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장애인과 예술 ① 극단 짓

 어두운 분위기의 무대. 옅은 조명 아래 사랑의 욕망을 눈동자에 담은 남녀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무대엔 발소리 대신 전동휠체어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지난 1월 18일 카톨릭 청년회관에서 막을 올렸던 연극 ‘테레즈 라캥’의 주인공 ‘테레즈’와 ‘로랑’은 모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었다.

◇장애, 무대 위로 오르다=‘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은 장애를 소재로 한 연극을 하는 극단이자 장애인의 공연 관람 환경을 조사하는 연구소다. 지난해 3월 결성된 짓은 4명의 비장애인과 지체장애 4명, 언어장애 1명, 청각장애 1명으로 구성됐다. 공동대표 서지훈 씨는 “불편한 몸을 가진 장애의 특성이 걸림돌이 되기보단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쓰이는 공연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짓이 처음 무대에 올린 연극 「테레즈 라캥」은 사랑의 욕망을 품은 테레즈, 허약한 그의 남편인 까미유, 까미유의 친구이자 테레즈를 유혹하는 로랑 사이의 갈등을 그린 비극이다. 연출을 맡은 김진아씨는 “직접적으로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일반적인 작품에 장애를 활용한 연출적 요소를 가미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극에서 연출진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어떻게 장애라는 요소를 통해 표현할지 고심했다. 우선 한 인물을 막 별로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연기하게 해 인물의 감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려 했다. 김진아 씨는 “장애인의 불편한 몸이 비장애인이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해낸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독특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왈츠 장면은 라캥 부인이 테레즈와 로랑이 자신의 아들 까미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어증에 빠진 뒤의 상황이다. 언제 자신들의 죄가 밝혀질지 모르는 테레즈와 로랑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심리를 표현했다. 여기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어둡고 무거운 춤을 춘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휠체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짓이 무대에 서기까지=이 작품이 무대에 서기까지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연습실을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또한 배우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조율해가야 했다. 휠체어를 쓰는 배우에겐 활동보조 도우미가, 청각장애를 가진 배우에겐 속기사가 붙었다.

본격적인 연기 연습에 들어가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장애인 배우의 구부러진 몸은 발성을 방해했고 대사 전달도 힘들게 만들었다. 스텝들은 일일이 배우의 자세를 교정해주었고 재활치료를 방불케 하는 연습이 이어졌다. 청각장애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배우 최아슬 씨는 “바람 소리가 들어간 ‘쉿’이라는 대사를 해야 하는데 바람소리 자체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피나는 연습을 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흔히 장애인들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땐 신체적인 불편함만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장애가 가져오는 심리적인 부담 또한 크다. 배우 문영민 씨는 “내 불편한 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자신이 없었다”고 불안했던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나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라고 계속해서 자기암시를 했다”며 “그 결과 당당히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 예술을 가로막는 장애들=짓은 장애인을 위한 제대로 된 공연관람시설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서울 시내와 지방의 여러 공연장을 답사했고 그 결과를 『무대 위 장애예술, 그 해석과 제안(무장해제)』이란 책으로 발간했다. 이 책에선 장애인이 공연을 관람할 때 장애의 유형에 따라 어떤 시설과 지원이 마련돼야 하는지 원칙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의 경우 자막이 있어야 하고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언급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틱장애를 위한 전용 객석의 필요성 등 정서 장애인을 위한 관람 원칙도 규정하고 있다. 서지훈 씨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장애인들의 공연예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연이 열렸던 카톨릭 청년회관에도 장애인들을 위한 경사로, 엘리베이터 등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공동대표 정원희 씨는 “나름 복지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 속하는 데도 이동통로 중간에 계단이 있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지훈 씨는 “대부분의 공연장들이 장애인을 위한 관람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갖추고 있더라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이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원활한 공연장 접근에 관한 인식이 전혀 없거나 그저 법 기준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매력으로 살릴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극단 ‘짓’. 서지훈 씨는 “짓은 장애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표현의 장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것”이라 말한다. 앞으로도 이들이 장애와 비장애, 나아가 모든 이들이 함께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것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