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정부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외국자본뿐만 아니라 국내자본도 외국교육기관 설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분야에 자본이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온 규제의 빗장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설립해 교육 시장에 진입한 국내 대기업들에게는 국제학교라는 새로운 돈벌이 대상이 생긴 셈이다. 또 자사고, 특목고, 국제학교 등이 방학 기간에 어학캠프를 열어 돈을 벌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의 교육 상품화 정책에 규제 완화의 윤활유를 칠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그래픽: 강동석 기자

이명박정부의 고등학교 가격 차별화 정책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는 공교육의 비효율성을 질타하며 공교육 강화를 통해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임기가 끝나자 일반고와 ̒특권학교̓의 양극화는 뚜렷해졌고 사교육은 더 기승을 부렸다.

이명박정부의 교육 정책은 자율과 경쟁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학교가 다양해지면 학부모의 선택지가 늘어나고,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학교가 서로 경쟁함으로써 공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획일성과 비효율성이 치유된다고 믿었다. 그 대표적 정책이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였다. 기숙형 공립고 150교, 자율형 사립고 100교, 마이스터교 50교를 설립해 공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쇄신을 이뤄내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부모의 선택권 강화는 ‘고등학교 쇼핑’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교육 투자 능력이 있는 부유층은 높은 가격의 고등학교를 구매하지만, 그렇지 않은 계층은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가격의 고등학교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들은 고교 다양화 정책이 ‘고등학교 가격 차별화 정책’이라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교육 상품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명박정부는 이어 초, 중, 고등학교에 ‘가격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표준화된 평가지표인 ‘일제고사’로 성적에 따라 학교를 서열화하고, 학교정보공시제도를 도입하자 교육 서비스는 학부모에게 상품처럼 진열되기 시작했다. 학부모와 교육자가 수요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전체 고교의 65.7%를 차지하는 일반고가 슬럼화된 현실에서 수요자의 선택권 강화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러한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교육 여론조사 2013’에서는 이명박정부의 15개 교육 정책을 5점 척도로 측정했는데 그 중 단 하나도 3점(보통) 이상의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과 공교육비 부담이 오히려 동시에 증가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혜택이 줄어든 것을 가장 문제로 지적했다.

현실화되는 교육 격차

올해 서울대 수시모집 전형에서 일반고 출신 합격자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못했다. 이는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로, 2012년 72.2%에 달했던 일반고 출신 비율이 2년 새 25%p 넘게 급감한 결과다.

이처럼 일반고의 명문대 진학률이 떨어지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대학 진학률 저조와 그에 따른 우수 학생의 기피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미 교육현장 일선에서는 몇 년 새 일반고가 슬럼화 됐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일반고 슬럼화 현상의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 이른바 특권학교가 가진 학생선발의 자율 결정권이 꼽힌다. 특권학교들은 자율 결정권을 이용해 제각각의 전형을 만들어 내고 교과과정을 넘어서는 평가방식을 도입했다. 때문에 특권학교 입시에 필요한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쌓기 위해선 부모의 상당한 교육 투자가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교육 투자 중에서 사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2012년 사교육을 받는 중3 학생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학생 중 일반고 희망 학생은 13.1%에 불과한 반면, 자사고 희망 학생은 31.0%, 외고·국제고 희망 학생은 28.1%, 과학고·영재고 희망 학생은 38.2%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권학교 진학을 희망할수록 사교육비 지출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특권학교의 비싼 학비도 미래의 교육 투자 비용으로 고려돼 경제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민족사관고의 연간 등록금은 2,200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청심국제고가 1,557만 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지역 주요 외고와 자사고도 평균 등록금이 한 해 450만 원 수준으로 일반고의 3배 가까이 된다. 기숙사, 급식, 예체능 활동비 등을 포함하면 일반고와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이처럼 합격을 한 다음에도 매년 기다리고 있는 상당한 액수의 교육 지출은 특권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특권 계층으로 분류해낸다.

이렇게 중, 고교 교육과정의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는 소득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인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소득별 교육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일반고에서는 학업성취도가 최하위인 학생의 비율이 높아져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운 반면, 특권학교 학생들은 심화교육을 받으며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습 초기 단계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나타나는 교육 기회의 격차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면서 점점 그 양극화가 심해지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공교육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득별 교육격차는 학벌이 중요시 되는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격차로 다시 탈바꿈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특목고, 자사고 등에 입학해 명문대에 합격하는 일명 ‘귀족코스’를 밟으면 이후에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이 커지고, 높은 지위가 교육 투자를 통해서 자녀 세대로 대물림되는 사회 구조가 점점 더 고착화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공교육은 한때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기제였으나 이제 공교육은 그저 개천에 불과하게 됐다.

박근혜정부, 벌어진 교육 격차 해결할까

‘국민행복시대’를 슬로건으로 삼은 박근혜정부는 교육복지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초등 온종일 돌봄학교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시 △소득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과 같이 교육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이명박정부와는 차별화를 시도 중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미 현실화된 채 악순환 고리를 이루는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은 크게 교육과정, 교수학습체계, 평가체계 개선으로 나뉘는데, 평가체계에서 일반고 학생에게 유리한 대입전형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 6일(목) 대입전형 간소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대학에 학교별 최대 50억 원씩 총 6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등 적극적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어 그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1년 넘게 박근혜정부의 교육 정책이 구체적인 성과가 없자 졸속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주요 정책이 예산 부족으로 미뤄지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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