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스트럭쳐 & 플루이드 전

  최근 ‘융합’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분화되던 각 영역이 이제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번엔 ‘예술’과 ‘과학’이 만났다. 언뜻 보면 어색한 조합 같지만 둘은 민트와 초콜릿이 만나 민트초코라는 새로운 맛을 만들었듯, 또 다른 영역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을 내세운 ‘다이내믹 스트럭처 & 플루이드(Dynamic Structure & Fluid)전’이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5월 9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2층에 걸쳐 총 7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작품들엔 여러가지 과학 원리들이 녹아들어 가 있다. 아르코 미술관 전효경 학예연구사는 “작품에는 작가들이 9~10개월 동안 과학자들에게 배운 과학 이론이 잘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 그림1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제1전시장(사진①)에는 ‘다면체’와 ‘피보나치 수열’ 등을 모티프로 한 작품 4점이 설치돼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반짝거리는 ‘플라토닉 괘’(사진②)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시간 간격을 두고 형광등이 켜지면서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십이면체를 차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우주와 정다면체와의 관계를 설명한 플라톤의 철학에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엔 우주가 물, 불, 흙, 공기 4원소로 이뤄졌다고 믿었는데 플라톤은 이 4원소가 정다면체의 모양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를 각각 불, 흙, 공기, 물에 대응했다. 당시 12는 우주의 숫자라고 여겼기에 정십이면체는 대우주를 상징한다고 봤다. 형광등으로 만들어진 정다면체 아래에는 거울이 깔려 있다. 작가는 바닥에 거울을 설치해 거울 위의 정다면체로 주역의 상괘(上卦)를, 거울 바닥에 비쳐 보이는 정다면체로 하괘(下卦)를 형상화했다. 상괘는 하늘, 하괘는 땅, 즉 우주를 형성하는 근원인 음과 양을 뜻한다. 작가는 플라톤의 철학과 동양철학을 작품에 담아 우주의 생성원리를 표현했다.

▲ 그림3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플라토닉 괘’의 옆에는 김영희 작가의 ‘비늘(Scales)’(사진③)이 설치돼 있다. 작품 앞 원형 구멍에 입김을 불면 나무 비늘이 그 습기를 감지해 벌어졌다 닫힌다. 솔방울의 비늘이 환경이 건조하면 벌어지고 습하면 닫히는 데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에는 ‘피보나치의 수열’이 적용돼있다. 피보나치의 수열은 ‘1, 1, 2, 3, 5, 8, 13, 21, 34…’와 같이 앞의 두 항을 더한 값이 다음 항이 되는 수의 배열을 이르는 개념이다. 이 수열은 잎의 배열, 조개껍데기의 성장 등 자연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피보나치의 수열에 따른 잎사귀의 배열은 햇빛을 골고루 받는 데 최적화돼 있어 이것이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원목 느낌을 주는 사각형의 나무 시트지를 피보나치의 수열에 따라 배열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면을 다시 이어 큰 형태를 만들었다. 작가는 자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피보나치의 수열’을 작품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 그림2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면 ‘유체역학’, ‘초끈이론’ 등의 이론을 적용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제2전시장에 발을 들이면 어둡고 긴 복도가 우리를 맞이한다. ‘차원위상변환장치’(사진④)는 예술가 3인으로 이뤄진 ‘노드클래스’의 작품이다. 어두캄캄한 복도 안으로 들어서니 다양한 소리가 들리며 벽에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글씨가 생긴다.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면 글씨가 그 공간만큼 더 채워진다. 이 작품에 적용된 개념은 ‘차원’이다. ‘차원’은 수학에서 공간 내에 있는 점 등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축의 개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1차원의 시간, 3차원의 공간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차원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선 서로 연결된 4차원의 시공간을 제시했고, 우주가 진동하는 아주 가는 끈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초끈이론’에서는 11차원의 존재까지 가정하고 있다. ‘차원위상변환장치’는 시청각의 차원, 공간적인 차원, 벽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평면적인 차원 등 다양한 층위의 차원을 제시해 관람자가 여러 차원이 혼재된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 그림4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 이번 전시는 예술과 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전효경 학예연구사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시도했던 이전 전시들과 비교해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과 수리과학, 물리학, 화학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9~10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만나 공부를 하고 세미나에 참여한 과정의 결과로서,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기간동안 미술관에선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한 강연과 체험학습을 진행한다. 오는 4월 4일 열리는 ‘제3의 문화: 예술과 과학의 만남’ 컨퍼런스에서는 국내 융합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주말에는 ‘아이디어 3D 프린팅’, ‘다면체를 따라 흐르는 소리’, ‘웨어러블 테크놀로지#1: 전자바느질’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워크숍이 진행된다. 모든 워크숍은 무료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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