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상학과 질적 연구 방법
이남인 저ㅣ한길사
415쪽ㅣ2만 7천원

과학혁명 이후 물리학이 이룩해낸 성과는 다른 자연과학 분야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물리학적 연구방법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즉, 대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반복하며 그로부터 수리적 데이터를 도출해낸 후 이를 통해 대상들 간의 인과관계 파악을 목적으로 하는 ‘양적 연구방법론’이 주류적 연구 방법론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수리경제학이 최근 발발한 경제위기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양적 연구의 한계 역시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학계에서는 대안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질적 연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고민해온 이남인 교수(철학과)의 『현상학과 질적 연구』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현상학과 질적 연구의 관계를 올바로 해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상학적 견해에 따르면 주체가 대상을 대하는 관점인 ‘태도’에 따라서 대상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주체의 의식에 드러난다고 한다. 즉, 똑같은 관악산의 바위라도 ‘지질학적 태도’냐 ‘종교학적 태도’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이때 주체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변경하는 것을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하며 저자는 자연과학적 태도로부터의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질적 태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질적 태도는 사물에 대한 일상적인 판단을 이끄는 ‘생활세계적 태도’를 망라하며 나아가 이런 일상적인 판단까지 배제하고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초월론적 태도’까지 포함한다. 이 질적 태도를 통해서 주체는 기존 양적 연구의 대상인 자연과학적 세계가 아닌 ‘질적 세계’를 조망할 수 있으며 기존의 논리와 이론이 아닌 대상에 대한 직관으로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적 연구의 한 사례로 ‘현상학적 체험 연구’를 소개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체험을 양적 연구방법론을 차용하고 있는 기존의 뇌과학이나 수리경제학이 아닌, 피실험자의 진술에 의존해 체험을 직관하려는 시도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상학적 질적 연구를 위한 일반적인 매뉴얼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는 “연구자들은 매뉴얼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연구자가 현상학적 반성능력과 비판정신을 함양해 단순한 연구기술자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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