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짐승
에밀 졸라 저ㅣ이철의 역
문학동네ㅣ613쪽ㅣ1만 6천원

19세기 말 프랑스, 이성으로 조립된 증기기관차들이 무한한 진보를 향해 달려갈 때 에밀 졸라는 철도가에 버려진 인간성과 곳곳에 움트는 야만성을 포착했다. 대표적인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는 관념의 틀 안에 현실을 ‘은폐’하는 낭만주의 흐름에 맞서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가감 없이 담아내며 시대의 모순에 분노하고 그것을 고발하고자 했다. 그는 자연주의 문학의 장기 기획으로서 20권의 ‘루공마카르 총서’를 발간해 당대 노동자, 상인, 부르주아지, 정치인 등을 주제로 삶의 다양한 면면을 그리고자 했다. 『인간 짐승』은 그중 17번째 작품이며 살인 사건에 휘말린 철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문명이 채 덮지 못한 야만성을 폭로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반부엔 부역장으로 일하는 ‘루보’가 그의 아내 ‘세브린’의 명의로 된 유산을 갖기 위해 아내의 후견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후반부는 앞선 살인사건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자크’라는 기관사가 세브린과 바람을 피우고 끝내 세브린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그 외에도 숨겨둔 돈을 찾기 위해 아내를 독살하는 남자, 밤마다 누이를 두들겨 패는 오라비, 점점 성적으로 퇴락해가는 세브린 등의 장면들을 통해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중 특히 문제적인 인물은 ‘자크’다. 그는 돈이나 분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유전적 결함”에 의한 행위였다. 자크는 ‘자기 안에 느껴지는 미친 짐승’ 때문에 합리적 이유 없는 살인 충동을 느끼며 그 짐승의 기원은 ‘먼 옛날 동굴 속에서 인류 역사’부터였다고 서술된다. 작품을 지배하는 야만적 분위기와 특히 자크의 내면은 19세기, 나아가 근대의 기획이었던 ‘이성적·계몽적 인간’에 대한 에밀 졸라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야만성을 극복했다고 믿었던 계몽은 인간 안에 내재한 ‘짐승’을 억눌러왔을 뿐이고 야만적 본능이 분출될 때 작품 속 무능한 사법 제도처럼 이성은 힘을 잃고 만다.

살인 사건들이 진행되는 작품 전체에서 ‘철도’ 혹은 ‘기관차’는 공간적 배경으로서 지속적으로 묘사된다. 기관차는 또한 당대 과학의 최첨단 기계였으며 사상적으론 이성과 진보 이념을 대변한다. 에밀 졸라는 비판적 묘사를 통해 진보하는 기계 문명이 야만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기관차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로 인해 뿌려진 피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에밀 졸라의 경고를 무심히 지나치고 현대 문명은 여전히 전진하고 있는 것인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