의 왕에게 귀족 지위와 이후 발견되는 땅에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한 일정 지분을 달라고 했으며 심지어 자기 아들을 추기경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신대륙에서 금광을 찾는 데 집착했던 모습에서도 그의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서양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미지의 바다였다. 그가 대서양을 건넌 동기는 돈과 명예에 국한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주 교수는 그의 종교관에서 찾아냈다. 콜럼버스는 강렬한 신앙심을 지녔던 기독교 신자였으며 모든 대상을 기독교 사상의 틀에서 바라 본 사람이었다. 그는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독해 방법론을 공부해서 성경을 독파했다. 또 그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 당시의 여러 고전을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지리적·과학적 지식을 축적했다. 이를 통해 그는 기독교 신앙과 당시의 지식이 결합된 독특한 세계관을 갖게 됐다. 바로 “에덴동산은 현존하며, 대서양 건너 아시아 동쪽 끝에 그곳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콜럼버스는 세계의 종말이 150년 정도 남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자신의 소명은 최후의 순간이 도래할 때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할 태초의 에덴동산을 찾는 것이라고 여겼다. 콜럼버스에게 대서양 항해는 일종의 종교적 순례였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콜럼버스의 중세적 사고방식에 대한 연구가 당시 유럽인들의 일반적 사고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즉, 모든 대상이 성경에 서술돼있는 방식으로 현실에 존재한다는 중세적 사고방식은 당대까지 이어지던 유럽의 기독교 전통에 의해 유럽인들 대다수가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합리적 ‘근대’로의 이행에 ‘중세’의 종말론적 신비주의가 원동력이 됐다는 사실은 콜럼버스의 예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렇듯 이 책은 콜럼버스의 심성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전작 『대항해시대』에 이어 유럽인들이 왜 그토록 아시아로 향해 모험을 떠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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