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 자법인 허용과 원격진료 도입 등 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늘부터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의사들의 대규모 집단 휴업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이다.

의료서비스 분야를 산업화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은 지난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 때부터 진행돼 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표되자 의료 영리화 논쟁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철도 민영화가 정치,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던 것처럼 의료 분야에서도 정부는 여론의 폭발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현재 국내의 의료체계는 민간이 의료서비스 공급을 담당하고 정부가 이를 재정적으로 통제하는 이원적이고 특수한 구조다. 이번 ̒의료 영리화 특집̓에서는 이러한 국가의료체계에서 의료 영리화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고, 의료 영리화 이후에도 의료 공공성은 유지될 수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의료 재정은 정부가, 의료 공급은 민간이

국가의료체계는 ‘의료재정체계’와 ‘의료제공체계’로 나뉜다. 의료재정체계는 의료보험과 같이 병원과 의사에게 의료비를 지불하는 체계이고, 의료제공체계는 의료서비스를 생산하고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의료재정체계는 1976년에 국가적인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지고 1988년에 전 국민으로 그 대상범위가 확장되면서 전적으로 정부가 담당해왔다. 모든 국민은 각자의 건강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내는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해왔으며, 정부는 국민들이 납부한 보험료와 재정 지출을 재원으로 정부가 미리 결정한 의료 수가만큼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해왔다.

한편 우리 정부는 해방 이후 인적, 재정적 한계로 인해 의료인력, 병원시설 등 의료자원을 개발하는 역할에서 손을 놓게 됐다. 그 결과 국내 의료제공체계는 민간 주도로 이뤄졌고 정부의 개입이 전무한 조건 속에서 몸집을 불려왔다. 1990년대에 들어서 삼성, 현대 등의 산업자본이 대학병원에 진출했고 병원의 고급화, 상업화 경쟁은 격화됐다.

의료서비스의 생산과 공급이 완전하게 시장에 맡겨진 결과 현재 국내의 의료제공체계는 극심한 양극화와 지역 격차, 경쟁의 격화라는 시장실패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 총 진료비 중 최상위 5개 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연세세브란스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기준 34.9%에 달하며 의사 인력의 74.23%가 서울 등 대도시에 집중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 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 지표로는 국가 내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 또는 전체 병상 수에서 공공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사용된다. 주요 국가의 공공성 지표를 살펴보면 영국, 스웨덴 등 국영의료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대게 90%가 넘고, 프랑스나 독일은 대략 60~80%의 수준이다. 시장 개방형 의료제공체계를 가진 미국의 공공성 지표는 30% 수준까지 낮아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 수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공공병상은 전체의 18%수준에 머물고 있다.

의료 공공성을 유지하는 장치들

우리나라는 민간 주도의 병원 설립, 운영, 경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포괄적인 공공성은 높은 편인데, 이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가 적절하게 작동하며 국가의료체계에서의 공공성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전 국민 건강보험 및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대표적으로 의료 공공성을 보장하는 장치다. 전 국민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가입 환자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이를 통해 민간에서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의료행위를 통제하고 의료 공공성을 확보해왔다. 국가는 어떤 질병에 어떤 의료행위가 적절한지, 진료비는 얼마를 받을 것인지를 정한다. 의료기관은 어떤 질병에 어떤 진료를 했는지 국가에 알리면 국가는 그 진료의 적절성을 심사해 미리 정해진 수가만큼 진료비를 지급하게 된다.

◇의료기관의 비영리원칙=의료공공성을 유지하는 또 다른 장치로 의료기관 개설 자격에 제한을 두는 것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준정부기관을 제외하면 오직 의료인과 의료법인만이 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다. 비영리 의료법인은 의료행위에서 나온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할 수 없고 오로지 인건비, 의료 장비 확충 등 의료 시설에만 재투자해야 한다.

때문에 의료법인은 오로지 병원 운영과 관련된 일부 부대사업(주차장, 구내식당, 장례식장 등)외에는 영리행위가 금지된다. 이는 병원이 의료행위보다 이익사업 위주로 운영되는 것을 규제하고, 이익금을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의료 종사자의 처우 개선에만 쓰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 의료기관을 지배하고 수익을 추구하여 이익을 자본가에게 귀속할 수 없는 구조이다.

의료 공공성을 위한 장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법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법인을 설립해 바이오산업, 의료관광 등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GDP 증가 등 거시경제 지표의 상승이라는 효과를 노린다. 또 병원 역시 수익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을 의료법인에 재투자할 여력이 생기는 만큼 의료 저수가 문제로 인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영리 자법인 허용은 그동안 자본의 진출을 가로막아 온 빗장을 간접적으로 여는 것과 같아 의료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리 자법인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도 소유주가 될 수 있으며 소유한 지분만큼 배당 이익을 받는 구조라 노골적인 이윤추구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의료 저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료기관은 영리 자법인에서 나오는 수익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영리행위로 인해 얻은 수익은 결국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만큼 국민들의 실질 의료비 부담은 상승할 뿐만 아니라 지불 여력만큼 의료 관련 서비스 이용에서 차등이 생긴다. 이상이 교수(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는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이 영리 자법인의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리 자법인의 수익 증대가 모법인에게도 유리하다”며 “모법인인 의료기관이 영리 자법인의 제품이나 시설을 이용하도록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영리 자법인 허용에 대해 의료계 내부는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중·대형 병원들로 구성된 대한병원협회(병협)는 “저수가로 인한 경영난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정부 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반면 주로 개원의가 많은 의협은 “궁극적으로 의료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고 의사로 하여금 편법적인 돈벌이에 더욱 집중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며 정부 안에 반발하고 있다. 동네 의원 일부에선 이를 두고 대기업 밀어주기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협의 입장 역시 영리 자법인 설립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중·대형 병원에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보건의료 투자 활성화 정책과 원격진료 도입은 “현행 건강보험 체계와 의료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또 정부는 여러 차례 국민건강보험제도는 민영화하지 않으며 의료 공공성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해왔다. 하지만 현재 국민건강보험은 재정 악화와 그로 인한 낮은 보장성으로 공적 보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빈틈에선 민간의료보험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을 공략해가며 성장했다. 2011년 기준 민간의료보험사(농협·체신보험 제외)의 전체 보험료 규모는 27조 4,400억 원으로 32조 9,200억 원의 국민건강보험의 그것과 맞먹는다. 이처럼 민간의료보험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건강보험제도의 낮은 보장성 때문이었다. 2012년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2.5%에 불과한 반면, 대표적 민간의료보험 상품인 실손형 보험은 2~3만원의 보험료로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전체 의료비의 90%까지 지급하고 있어 국민들 대다수가 이중으로 보험을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이처럼 보장성이 낮은 이유는 건강보험의 재정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국회 예산정책처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이로 인한 진료비 증가를 고려할 때 건강보험의 재정은 전망이 좋지 않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질병예방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둔 국내 의료체계 하에서 ‘4대 중증질환 보장 및 3대 비급여 개선 정책’으로 건강보험 지출은 앞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험료를 인상해 재정 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은 여론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재정 지출이나 공공재원을 통해 건강보험의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정부는 비급여 항목 보장을 포기하고 민간의료보험에 그 역할을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정부는 보건복지부, 금융감독원, 건강보험공단 등과 함께 2011년 10월 개인의료보험정책협의체를 마련하고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을 보충하도록 수단을 모색했다. 2012년 8월 정부가 발표한 ‘실손 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으로 실손형 보험의 보험료가 낮아지자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는 가파르게 증가했고,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이 포기한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하는 역할을 차지하며 자신의 수익기반을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고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통해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을 보충하는 지금과 같은 방법은 의료체계의 형평성을 위협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비급여 보장을 담당하게 된 민간의료보험은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건강보험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제도를 민영화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의료재정체계의 중심은 공공성에서 시장성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민간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재정체계 하에서는 보험혜택의 사각지대가 쉽게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민간의료보험사가 의료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민간의료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가입자의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보험료로 결정한다”며 “금액을 납부할 수 있는 사람들만 민간의료보험 상품 구입이 가능해져 의료이용행태의 양극화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또 이 교수는 민간의료보험사들이 약관 변경 및 보험료 인상, 보장한도 및 보장기간 축소, 까다로운 보험금 지급 요건 등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더해 민간의료보험사는 이윤 증대를 위해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을 선별적으로 가입시키고자 하며, 많은 보험금 지출이 예상되는 사람은 보험 가입을 허용하지 않거나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게 된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그 결과 만성질환자나 노인, 장애가 있는 사람과 같이 정작 보험의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갈수록 보장성이 낮아지는 건강보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국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포기하고 민간의료보험에 문제 해결을 떠맡기려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제도는 절대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말만으론 의료 공공성은 보장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정부가 국민들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건강보험료를 더 걷고 국고지원을 늘리는 등 공공재원을 확충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나가야 국민들도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또 하나의 쟁점, 원격진료 도입

정부는 투자활성화 대책 외에 스마트 기기 등을 이용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입법 예고안을 통해 원격진료가 도서, 산간지역 등 의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 주민 및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폭넓은 의료혜택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원격진료 도입을 두고 벌어지는 의료계 내부의 이해관계 다툼 역시 치열하다. 의협을 비롯한 반대 측은 원격진료가 진단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동네 의원의 몰락을 가져와 의료의 공공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원격진료를 이용하기 위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병협 등 찬성 측은 원격진료가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네 의원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며, 만성질환이나 경증질환을 가지고 있는 재진 환자들이 원격진료의 주된 대상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또 원격진료의 대상은 가벼운 질환이므로 고가 장비는 필요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 임대나 비용 지원 등의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원격진료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의료 서비스라는 점은 찬성 측 의견을 돕는다. 미국, 일본, EU 대다수 국가는 이미 원격진료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 대부분이 원격진료를 무상의료제도의 보완적 성격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은 국내 상황과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는 원격진료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중심이 돼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IT나 통신 사업의 매출 확장을 위한 꾀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국과는 다른 국내의 의료 및 산업 실태를 파악해 그에 맞는 정책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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