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님, 이 손은 누구의 것입니까?”
오성(이항복)의 집에서 난 감나무 가지가 옆집 권철 대감 댁 담을 넘어가 하인들이 감을 못 따먹게 하자, 오성은 당돌하게 권 대감 방문의 창호지를 뚫고 손을 넣어 물었다. 어린 오성이 보기에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아니라 하니 화가 나 따져 물었던 것이다. 권 대감은 “네 몸통에서 난 손이 내 방 안에 있다 한들 어찌 네 것이 아니겠느냐”며 하인을 시켜 감을 따줬다고 한다.

요즘 시국을 보고 있자니 나도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를 콕 찔러보며 박근혜 대통령께 묻고 싶다. “대통령님, 이 꼬리들은 도대체 다 누구의 것입니까?”

지난 9일, 일요일 밤의 여유를 즐기며 인터넷을 하다 당황스러운 기사를 접했다. 그동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국가정보원이 휴일 밤 갑작스럽게 발표문을 기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진심으로 송구스럽다. 수사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하겠다.” 기사를 읽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 또 꼬리 자르기구나!’

박근혜 정부의 꼬리 자르기는 정말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인턴 여대생 엉덩이를 ‘그랩’(grab)한 것은 윤 전 대변인 개인의 일탈이었다. 국방부 내 사이버사령부가 정치 댓글을 달아 불법 대선 개입을 한 것도 지휘관의 지시 없이 3급 군무원(심리전단장)이 저지른 개인의 일탈이었다. 한정된 지면에 그동안 자른 꼬리를 다 적을 순 없지만, 적어도 9개는 넘는 것으로 보아 이 정부는 사람을 홀려 간을 빼 먹는다는 구미호보다 꼬리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일만 나면 개인의 일탈로 돌리다 보니 이 정부는 남 탓하는 것이 입버릇이 된 것 같다. 심지어 이제는 사고가 터지면 국민에게까지 탓을 돌린다. 지난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정보 제공에 다 동의하지 않았냐”고 국민 탓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화들짝 놀라 현 부총리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자세”가 부족하다고 문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불똥이 튀는 것을 피하려는 박 대통령의 꼬리 자르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축구를 좀 봐서 아는데 꼭 무능한 지도자는 자기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선수의 전술 이해가 부족한 탓을 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 정부의 꼬리 자르기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니 ‘창조적 국정운영’이라고 불러줘야겠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됐던 채 모군의 개인정보를 보고 싶은데 불법이라 못한다면, 까짓것 청와대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로 들춰보고 사표 내도록 하면 그만이다. 지방선거에 관여하고 싶은데 이미 공무원의 선거 중립을 수차례나 강조했다면, 청와대 비서관이 개인적 일탈로 출마 신청자를 면접하고 사표 내도록 하면 가능하다. 이 장면 조폭 영화에서 자주 본 것 같은데, 청와대도 대통령 대신 책임지고 사표 쓰면 조직이 뒤 봐줄까?

책임은 책임질 만한 사람이 져야 한다. 조직을 이끌고 대표하는 사람을 수장(首長)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조직의 머리(首)에 위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꼬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머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꼬리 탓을 하고 잘라버린다고 선이 그어지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었다면 당연 그 책임을 피할 수 없고, 몰랐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통솔해야 하는 수장이 손발이 저지른 일을 몰랐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책임져야 할 일이다.

지난 12월, 경찰은 불법 파업 주동자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 사무실이 위치한 경향신문사 건물에 강제 진입했다.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언론사 1층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 1층부터 옥상까지 샅샅이 뒤져놓고, 책임은커녕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내란음모죄 기소, 종북몰이,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 사람들은 그 시절이 돌아왔다며 ‘공안 정국’이란 말을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흉흉한 시기에 정부를 비판하는 삐딱한 글을 우리 신문에 싣자니 『대학신문』도 그 시절처럼 필화를 겪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대학신문』 사회부장의 개인적 일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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