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 인사, ‘안녕’. 작년 말 고려대에서 시작된 한 대자보가 던진 이 일상적인 인사말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였다. 손으로 눌러쓴 ‘안녕들 하십니까?’란 물음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안녕하지 못하다’는 혹은 ‘더는 안녕하지 않겠다’는 수백 장의 대자보가 화답했다. 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의 불길은 당시 철도 민영화 논란과 맞물리면서 청소년, 노동자, 성소수자 등 각계각층으로 빠르게 번져나갔고, 기성 언론들도 때아닌 대자보 열풍에 주목했다.

관악도 이러한 열풍의 예외가 아니었다. 한 법대생의 대자보를 시작으로 캠퍼스 곳곳을 비롯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snulife)에서도 대자보 행렬이 이어졌다. 페이스북에는 ‘관악,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가 개설돼 관악에 게시된 대자보의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게시된 대자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철도 민영화 논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수그러들었고 안녕들의 불길도 잦아들었다. 이대로 대자보에 담긴 목소리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던 6명의 학생들(권준희·백상진·양기원·이은호·정수환·하태승)은 지난겨울 녹두거리의 한 술집에서 ‘일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책으로 묶어낸 안부 인사, 『관악 안녕』

처음부터 ‘거사’를 작정하고 술잔을 기울인 건 아니었다. 발단은 지난 1월 9일 ‘관악, 안녕들 하십니까’가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려고 기획한 ‘관악 안녕회동’의 뒤풀이에서였다.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킬 무렵 누군가가 학내에 게시됐던 대자보를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안녕들 현상을 평가하는 대담회를 열어보면 어떨지 물었다. 30분 만에 그 자리에 있던 6명은 거사를 벌이는 데 찬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겨울방학 두 달을 꼬박 매달려서 캠퍼스 곳곳에 게시됐던 50개가량의 대자보를 복원해, 하나의 책 『관악 안녕』으로 묶어낼 수 있었다.

이들이 『관악 안녕』을 만들게 된 이유는 수많은 대자보를 기록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답답함을 안녕들 대자보에 털어놨고 자연스럽게 대자보는 다양한 이야기가 공유되는 공론장이 됐다. 특히 학내 자치언론의 잇따른 폐간으로 공론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녕들 대자보의 중요성은 더욱 컸다. 하지만 대자보는 훼손되기 쉬우므로 대자보가 떼어지면 대자보에 담긴 많은 이야기도 대자보와 함께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하태승 씨(정치외교학부·10)는 “안녕들 대자보는 담론의 홍수였다”며 “대자보를 통해 등장했던 많은 문제의식이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누군가는 이를 기록해야 했다”고 이 일을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이라도 금전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광고도 싣지 않은 책을 무료로 나눠주려다 보니 6명의 사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계좌를 개설해 개인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동시에 학내 조직도를 보고 거의 모든 교수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후원을 요청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모금 활동이라 상대방의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권준희 씨(정치학과·09)는 “지인들은 우리를 보고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얘기하곤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많은 어려움에도 『관악 안녕』은 여러 사람이 도와 무사히 빛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폐간을 선언한 교지 「관악」 편집위원회는 후원금과 연대의 글을 통해 『관악 안녕』의 발간을 지지했다.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교수들도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기고 요청에 응해줬고, 책 발간 프로젝트를 전해 들은 주변 사람들은 개인 후원으로 응원했다. 정수환 씨(사회/惡반 경제학부·08)와 백상진 씨(법학부·07)는 “안녕들의 열기가 남아있었던 때 사업을 시작했고, 후원금을 받아 진행할 만큼 의미 있는 활동이었기에 자신도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섯 개의 시선, 안녕들을 바라보다

대자보가 남기고 간 숱한 담론을 되새기려는 노력은 『관악 안녕』을 발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9일(수) 저녁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는 대담회 ‘5인의 아해가 안녕들을 논하오’가 열렸다. 대담회에서는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5인(한윤형·공현·김조광수·주현우·오찬호)과 학생들이 안녕들 현상의 의미를 살펴봤다.

대담회는 안녕들 현상에 대한 평가로 시작됐다. 오찬호 연구원(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은 안녕들 현상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녕들 현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한 편에서만 받은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평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 공현 씨는 “안녕들 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왔지만, 그 대답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안녕들 현상이 우리 사회의 노동, 교육, 시장 구조에 대한 더 깊은 논의로 이어지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린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반면 안녕들 현상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청년필름 대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점을 안녕들의 순기능으로 언급했다. 그는 자기 일이 아닌 것에 대한 관심은 생명력이 짧다며 “새로운 이슈를 제시해 안녕들 현상과 같은 청년들의 움직임이 지속될 수 있는 동력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대담회에 참여한 학생들도 나름의 시각으로 안녕들 현상을 돌아봤다. 이심지 씨(정치외교학부·12)는 안녕들 현상을 보고 스무 명의 친구들과 현실 참여를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며 안녕들 현상의 특징으로 원자화된 개인을 한 곳에 불러들이는 결집력을 꼽았다. 양웅석 씨(서양사학과·09)는 안녕들 현상을 축제에 비유하면서 “삶 속의 분노와 불만들이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돼 대자보라는 형식으로 표출됐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사진: 까나 기자 ganaa@snu.kr

안녕들 이후의 안녕들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한 6명은 지금까지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평가받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정수환 씨는 “어떤 평가를 받는가는 상관없으니 평가를 받기만 해도 좋겠다”고 했다. 그는 4~5년 전과는 달리 담론이 단절된 오늘날의 학생 사회를 지적하며 책을 읽고 거기에 담겨있는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고 전했다. 권준희 씨 역시 “우리의 기록을 보고 과거를 기억하면서 영향을 받는 것, 딱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뜨거웠던 겨울을 뒤로한 채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 6명의 학생들. 이들이 남긴 기록은 강의실로 향하는 계단 옆에서, 포스터에 묻혀버린 게시판 끝에서 수업을 재촉하는 발걸음들에게 노란 글씨로 또박또박 질문을 던지고 있다. 관악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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