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향 박사과정
국어국문학과

영화 「피에타」(2012)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답게 여전히 거칠고 어둡지만, 돈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직접적이어서 이전 작품들보다는 대중적인 편이다. 주인공 ‘강도’는 사채의 원금과 이자가 회수되지 않으면 채무자의 신체를 훼손해서 보험금을 타서라도 돈을 받아내고야 마는 냉혹한 인간이다. 어느 날 그에게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여인 ‘미선’이 나타난다.

소설 『백의 그림자』(2010)는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환상성의 차용을 통해 그려내던 황정은의 전작들과 이어지면서도, 다소 온건하고 부드러운 인물들의 대화와 표현방식이 특징적이다. 이 가난한 연인은 상대의 기색을 살피는 조심스러운 말과 태도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이 두 작품은 소설·영화라는 점에서 장르도, 구원·사랑이라는 점에서 주제론적 층위도, 격렬함·온건함이라는 면에서 표현의 강세도 다르다. 그러나 주 서사의 이면에 흐르는 공간적 배경과 분위기가 소설의 또 다른 핵심 축을 이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피에타」의 배경은 청계천 근처의 허름한 철공소 골목이며, 『백의 그림자』의 배경은 철거 직전의 전자상가이다. 「피에타」에서 인물들만큼이나 자주 장면화되는 것은 공구상가를 위쪽에서 내려다 본 조감도와 인물들이 일하는 프레스 기계들 사이로 널린 부속품들이다. 어느 장면에서는 갑자기 영화 화면이 다큐멘터리 화면처럼 전환되면서 불꽃이 튀는 용접기로 철제를 자르는 장면이 꽤 오랫동안 등장하기도 한다.『백의 그림자』에서 자주 묘사되는 것은 좁고 빽빽하며 황량한 전자 상가의 모습과 철거가 예고된 상황에서의 사람들의 불안함이다. 이 두 작품에서 이러한 공간들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작품을 압도한다.

「피에타」에서 점점 더 불행으로 치닫는 철공소 사람들의 상황은 ‘강도’의 악함 때문이 아니라, 여기저기 뿌려진 사채 찌라시에 신체를 담보로 하고서라도 돈을 빌려야 할 정도로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구원’에 대해 묻고 있다면, 그것은 주인공 ‘강도’만이 아니라 그들의 비참한 삶,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 우리들을 향한 것이다.

『백의 그림자』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쓸쓸한 분위기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온 사람들과 가게들이 쇠락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전자상가를 누군가 ‘슬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은교는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115쪽)라고 슬퍼한다. 그리고 “뒷집 홀로 사는 할머니가 폐지를 줍다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144쪽)라고 묻는다.

마사 누스바움은 문학적 상상력과 공감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good)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윤리적 태도의 필수적인 요소“(『시적 정의』, 16쪽)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강도’나 ‘미선’, ‘은교’나 ‘무재’만이 아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지난 세기, 산업화 최하단의 빛나는 현장이었으나 이제는 낡고 허름해져버린 철거 직전의 공간과 그 공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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