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넌 예술일 필요 없다
게임, 넌 예술일 필요 없다
  • 최정윤 기자
  • 승인 2014.03.0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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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미국 대법원은 게임 또한 예술 매체 중 하나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는 미국에선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관련해 논쟁이 활발하게 수행된 결과이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아직 게임을 규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한국 게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온라인 게임은 부분 유료화와 플레이 시간을 늘리도록 유도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반면 유럽과 미국 게임 시장은 새로운 인터랙션 방식과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해외와 국내 게임 시장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서로 다른 것이다.

작년 국회에 온라인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지정하는 법안이 논의되는 등 한동안 게임을 둘러싸고 시끌시끌했던 한국 사회에선 아직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뉴스 보도 등을 통해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성을 접한 사람들에게 ‘게임의 예술성’이라는 말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중독성이나 폭력성과 같은 부정적인 면모가 게임의 전부는 아니다. 우선 학계에선 게임의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학자들은 게임을 연구 대상의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도 꾸준히 개설되고 있다. 현재 서울대 연합전공인 정보문화학과에서도 ‘게임의 이해’, ‘시리어스 게임’ 등 관련 콘텐츠 수업을 열고 있고 올해 신설될 소프트웨어 부전공에서도 게임 관련 교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로 적지 않다.

미술계에서도 게임의 표현 방식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스미스소니언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에선 비디오 게임의 예술성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개최했고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와이 토시오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닌텐도 게임을 통해 발표했다. 조은하 교수(강원대 스토리텔링학과)는 “게임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표현 양식으로 여기는 아티스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계와 미술계의 흥미를 끈 게임의 특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게임유저들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는 작품들의 특징은 수준 높은 내러티브, 즉 스토리텔링을 게임만의 연출법으로 구사한다는 데 있다. 류철균 교수(이화여대 미디어학부)는 “게임은 컴퓨터, IT기술 등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중 하나”라며 게임이 소설 등 전통적인 이야기 예술의 확장판이라고 설명했다. 타 매체의 스토리텔링과 차별화되는 게임만의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기 위해선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 예술매체들이 일방향의 전달 구조를 지닌 것과 달리 게임에선 설계자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행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공간 속 캐릭터가 되어 여러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거나 화면을 비추는 앵글을 조작해 실제로 그 공간에 있는 듯한 경험을 하는 등 간접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게임에선 컷신(cut-scenes)이라 부르는 동영상을 플레이 도중 삽입해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플레이어는 동영상에서 캐릭터를 조작하거나 배경을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을 바꿀 수 있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감정적 경험을 가능케하며 설계자가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성은 예술적인 영상의 구현, 수준 높은 음악이나 사운드트랙 그리고 밑바탕에 깔려있는 이야기적 요소인 내러티브가 한데 합쳐져 생생하게 재현될수록 그 효과가 더 증폭된다. 게임을 두고 ‘능동적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 '바이오 쇼크'의 한 장면
출처:www.bioshock.com

2007년 발표된 ‘바이오쇼크(Bio-shock)’는 배경을 세심하게 재현한 그래픽과 이와 어우러진 사운드, 그리고 정교한 세계관이 결합돼 게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저도시 ‘랩쳐’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사상에 의해 건설된 곳으로 광기 어린 도시가 돼버린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녹음 파일을 듣고 당시 정황을 추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게임만이 가능한 연출법이다. 도시 속 미쳐버린 자들이 세운 조형물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래픽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음악 그리고 극단적 자유주의가 내포한 위험성을 풀어내는 스토리가 한데 합해져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 '플로우'의 한 장면
출처:www.thatgamecompany.com

이러한 상호작용성은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도덕적인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한다. ‘헤비 레인(Heavy rain)’은 아동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FBI, 탐정, 기자, 건축가 등이 엮이게 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윤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말은 달라지며 주인공이 죽더라도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이정엽 강사(정보문화학)는 “수준 높은 게임들은 여러 예술 장르의 문법을 빌리는 동시에 게임만이 연출할 수 있는 ‘선택’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상호작용 가능한 가상 공간의 범위 또한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 농사 짓기, 마천루, 트럭 운전 등은 물론 최근엔 동물이 돼보는 시뮬레이션까지 등장했다. 이정엽 강사는 “게임은 전문적인 지식과 백과사전적인 소재를 망라하며 이를 가상환경 속에서 체험하게 한다”고 말했다.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가 제작한 ‘플로우(Flow)’는 미생물이 되어 점차 포식하며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게임의 주된 내용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져 플레이어는 게임에 더욱 생생하게 몰입할 수 있다.

많은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에 예술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존의 예술 범위로 편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고 대답한다. 게임만이 갖는 가능성을 발전시켜나가야지, 단순히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주거나 기발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게임이 추구할 방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는 “영화가 몽타쥬라는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아냈듯이 게임 역시 고유한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류철균 교수는 “오늘날 사진 자체보다 사진을 찍어 SNS에서 공유하는 행위가 더 중요하듯 게임 또한 대중이 만들어가는 매체라는 점에서 21세기 예술 패러다임 전환의 사례 중 하나”라고 게임의 의의를 설명했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예술성을 인정받기 까지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지금은 누구나 예술로 인정하는 영화나 사진 또한 그러한 과정이 있었다.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게임은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게임이 보여줄 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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