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지난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의 통일 담론에 불씨를 지폈다. 북한이 시장 경제를 확대하며 급격한 내부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통일대박론’을 넘어서 한층 성숙한 통일 담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현재 통일대박론은 강조점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되며 통일 담론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통일 담론이 제각기 다른 그릇에 담긴 채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 갈등과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에 성공한 독일의 경험은 우리의 통일 담론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 11일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의 ‘국민카페 온에어’에서는 독일의 사회운동가 크리스토프 폴만(Christoph Pollmann·45)을 초청한 강연회가 열렸다. 독일 사민당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프리드리히애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에서 3년째 소장을 맡고 있는 폴만은 북한에 20차례 방문하며 한국의 통일 문제에도 전문적인 경험을 쌓아왔다. ‘한반도 통일, 독일 통일로부터 배운다’는 제목의 이번 강연회는 공개방송으로 진행됐으며 김종대 「디펜스21」편집장이 사회를 맡아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폴만 소장은 독일 통일과 한국 통일이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차이를 나타내는 만큼 독일 통일이 한국을 위한 이상적인 모델일 수는 없다고 했다. 동·서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변 강대국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단된 뒤 내전을 경험하지 않았을뿐더러, 통일 당시에도 소련이 붕괴 중이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가 덜 복잡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에 극단적 이념 갈등이 발흥하지 않은 독일의 정치 지형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독일 사회는 이러한 배경에서 안정적인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일구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한국만의 정치사회적 특수성을 고려한 통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강연의 핵심이다.

독일 경제가 24년이 지난 지금도 흡수통일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과거 구동독에 속했던 지역은 이제 겉으로 보기에는 낙후돼 보이지 않으나, 실제 경제 지표상으로는 아직도 동·서간의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현재 구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구서독 지역보다 5%p 높은 11%로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사실 이 5%p 수준의 격차도 통일 초기 20~25%에 달했던 구동독의 실업률을 동·서가 엄청난 이전 비용을 함께 부담해 낮춘 결과다. 지금도 여전히 독일 국민은 소득세의 5.5%를 추가 부담하는 ‘단결세’를 통해 연간 800억 유로에 달하는 이전 비용을 충당해 동·서간의 격차를 좁히는 사회복지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이질성 역시 동·서간의 격차를 손쉽게 봉합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통계에 따르면 구동독 출신 시민은 30~40%가 스스로를 아직도 이류시민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긴장 완화 정책에 따라 통일 전부터 매년 수백만 명의 동·서독 시민들이 국경을 넘나들었음에도 여전히 구동독에는 열등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폴만 소장은 독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히는 ‘내적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선 2~3세대는 지나야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정부가 미래 세대인 젊은이에게 통일을 좋은 기회로 소개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줄여 남북 교류를 축소하는 것”은 현 정부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동독이 곧바로 번영할 것으로 예상했던 독일의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동독은 꽃피는 풍경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통일대박론은 통일 비용과 과정은 숨기고 경제적 번영만 부각한다는 점에서 콜 전 총리의 ‘꽃피는 풍경’과 꼭 닮았다. 강연 말미에 폴만 소장은 이념 갈등의 골이 깊은 남한에서는 정권의 성향에 따라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것이 문제라며 남북 간 화해협력에 바탕을 둔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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