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이 말도 진부하지 않나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이 말도 진부하지 않나요?
  • 최정윤 기자
  • 승인 2014.03.22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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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예술제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이승효 씨
▲ 사진: 전근우 기자 aspara@snu.kr

지난 14일(금) 개막한 ‘페스티벌 봄’의 제2대 감독 이승효 씨(컴퓨터공학과‧06년 졸업)의 이력은 다소 이색적이다. 그는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예술에 대한 공부를 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올해 다원예술제 ‘페스티벌 봄’의 감독으로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카페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축제 기획자보다는 호기심 많고 실천력 강한 공학도에 가까웠다. 질문에 대해 감성적인 표현이나 별다른 묘사 없이 담담하게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은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떠한 여정을 거쳤을까?

◇301동을 축제의 장으로=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컴퓨터에 흥미가 있었던 이승효 씨는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관악사 밴드 동아리 ‘소리느낌’에 들어가 기타를 치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4학년이 된 2005년 ̒축제하는사람들̓(축하사)의 회장을 맡고 있던 그의 지인이 그에게 기획팀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처음으로 그는 축제 기획을 접하게 됐다. 그는 “당시엔 새로운 교내 문화활동을 시도해보겠다는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고 했다. 장기하를 배출한 ‘붕가붕가레코드’의 고건혁, 혼성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컬 윤덕원 등 이후 프로로서도 인정받은 이들이 처음 축하사를 만든 후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때는 축하사가 만들어진 지 3년째 되던 해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밴드 공연 ‘따이빙굴비’의 예선전인 ‘미니 따굴’을 만들고 좀 더 많은 밴드가 공연할 수 있도록 이를 공개오디션 형식으로 진행했다. 또 자신을 비롯한 공대생들이 축제와 멀어져 있다고 느껴 5톤 트럭을 개조해 301동을 비롯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게릴라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 아쉽게 생각하던 부분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채우는 것이 재밌게 느껴졌다”며 축제 기획의 매력을 얘기했다.

◇경계를 넘나들며=졸업 후 그는 남들이 흔히 선택하는 길이 아닌 자신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개척지를 찾고자 했다. 이승효 씨는 컴퓨터 전공이라면 당연시 여겨질 기술자로서의 삶이 아닌 문화계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고 그 무대로 아시아를 선택했다.

생각을 마친 그는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본에선 어떻게 음악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별 사전조사 없이 그는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다. 그는 “막상 일본에 가니 공부보단 생계가 우선이었다”며 웃었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았던 그는 편의점, 이삿짐센터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중엔 일하던 술집에서 점장의 위치까지 올랐다. 1년 후 그는 같이 일본어를 배우던 지인을 통해 일본 유일의 국립예술대인 도쿄예술대를 알게 돼 축하사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하고 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는 원래 대학원에서 음악과 관련된 기획 공부를 하고자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지도교수가 음악이 아닌 공연예술 전반에서 활동하던 전문가였던 것이다. 이에 이승효 씨는 자연스럽게 연극, 무용 등 더 넓은 분야의 예술도 접하게 됐다. 또 지도교수와 함께 일본의 대표 축제인 ‘페스티벌 도쿄’를 기획하는 등 관련 실무도 담당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공계의 사고로 예술계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기획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여러 아티스트들을 묶어 하나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학부시절 프로그래밍을 하는 등 논리적인 사고를 훈련받은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답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도 있었다. 그는 “한국에선 6개월 걸려 준비하는 예술제를 일본에선 1년 이상 준비하는 등 두 나라의 시간관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한국의 프로그램 준비가 조급해 보이는 반면 한국에선 일본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생활에 적응하기까지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이젠 익숙해졌다”며 굳이 구구절절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지 않았다.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강인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귀국하게 된 그는 국내 예술제 중 가장 실험적이라는 평을 받는 ‘페스티벌 봄’을 접하게 된다. 페스티벌 봄은 미술, 영화 등의 시각예술과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여러 혼재된 장르를 선보이는 다원예술제다. 그는 썩어 문드러지는 시체를 형상화한 무용, 피자 레시피 동영상을 북한에 보내고 답장을 받는 과정을 녹화한 작품 등 이제껏 보지 못한 색다른 예술에 충격을 받고 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승효 씨는 “이 정도의 재밌는 일이라면 일생을 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실험 예술과 관련된 공부를 시작하고 각 국의 작가들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게 된다.

◇경계에서 피어난 꽃=현재 그는 페스티벌 봄의 2대 감독으로서 자신의 예술관을 보여주려 한다. 지난 7년간 축제를 이끌어온 김성희 전 감독에 이어 30대의 젊은 기획자으로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는 “최신 예술 경향을 소개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페스티벌 봄의 기본적인 성격을 유지하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좀 더 담고자 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예술이 현실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축제에서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인 ‘서울-데카당스 live’를 예로 들었다. 이 작품은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검열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하는 등의 행위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은 ‘박정근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작가 ‘옥인 콜렉티브’는 당사자가 실제로는 북한 혹은 체제 위반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그의 행동도 가벼운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은 실제로 박정근 씨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에 북한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본인이 좋은 시민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묻는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연극, 영상, 다큐멘터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뻔한 건 재미없잖아요=이렇게 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채로움을 지향하는 그이지만, 새로움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작품들에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승효 씨는 “그것이 페스티벌 봄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며 기존 예술의 범위 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실험적 예술을 어색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익숙함과 생소함의 경계선에 있을 때 오히려 기존 예술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서울대생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는 “지식인층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서울대생 중누군가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교내문제 등에 이의를 제기할 때도 시위를 하는 등 기존 해결책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요즘 세상엔 누구나 쉽게 ‘창의성’과 ‘새로움’을 강조한다. 남들과 다른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승효 씨의 입에서 나온 ‘새로움’이란 단어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직접 부딪히며 ‘새로움’을 추구해온 경험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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