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중헌
전 서울예술대학교 부총장

3월 30일(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김기창, 천경자 등 57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들 중 재단이나 기념관, 미술관을 통해 창작 정신을 계승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전시로 작가의 위상을 높이고 작품을 관리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서울에 환기미술관이 있고, 제주에 이중섭미술관, 양구에 박수근미술관등 몇몇 화가의 기념재단도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공립미술관의 작가 연구도 아직은 미미한 실정이다 보니 몇몇 인기작가의 삶과 예술은 신화와 전설로 과포장된 부분도 있다.

경기도 기흥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있다. 세계적인 백남준 전문기관을 표방하고 2008년 개관한 이 센터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고 그의 예술세계를 전파하며 ‘백남준학(學)’을 구축한다는 것이 설립 취지이자 미션이었다.

2006년 타계한 백남준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 미술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으나 그래도 이 센터가 있음으로 해서 매년 백남준 관련 기획전과 학술세미나가 열리고, 미흡하지만 연구와 교육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곳들이 기념관 그 이상의 역할을 하려면 지속적인 연구와 재평가 작업을 통해 작가의 사상과 예술정신을 세계로 발신하는 전진기지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한, 곳곳에 소장된 작품들을 관리 보존하고 미술시장에 홍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미술계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피카소나 고흐 같은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은 사후에도 재단과 기념관, 미술관에 의해 철저히 관리될 뿐 아니라 학자와 평론가들에 의해 연구되고 재평가 되고 있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판화 역시 뉴욕의 재단이 중심을 잡고 미술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구미에서는 작가 연구 뿐아니라 화상과 경매회사와 감정기구 등이 앞장 서 가짜를 가려내고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명성을 높이는 일에 나서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근현대 작가 대다수가 본격 연구는커녕 사후 재조명, 재평가 되지 않아 우리의 소중한 미술유산이 사장되어 간다는 점이다. 서양화 1세대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화의 경우는 깊이 있게 연구되고 조명되지 못해 미술시장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작가 정신이나 예술성보다 값으로만 가치를 매기다보면 미술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미술시장은 불황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수근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전이 열리고 화집이 발행되는 등 작가와 작품세계가 재조명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박수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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