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 건설의 주된 목적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전국의 균형발전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공주 근처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두 가지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지 큰 논쟁거리다. 이런 판단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며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야 마땅하지만, 불행히도 이 분야의 대가들조차 서로 정반대의 주장으로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수도를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 필자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다만, 옮기더라도 현재의 방법으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신행정수도에 찬성하는 분들 중에서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우선, 왜 공주 근처에 생판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마음에 안 든다. 지금도 서울과 천안이 거의 붙어버리다시피 했으니,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공주 근처 신행정수도가 흡인력을 가진다고 하면 서울에서부터 공주까지 아예 붙어버려 수도권의 공룡화만 촉진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는 환경보전의 시대, 도시를 재활용하자

 

더욱 걱정되는 것은, 아름다운 녹지가 펼쳐진 수백만 평의 생땅을 뒤엎고 새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온 나라가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고, 지리산 꼭대기까지 아스팔트길이 깔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토건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대형 참사들이 보여주듯이 토목건축부문은 부실과 부조리의 온상이기도 하다. 그런 산업에 의탁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발상도 마음에 안 든다. 꼭 아름다운 녹지를 파헤쳐서 수도를 만들어야 하는가. 기존의 낙후된 허름한 도시를 재활용하면 왜 안 되는가. 안타깝다. 쓰레기뿐 아니라 땅도 도시도 재활용해야 한다. 대전을 지나다 보면 느끼겠지만, 신시가지는 번들번들하고 구시가지는 추레하다. 땅도 아끼고 균형발전도 이룬다는 차원에서 대전의 구시가지를 재단장하고 가꾸어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은 어떨까? 마침 대전 서남부에 수백만 평의 택지 개발 계획도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이 만일 공주 근처의 신행정수도가 충분한 흡인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이 지역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대전의 구시가지를 재활용할 경우 이런 우려는 없다. 이미 대전은 상당한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남북통일 후 수도를 옮긴다고 하더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전으로 옮기자는 주장은 아니다. 국토이용에 있어서도 재활용의 지혜를 살리자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 서울시 안에도 재활용할 땅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 같이 비좁은 나라에서는 땅을 아끼고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신행정수도건설을 추진하는 분들이 강조하는 백년대계의 요체이다.

 

박정희정권 시절에도 수도이전계획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적 상황이 사뭇 다르다. 그때는 개발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환경보전의 시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소위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에 젖어 왔다. 무엇이든지 모자라면 공급부터 하고 보는 그런 사고방식이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에너지 사대기에 정신없고, 물이 모자라면 물대기에만 급급하고, 땅이 모자라면 땅 파헤치기에 여념 없고, 사회문제가 생기면 법부터 만들기 바쁘고 등. 이런 가운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의지, 물을 아끼는 정신, 이미 개발된 땅을 잘 이용하는 정신, 이미 만들어진 법을 잘 지키고 집행하는 지혜가 소실되었다. 이제는 공급위주 사고방식의 껍데기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 바라건대,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이정전

환경대학원 교수ㆍ환경계획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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