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할 장이 마련돼 있지 않다”,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다”, “다른 분이 더 잘 알 것 같다”

국보 관리 체계를 짚으면서 그중 한 단락인 일련번호 지정 문제를 취재하던 도중 들은 말이다. 한국의 문화재를 직접 심사하고 지정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사안을 두고 특별한 논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논의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한 것처럼. 이런 말을 들으니 문화재 일련번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뜬금없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한편 문화재 일련번호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일제의 잔재라거나 우열을 정하는 느낌을 준다는 등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모두의 도움을 받아 기사는 마무리됐지만 앞서 들었던 ‘걱정’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내게 물었다. ‘전문가들도 크게 신경을 안 쓰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떠들어 봐야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취재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내용이 누군가에겐 당연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최근 불거진 문화재 일련번호 논란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소통할 기회가 없어서 생긴 오해라는 점을, 오해를 풀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시민들은 문화재 일련번호를 내심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1등이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쨌든 ‘1호’로 지정된 문화재가 가장 가치 있으리라 짐작하는 건 상식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국보 1호도, 보물 1호도 우리나라의 심장부인 서울에 있으니 더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반면 전문가들은 문화재 일련번호를 행정 처리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는 문화재를 쉽게 관리하기 위해 번호를 기입하라 명시할 뿐, 문화재에 번호를 정하는 세세한 규칙은 없었다. 문화재가 지닌 가치 순으로 번호를 매겨 우열을 가리는 의도도 없었다.

분명 어느 한 쪽은 문화재 일련번호를 놓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가 오해하고 있었는지 가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양쪽이 오해를 풀기 위해 소통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 그것이 더 중요하다.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문화재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간의 오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한국적인 문화재의 조건, 손실된 문화재의 행정 처리, 전통 방식으로 복원 가능성 등을 두고 묻어뒀던 목소리를 냈다. 숭례문 부실 복구 의혹에 국보 해제 논의가 다시 일어나는 지금, 문화재에 일련번호를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공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누군가는 듣고 답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을 꺼낼지도 모른다. “우리, 국보 일련번호 이야기 한 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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