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식 편집장

이맘때면 대학가는 졸업과 입학으로 분주합니다. 특히 팍팍한 수험생활을 마치고 자유를 만끽할 준비를 하는 새내기들로 학교 전체가 봄기운으로 들뜨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대학가 곳곳에선 씁쓸한 소식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24일, 고려대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 사람’이 학생회관에 걸어뒀던 현수막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수막엔 ‘게이·레즈비언·바이·트랜스젠더의 입학과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축하 메시지뿐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각, 이화여대에서도 이화성소수자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에서 게시한 6색 무지개 현수막(6색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상징임)이 사라졌습니다. 현수막을 걸어뒀던 줄이 날카로운 것에 의해 잘려있는 등 여러 가지 정황상 동일한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해 이뤄진 행동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한 번의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사진전의 작품을 훼손하고, 강의료 인상과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시간강사의 농성 텐트를 짓밟은 것도 모자라 수많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찢고 불태우는 등 지난 해 수없이 많은 ‘테러’ 행위가 대학가에서 자행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1년간 일어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안타까운 이유는 이 모든 사건이 ‘대학’에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학 밖 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겠지만,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듯한 지금의 세태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하겠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까지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잔인하게 짓밟는 행동이 이뤄졌단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 가지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수많은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 일반 학생들이 너무나도 조용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회나 학내 언론이 관련 사건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등 많은 학생들이 찾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위의 사건들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진 않은 듯합니다. 다들 취업을 위해 대외활동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며 스펙을 쌓느라 서로에게 무관심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설마 그런 일들이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까요?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반응을 보면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가도 종종 일어나는 사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우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학교도 위의 대학과 다른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치언론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연달아 문을 닫았습니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총학생회 선거는 연장투표까지 진행될 테고 50%의 투표율을 넘겨 선거가 성사될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학생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서울대의 현실입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아직은 우리에게 총학생회의 기억이 있고, 학내 언론이 남아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가 부족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음대 성악과의 모습을 보니 하나된 목소리가 사라진 학생사회의 모습이 예상됩니다. 교수와의 관계가 중요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겠지만, 학생들이 모여 문제를 제기해왔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약해졌기 때문에 청원서를 통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은 다음에도 학교 측의 답변은 뭔가 미온적이어 보입니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 학생들은 약자이기 마련입니다. 학교의 변화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지만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아직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이 유일하게 지닐 수 있는 무기는 다수의 힘을 모아내는 것이란 사실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서울대엔 3천여 명의 새내기가 즐거운 대학생활을 꿈꾸며 입학합니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도 그러했겠지요. 관악의 모든 구성원이 기존에 품었던 꿈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길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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