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논쟁을 보고 칼 폴라니는 두 가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모순논리다. 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 또한 상품이며 따라서 공급자인 노동자가 자유롭게 판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스스로가 열렬히 반대하던 개입과 규제를 통해 노동시장을 강제로 형성하려 한다. 둘째는 ‘사회’의 반격이다. 인간을 무리하게 상품화 논리에 밀어 넣고 그에 대한 저항조차 불법화시키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촉발시킨다. 폴라니 사후 50년, 이러한 그의 사유는 현실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가 실체를 까발렸던 자본주의의 환상은 여전히 우리의 인식 안에 견고하며 그가 지지했던 ‘사회’ 재건의 노력은 전세계적 자본주의화에 맞서 탄력을 받고 있다.

 

실체경제학, 자본주의의 환상을 벗겨내다

 

‘경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일반적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떠올린다. 시장 속에서 사람들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확보하여 최대의 이익을 챙기려 한다. 서로가 원하는 값을 부르며 흥정하고 화폐를 매개로 교환하는 모습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진 인간의 경제적 본성의 자연스런 발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폴라니는 이런 상식들이 불과 19세기에야 자본주의의 정착과 함께 형성된 환상에 불과하며 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사회 이전 인류의 ‘실제 경제’는 시장 및 이익 극대화 원리와는 확연히 다른 기반 위에서 작동했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경제학의 새 패러다임은 ‘실체경제학’이다. 폴라니는 기존의 시장주의 경제학을 ‘형식경제학’이라 칭하며 자신의 실체경제학과 대비시켰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실체-형식 논쟁’을 촉발시켰다. 실체경제학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경제학의 ‘경제주의’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경제주의는 인간 행위의 동기와 사회적 신분, 계급, 제도 등이 경제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인간을 움직이는 어떠한 동기도 그 자체로 경제적인 것은 없다”며 “인간은 종교, 미학, 관습, 명예, 정치 등 복합적인 동기들에 근거해 행동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시 경제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선 자본주의자들과 같다고 주장한다. “일상생활이 조직되는 동기가 물질적 동기라는 견해는 자유주의자들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더 인기 있다”며 경제적 생산관계를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이론까지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경제주의 비판에 대해 이철희 교수(경제학과)는 “인간이 언제나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명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최근엔 다양한 인간행동의 동기를 고려한 행동경제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경제주의에 기반한 형식경제학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야기하는 희소성의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경제활동을 ‘희소성과 이윤 추구’라는 틀 안에 가둔다. 형식경제학은 인간의 복합적인 본성 중 교환과 이윤 극대화 등 경제적 본성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폴라니의 실체경제학은 이에 맞서 인간이 사회와 환경 안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살림살이 경제’를 내세운다. 살림살이 경제는 개인의 경쟁적인 효율성과 이익 추구가 아닌 ‘공동체의 필요자원 충족’이란 목표 아래 작동한다. 폴라니는 고대까지 거슬러가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경제시스템 분석을 통해 자신의 살림살이 경제학, 즉 실체경제학이 보편적이며 시장중심 형식경제학은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폴라니는 자본주의 이전 대부분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이 ‘호혜’, ‘재분배’, ‘교환’ 이란 세 가지 제도를 통해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해왔다고 밝힌다. 먼저 호혜는 사회구성원들 혹은 공동체들끼리 상호의존하며 물자를 주고받는 제도다. 이를테면 서멜라네시아의 쿨라 군도 사람들은 해마다 둥그렇게 섬을 돌며 재화를 ‘선물’로 주고받는다. 재분배는 중앙의 권력으로 자원이 이동됐다가 다시 분배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고대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교환은 시장교환을 의미하지만 자본주의적 교환보단 사회적 제도로 형성된 ‘고정 가격’에 근거한 교환이 빈번했다. 즉 오늘날 경제 전체를 대표하는 시장경제는 역사적으로 지엽적인 경제활동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경제는 ‘공동체의 필요자원 충족’이란 목표 아래 세 가지 제도를 적절히 병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오늘과 달리 교환을 통해 이익과 이윤을 얻는다는 동기가 인간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폴라니는 살림살이 경제가 단순히 공동체를 먹여살리는 것 이상의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호혜, 재분배, 교환 등의 제도는 단순히 국가의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상징’으로서 공동체의 복합적 상황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병천 교수(강원대 경제학과)는 “폴라니의 제도는 사회가 경제적 기능을 포섭하여 사회에 안정성, 통합성을 부여하는 관습적 행위다”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북아메리카 콰키우틀에선 생산물을 추장이 임의로 재분배하는 포틀래치라는 제도를 통해 추장의 권위를 지속시켰고 다호메이 사회에서 생필품을 고정가격화함으로써 공동체 내 소비자와 생산자 간 분란을 막고 결속을 도모했다. 이들 사회에서 재분배 및 교환 제도는 공동체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형식경제 논리는 ‘자유방임’, ‘자기조정’을 주장하며 경제가 제도 안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했다.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으로도 경제는 스스로 균형을 달성해갈 수 있기에 사회적 제도는 불필요한 개입이라는 것이다. 폴라니는 이를 “사회에 묻힌” 영역이었던 경제가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특이한 현상으로 보았다. “사회에 묻힌”이란 용어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제도가 경제를 포섭해 관리한다는 뜻으로 실체경제학에 따르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일반적인 경제 조직 방식이었다.


한편 자본주의자들은 경제가 탈제도화되는 과정이 이전부터 존재하던 교역, 화폐,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에 폴라니는 세 영역의 시장경제화가 인위적인 기획이었으며 그 결과 사회의 보호장치를 제거해가는 폭력적인 과정이었음을 밝힌다. 이를테면 교역은 원래 시장교역보다 공동체 수장끼리의 조약과 협정에 근거한 교역이 일반적이었고 이는 대외시장이 대내시장에 침투해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중상주의 국가의 강제적 개입을 등에 업고 시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며 기존 공동체 질서를 보장하던 기능들을 파괴시켰다. 또한 폴라니가 주목한 것은 “인간, 자연, 화폐의 상품화”였는데 이 세 요소는 그의 경제인류학 분석에 비추었을 때 항상 제도적으로 보호받았고 절대 상품화될 수 없었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점에서 폴라니는 다시 경제를 사회에 “되묻을 것” 을 역설한다.

 

이중운동, 사회의 반격

 

사회보호장치들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흐름에 맞서 경제를 사회에 ‘되묻으려는’ 사회의 반작용 운동이 폴라니의 ‘이중운동’이다. 이를테면 인간과 자연, 화폐를 상품화하는 흐름에 대항해 각각 노동법, 보호무역, 관리통화제 등을 실시하는 것이다. 원용찬 교수는 “폴라니의 이중운동론은 민중들의 사회적 불안과 저항, 러다이트 운동, 차티스트 운동, 노동조합 운동, 지주공동체의 자기보호, 사회개량주의 등 다양한 운동에너지를 포괄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중운동은 광범위한 주체, 이념, 목표 등을 의미하기에 그 정확한 실체에 관한 논란이 제기돼왔다. 이는 폴라니의 ‘사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하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폴라니 사상의 핵심인 ‘사회’ 개념은 계급, 국가, 시민사회 등의 다른 개념들과 활발히 비교된다. 먼저 폴라니 스스로 자신의 사회 개념을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과 비교한 바 있다. 그는 “계급 투쟁은 가장 근본적인 현실이 아니다”며 “계급 이익은 역사적 상황에서 전체 사회의 이익을 대표할 때에만 사회의 변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전체 사회의 이익이 토지의 상품화에 맞서는 것이라면 곡물의 자유시장 형성을 막으려는 토지 세력, 혹은 지주 계급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다. 또 영국의 공장법 제정에 토지귀족, 국교회, 노동조합, 대자본가 등이 함께 참여했듯이 단순히 계급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폴라니는 사회 개념이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과 달리 비경제적 요소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중운동의 주체자로서 ‘노동자’보다 ‘거주자’를 중요히 여기는 것이 그 예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관습적인 토지소유권을 부정하고 농민들을 일방적으로 내쫓은 인클로저 운동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 등 경제적인 피해를, 폴라니는 삶이 파괴당했다는 문화적 상실감을 각각 강조한 것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편 폴라니는 정부 주도의 사업을 벌임으로써 일시적으로 실업문제를 해소한 미국의 뉴딜정책에 대해선 비교적 호의적인 견해를 취했다. 그러나 그의 ‘사회’가 곧 국가를 의미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폴라니를 적절한 국가 개입과 규제의 필연성 정도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도 시장도 사회라는 실체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폴라니는 케인스주의같은 ‘관치경제모델’이나 사회주의의 ‘중앙계획’에 반대하며 시민사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역동성을 주장했다. 즉 폴라니의 사회는 국가나 시장과 구별되는 ‘시민사회’의 영역에 가까우며 시민사회는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공동체 질서를 파괴하는 복합적 요인에 대항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이처럼 광범위한 적용력을 가진 폴라니의 사회 개념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대 역사의 파편적인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폴라니는 양차 세계대전, 대공황, 파시즘, 사회주의혁명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사회’와 ‘이중운동’ 개념으로 해석해낸다. 19세기까지 자본주의를 지탱하던 가장 중요한 제도는 ‘금본위제’였다. 각국은 금 확보에 주력했고 점차 제국주의로 나아갔다. 정부의 개입 없이 수요공급 논리에만 의지하는 ‘자기조정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의 값싼 원료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탈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이후 식민지를 둘러싼 제국주의국들의 충돌로 1차대전이 발발했고 전후 사회복지 및 배상문제 등 화폐의 국내 수요가 커졌다. 폴라니는 이같은 국내 사회의 이중운동이 자본주의와 대립하며 사회 작동을 마비시킨 데 주목한다. 금본위제를 위시한 자본주의경제는 개별 국가가 자국의 필요에 따라 돈을 찍어내는 관리통화제를 부정했으나 국내정치의 흐름은 적극적인 재정 지출을 원했다. 정치세력의 지속적인 이중운동의 압박은 경제 영역과의 모순을 심화시키며 자본주의의 기반을 흔들었다. 덧붙여 폴라니는 국가가 통화 흐름에 개입하는 이중운동이 없었다면 시장경제가 원활히 돌아갔을 것이란 주장에 반박하며 “자본주의는 계획됐지만 이중운동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라 말했다. 비단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폭넓은 계층에서 전세계적 규모로 진행된 이중운동은 고의적인 자본주의 파괴운동이 아니라 억눌렸던 사회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런 투쟁이라는 것이다.


무리하게 금본위제를 유지하려던 미국이 대공황을 겪게 되며 1930년대 세계는 자본주의 붕괴 속에서 사회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폴라니는 이때 파시즘이 혼란을 틈타 “민주주의를 희생하며 시장경제를 극복”했다고 말한다. 폴라니는 파시즘이 산업화된 다양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데 주목하여 “(그것이)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뿌리는 시장사회가 기능을 멈추어버린 데 있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의 지역적 상황이나 민족성 등을 원인으로 보는 틀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의 대응이라는 ‘이중운동’의 독창적인 틀에서 파시즘의 흐름을 짚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파시즘이 “사회라는 실재를 발견했지만 인간 영혼과 자유를 부정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사회의 반작용 운동은 단순히 반자본주의적이란 이유로 방관해선 안 되는 것이었고 계획적으로 관리돼야 할 것이었다.

 

사회 재건의 방향을 제시하다

 

 

파시즘에서 드러나듯 사회의 이중운동은 단순히 시장경제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방관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폴라니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가 올바른 제도를 통해 시장경제를 포함한 전체경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폴라니는 ‘시장경제’를 폐지하려 하는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이는 그가 실체경제학 연구 과정에서 파악한 ‘다원적 경제’ 논리와도 연결된다. 즉 실제 경제는 호혜, 재분배, 교환의 여러 제도들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상호작용하며 관리해왔기에 구태여 교환 영역을 철폐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폴라니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 재건을 구상했던 것일까. 그의 해답은 ‘민주적 계획’이었다. 폴라니는 사회주의를 “사회를 개인들의 개성이 살아나는 특별한 인간적 관계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의 연장”으로 생각했다. ‘개성’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폴라니는 ‘민주주의’를 중시했고 때문에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불리기도 한다. 폴라니는 경제를 계획함에 있어 “인간의 필요욕구와 노고를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의 내적 자아로 들어가야 한다”는 ‘내면 조망’의 문제를 제시한다. 때문에 그는 중앙계획적 사회주의 등 관치경제모델은 물질적인 생산수단에만 치중하며 필요욕구와 노고 등 “내면적인 인간의 존재”를 파악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폴라니를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에 대한 재반박이기도 하다. 이렇듯 폴라니는 “중앙계획화된 경제 방식은 노동계급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으며 이병천 교수는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주체 없는 구조’에 대한 폴라니의 비판”이라고 분석했다.


‘내적 조망’을 위해 폴라니는 사회를 기능별로 분화시켜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즉 노동조합, 생산자 연합, 소비자연합, 협동조합 등으로 집단들을 조직하고 이들 사이의 토론과 협상을 통해 경제를 계획하자는 ‘기능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때 각 집단은 항구적인 갈등상태에 놓여있지만 그 갈등과 협상과정이 사회주의 사회의 원동력이 된다. 구체적인 예로 폴라니의 ‘사회주의 경제 계산 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폴라니의 사회주의에서 생산자연합과 소비자연합은 협상을 통해 원료와 판매 가격을 결정한다. 그리고 판매이윤은 ‘공동체 기금’으로 조성돼 추가생산비용이나 여타의 공동체적 목적에 준거해 분배된다. 이에 대해 홍기빈 소장은 “경제적 가치 계산의 문제가 인간의 자유와 의지로 결정되는 사회적 문제임을 파악했다”며 “공산주의적 사회주의와도 전혀 무관하게 사회적 집단 간의 토론과 정보 교환으로 합리적 경제 계산의 이론적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시장가격을 협상하는 폴라니의 기능적 사회주의는 192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실제 시행됐던 사회화 계획과 유사하며 스웨덴 사민주의의 논리와도 유사하다.


국제적으로 폴라니의 구상은 획일적인 전세계적 자본주의에 맞선 지역주의였다. 그의 지역주의 논의는 폴라니 시대보다도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진행되고 미국 등 강대국의 ‘마피아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오늘날 더 빛을 발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는 『거대한 전환』의 서문에서 “유럽 문명이 겪은 바 있는 전환이 오늘날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하는 전환과 유사하다”며 “개발도상국의 금융시장 및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라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압력”을 비판한 바 있다.


세계적 자본주의에 맞선 지역주의는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원용찬 교수(전북대 경제학부)는 ‘미주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을 제시한다. ALBA 협력국들은 석유와 의료서비스를 교환하는 등 상호협력 정신을 실현하며 대내 화폐인 ‘수크레’를 준비하고 있다. 원 교수는 “필요한 자원을 교환하여 개별국가의 사회를 보호하는 ALBA는 호혜적 교역, 재분배, 시장교환의 거래통합 양식을 다양하게 취하는 폴라니의 지역주의 구상에 가장 충실하다”고 평가했다. IMF 사태로 세계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원리를 강요당한 우리나라에게도 ‘동북아 협력구상’ 같은 지역주의 논의는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그 밖에도 공동체의 식량을 자급자족하려는 ‘식량주권운동’, 투기성 자본이동을 규제하는 ‘토빈세’, 공동체 내부 화폐를 발행해 개인적 이윤이 아닌 공공이익을 추구하려는 ‘지역 통화와 거래 시스템(LETS)' 등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 시장논리에 맞서 공동체, 혹은 사회를 보호하려는 ’이중운동‘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에게 시장중심적 상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허상을 꿰뚫어보고 그 과정에서 ’사회‘라는 독특하고 역동적인 실체를 발견하는 것, 그 사회를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조직해 종국적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 폴라니 일생의 사명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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