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낮잠을 자거나 세뇨리따를 외치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흔히 연상할 수 있는 멕시코의 이미지가 형성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멕시코는 300년가량의 스페인의 식민 통치와 독립 직후 혼란스러운 정치 변동을 연달아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멕시코 예술가들의 최대 관심사는 멕시코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다. 이달 16일(일)까지 서울대 모아미술관에서 열리는 ‘OUTSIDE-IN MEXICAN CONTEMPORARY ART’전에선 벽화운동 이후 멕시코의 정체성을 탐색한 오아하카(Oaxaca) 지역 예술가들과 벤하민 도밍게스의 작품들이 2개 섹션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첫 번째 섹션에선 ‘멕시코의 심장’으로 알려진 오아하카 지역 출신 작가들을 다룬다. 오아하카 지역은 고대 유적이 잘 남아 있고 멕시코 원주민 토착 문화가 숨쉬는 지역이다. 전시된 37개의 작품들은 스페인의 식민지 문화, 벽화운동, 현대 미술 수용기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멕시코 미술사의 결과물이다. 20세기 초에 유행한 벽화운동은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한 농민혁명에서 시작된 민중예술이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혁명정부는 갈수록 보수화되고 멕시코에도 자본주의 질서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디에고 리베라와 같은 벽화운동의 선구자들이 작고하고 서구 열강의 추상미술이 들어오면서 벽화운동은 동력을 잃었다. 이에 오아하카의 젊은 미술가들은 외국 곳곳에서 새로운 미술 사조들을 접하고 돌아와 지역색을 반영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 푸른 천사, 2000, 100X75cm, 리넨에 유화
사진제공: 모아미술관

로돌포 모랄레스의 「푸른 천사」에는 푸른 옷을 입고 하얀 꽃을 든 네 명의 원주민 여인이 유화 물감으로 소박하게 그려졌다. 그 뒤로 꿈속을 떠다닐 법한 천사가 희미하게 손짓을 보내며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는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천사를 토속적인 원주민의 이미지와 병치하고 있는데, 여기서 격동적인 역사 속에서 고된 노동으로 고통받던 멕시코 여인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 어린 시선이 드러난다. 반면 크리스핀 바야다레스의 「4분의 3박자」는 기하학적이고 불규칙적인 추상을 사용하고 있어 여인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앞의 작품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는 사실적이고 서술적인 기법을 활용하던 벽화운동이 쇠퇴하면서 점차 추상적인 화풍으로 옮겨가던 흐름을 반영한다. 작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시장의 활기찬 모습에서 위로를 받았으며 그 기억을 이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했다. 불규칙하게 구획된 형형색색의 사각형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멕시코 시장의 노점들을 보는 듯하다. 전신줄처럼 줄줄이 그려진 붉은 선들은 시장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춤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 4분의 3박자, 2012, 120X120cm, 혼합
사진제공: 모아미술관

두 번째 섹션에선 벤하민 도밍게스의 17개 작품들을 보여준다. 도밍게스는「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을 토대로 한 20개 연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는 멕시코의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궁극적 목표를 다른 예술가들과 공유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표현 기법을 사용했다. 스페인이 바다를 지배하던 16~17세기 유럽은 빛을 활용한 대조와 과장된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이 유행했으며 이는 멕시코의 건축과 미술에도 주입됐다. 초기엔 다른 예술가들처럼 추상을 고수했던 도밍게스는 국립 부왕청 박물관에서 일할 때 식민지 시기 예술품을 접한 이후 바로크 양식을 수용해 차별화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는 동양적인 의복과 색채를 서양의 고전적인 방식에 구현해 미술사적으로도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이는 식민지 조국이 겪은 상처도 멕시코 정체성의 일부로 포용하는 동시에 오랜 기간 멕시코가 문화를 창출할 기회를 단절시켰던 유럽계 예술을 비꼬는 이중적 성격을 함의한다. 「공중 부양」에선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양 황실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의복은 나체인 아래쪽 사람을 어설프게 덮고 있다. 황금빛 도포를 걸친 나체는 검은 배경과 강하게 대조돼 과장된 느낌을 준다. 늘어진 붉은 천은 공중에 떠있는 사람이 죽어서 피를 흘리는 것 같다. 관람객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팔을 뒤틀고 있는 아래쪽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 공중부양, 2003, 137X157.5cm, 캔버스에 유화
사진제공: 모아미술관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다양함’이다. 이는 아픈 역사를 예술로 승화하며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한 멕시코 현대 미술가들의 수많은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전시회는 32개 주의 광활한 멕시코 일부 지역의 미술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품들로 가득한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면 멕시코 현대 미술에 담긴 역동성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얼마나 어려운 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싱가폴, 인도네시아, 중국에서 이어진 아시아 순회전의 마지막 순서로, 따로 전시됐던 두 섹션을 동시에 접할 수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자. 멕시코의 과거는 그들의 손으로 쉽사리 그릴 수 없었지만 멕시코 당대는 그들의 붓 아래 계속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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