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민석 박사과정
정치학전공

미국의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미국의 태평양세기’라는 기고문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선회’(pivot to the Asia-Pacific)를 주장하면서, 미국과 세계의 미래가 아태 지역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최초의 태평양 대통령”을 자임한 바 있으며, 미국이 아태 지역으로 귀환했고, 또 계속 머무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태 지역으로의 선회는 대외정책의 변화를 수반했다. 우선 군사정책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은 중국의 ‘도련(島連)전략’에 맞서 태평양의 해군력을 증강했다. 또 ‘지상·공중전’(AirLand Battle)을 ‘해상·공중전’(Air-Sea Battle) 개념으로 대체했다. ‘바다 위에서’(On the Sea) 전략이 탈냉전 이후 ‘바다로부터’(From the Sea) 전략으로 대체된 이후, 아태 지역에서의 재조정(rebalancing)을 위한 새로운 전략이 제시된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령부(KORCOM)를 신설한다는 계획도 발표되었는데, 이 또한 아태 지역, 특히 동아시아가 갖는 중요성을 방증한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추진이다. 현재 미국이 추진 중인 범태평양파트너십(TPP)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FTAAP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다. 한국·일본이 참여하는 TPP를 통해 중국의 ‘글로벌스탠다드’ 수용과 TPP 참여를 압박하고, 금융 및 각종 서비스 수출을 통해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완전히 새로운 정책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외정책의 주류는 ‘대서양주의’였지만, ‘아시아·태평양주의’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미국의 정책전환이 특별한 함의를 갖는다면, 그것은 미국이 직면한 위기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갖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헤게모니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세계화, 나아가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회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부상은 이러한 회의에 현실적 근거를 부여했다.
그러나 미국은 대외정책 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세계적 불균형에서 동아시아, 특히 중국이 갖는 특수한 위치, 경제적 난국,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교란에 대해 적극적인 재조정 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봉쇄’로 규정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대안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은 사활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이를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봉쇄와 개입이라는 이중전략을 구사하면서 최대 교역국인 동시에 잠재적 적성국인 중국을 관리하려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시아·태평양을 통해 세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 핵심인 동아시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국의 ‘프런티어’가 되어 새로운 세계전략에 봉사할 것인가?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것인가? 새로운 대안적 질서가 나타날 것인가? 세계가 어떤 길을 가든 동아시아가 세계사적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세계가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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