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담배를 상대로 한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1월부터 150m⁲ 이상의 실내 사업장에서는 전면 금연이 시행됐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수천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의 명분은 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다는 것이다.

만병통치약에서 만병의 근원으로

금연 정책의 시행과 담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풍속화에 그려진 서당 훈장님의 긴 담뱃대는 양반의 권위와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엔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대접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양담배는 부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친 남성은 담배를 물고 있고,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도 많았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는 조세 수입을 위해 ‘내 고장 담배 피우기 운동’ 등으로 흡연을 장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배의 유해성이 알려지면서 담배는 백해무익한 사회의 악(惡)이 됐다. 특히 간접흡연이 나쁘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게 되면서 담배 연기를 피할 권리인 ‘혐연권’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민의 흡연을 규제하기 위한 금연 정책도 강화됐다. 1976년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넣는 것을 시작으로, 담뱃값이 대폭 인상됐고, 공공기관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금연을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됐다. 흡연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과 선전 역시 활발해졌다. 그리고 이는 담배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해 왔다.

담배를 몰아내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자 궁지에 몰린 흡연자가 반발하기 시작했고 갈등은 흡연자 대 비흡연자의 구도로 깊어져 갔다. 갈등이 절정에 치달았던 2004년, 흡연자 허 모씨는 “공중시설 내 흡연을 제한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은 흡연자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흡연권(담배를 피울 권리)’과 ‘혐연권(담배를 피할 권리)’이 정면으로 충돌한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흡연권과 혐연권을 “똑같은 헌법상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건강권과 결합한 혐연권이 더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혐연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 헌재의 판결을 등에 업고 국가와 사회의 금연을 위한 움직임은 가속화됐다.

담배와의 전쟁

세계 곳곳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흡연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의 대형 편의점 CVS는 15억 달러의 매출을 차지하는 담배의 판매가 자신들의 상도(商道)에 어긋난다며 지난해 10월부터 판매를 중단했다. 비교적 흡연에 관대했던 일본 역시 지난 2010년 담뱃값을 40% 인상하고 길거리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조례를 추진하는 등 강력한 금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방적 금연 정책의 실시=최근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금연법)은 150m⁲ 이상의 음식점, 카페, 술집, PC방 등의 실내 사업장에서 흡연을 못 하도록 했다. 지하철 출구, 버스 정류장 등의 금연 구역과 강남대로와 같은 금연 거리의 지정 역시 급증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길거리 흡연 금지 법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이러한 금연 정책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대학생 정단비 씨(경제학부·14)는 “간접흡연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 정부가 ‘당연히 해야 했을 정책’을 펼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조성래 씨(통계학과·12)는 “최소한의 흡연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안이 없는 일방적인 금연 정책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아직 시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흡연자와 비흡연자는 모든 술집에서 금연인지, 캠퍼스 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헷갈리고 있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김승영 씨(경제학부·13)는 “모든 식당에서 금연인 줄 알았는데 규모가 작은 동네 식당에선 예외적으로 흡연이 허용되고 있었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대안 없이 밀어붙여 온 금연 정책은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져 나오는 ‘풍선효과’를 부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흡연 장소였던 술집, PC방 등에서 흡연이 금지되자 화장실 또는 매장 출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학생 김홍기(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12) 씨는 “PC방 금연석의 경우 흡연석과는 층이 달라 담배 냄새를 전혀 맡지 않고도 게임을 했었다”며 “오히려 금연법이 시행되자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 화장실에 갈 때마다 자욱한 담배 연기에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고 밝혔다.

일방적 금연 정책은 담배뿐만 아니라 흡연자에 대해서도 악(惡)이라는 부정적 낙인을 찍었다. 2013년에 시행된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흡연자에게 흡연자는 건강을 못 챙기고(72.2%), 스트레스가 많고(62.4%), 자기 관리를 못하는(58.7%) 등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쳤다. 심지어 몇몇 회사에서는 강제로 니코틴 검사를 해 인사상의 불이익(진급 및 선발 제한, 해고, 근무평점 감점)을 주고 있다. 직장인 강기한(29)씨는 “흡연자라는 이유로 동료 직원과 상사에게 ‘의지 박약’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며 “담배 판매가 불법도 아닌데 사회적 분위기는 사실상 금연을 강제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담배 소송=흡연자뿐만 아니라 담배 회사에 대한 정부의 압박도 거세다. 정부 산하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담배회사를 상대로 수천억 원 규모의 흡연피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건강보험공단 흡연피해구제추진 담당자는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한 분석 작업을 통해 흡연과 질병의 인과성 등 소송에 필요한 근거를 마련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지방의회와 비흡연자는 강력한 찬성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인해 내가 낸 건강보험료가 빠져나가고 있다”며 “정작 질병의 원인을 제공하고 수익을 올려온 담배회사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내의 한 담배회사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재정위기 책임을 담배회사로 돌리거나 담배 관련 부담금을 우회적으로 인상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며 “과거의 판례 등으로 볼 때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은 만큼 막대한 비용과 행정력만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금연 정책 어디로 가야 하나

그동안 흡연을 규제해온 정책들은 담배 수요를 궁극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아닌 국민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 식 대처에 불과했다. 이처럼 현실과 유리된 보여주기 식 금연 정책은 탈법적 사업장의 증가와 부작용만을 낳았다.

이처럼 국가가 이중적 태도를 나타내는 이유는 담배 상인의 꼭대기에 위치한 국가에 담배는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담배사업법을 통해 담배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동시에 국민건강증진법을 통해 금연 정책을 펴고 있다. 연간 7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담뱃세 수입 감소와 관련 산업의 위축에 대한 우려가 정부의 금연 정책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흡연자들은 표면상의 흡연 규제가 아닌 궁극적으로 담배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금연 정책을 실시하도록 국가에 요구하고 있다.

빠르게 담배 수요를 줄이는 방법으로는 담뱃값 인상이 있다. 한국의 담배 가격은 2,500원 수준인데, 이는 노르웨이의 16,600원, 호주의 13,300, 미국의 6,500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은 흡연자의 저항이 심한 만큼 담뱃값의 인상을 통한 세수입을 어떻게 활용할지, 저소득층 흡연자의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줄여나갈지 등의 구체적인 방안이 준비돼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금연 클리닉을 포함한 다양한 금연 상담 서비스를 통해 담배 수요를 점차 줄여나가려 하고 있다. 전국 보건소에서는 금연 클리닉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만족도는 90%를 상회한다. 하지만 홍보가 부족해 방문자 중 약 10% 정도만이 홍보를 통해 금연 클리닉을 접했다고 응답했으며, 저소득층 흡연자의 방문율은 6.2%에 그쳤다. 그동안 일부 흡연자들이 금연 상담의 효과를 봤지만 지속적인 금연 상담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대중에 대한 폭넓은 홍보가 필요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흡연자가 금연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미국 뉴저지 주에서는 ‘흡연 부모에 대한 편지쓰기 캠페인’, 미식축구의 유명 선수가 광고하는 ‘금연상담 서비스 홍보’ 등이 흡연자의 금연 클리닉 방문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흡연의 시작을 조기에 막자는 취지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SNS 홍보 등 친근하고 쌍방향적 방식의 금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상생을 위해서는

비흡연자는 금연 장소에서의 흡연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금연 장소의 간판만 늘었을 뿐 아직도 곳곳에서 간접흡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연 장소에서의 흡연 단속은 극히 미미해 올 상반기 서울 강동구의 적발 건수는 1건, 종로구는 3건에 그쳤고 금천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관악구청 보건행정과 담당자는 “행정력의 부족으로 인해 완벽한 단속은 불가능하고 흡연자의 반발도 심한 편”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보건복지부가 올 7월 말부터 시행할 ‘금연지도원 제도’는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다소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금연지도원 제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활동수당을 받는 단속원들이 금연구역 내 흡연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러한 금연 파파라치 제도를 도입해 금연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단속의 어려움도 줄여나가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원이 많았던 업소를 중심으로 밤늦은 시간 및 휴일에도 대대적으로 합동단속에 나설 것"이라며 단속 강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한편 흡연자는 흡연권과 혐연권이 상충한다는 영합적(zero sum) 사고를 비판한다. 그동안 국가는 혐연권 확대를 위해 흡연권을 축소해야만 한다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흡연자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흡연이 가능한 장소가 충분히 마련되고, 나머지 공간에서 전면적인 금연을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양측이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그 구체적 방안 중 하나로 실내외에 충분한 수의 흡연 부스를 설치하는 것이 제기된다. 현재 흡연 부스가 설치된 공공장소는 매우 드물 뿐만 아니라 있더라도 구석진 곳에 있어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흡연자 박희만(33) 씨는 “흡연 부스가 있어도 대부분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가지 않게 된다”고 유명무실한 흡연 부스의 역할을 지적했다.

또 이들은 담뱃세 수입이 흡연자를 위해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2,500원의 담배에 포함된 세금은 약 1,550원으로 담뱃값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7조 원에 이르는 담뱃세 수입은 0.5%만 흡연자를 위해 사용되고 나머지는 재정결손을 메우는 눈먼 돈으로 활용되고 있다. 흡연자들은 자신들이 내는 담뱃세가 흡연 부스를 설치하는 것과 같이 흡연자에게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종국적으로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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