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예외상태’, 현대 통치술의 이면을 파헤치다
의도된 ‘예외상태’, 현대 통치술의 이면을 파헤치다
  • 김유문 기자
  • 승인 2014.03.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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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맥락에서일까. 1차대전은 당시 국가들 간의 외교 관계나 경제 체제, 사회문화적 영역 등 다방면에 걸친 변화를 야기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예외상태’라는 독특한 시각에서 1차대전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에 따르면 1차대전으로 인해 예외상태가 상례화되며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가 본격화됐다. 더불어 그는 예외상태의 상례화가 잇따른 세계대전을 통해 강화된 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이르러서는 통치의 기반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한다. 민주화의 물결을 수차례 거쳤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공공연히 예외상태가 선포되는 오늘날 아감벤의 이론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으로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1차대전,예외상태의 실험장
 

1차대전 발발 이후 유럽을 지배했던 질서는 아노미, 즉 무질서의 질서였다. 1914년 8월 프랑스 푸앵카레 대통령은 계엄 상태를 선포했고 그 결과 입법부의 전권은 행정부에 위임됐다. 행정부는 재정 및 통화 관리, 군사 정책 등에 관한 ‘예외적 입법 권한’을 얻은 것이다. 같은 시기 영국은 ‘국토방위법’을 통과시켜 정부가 의회로부터 전시 경제 통제권을 부여받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권리를 얻었다. 전쟁 중립국이었던 스위스 의회 역시 “스위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한”을 내각에 부여했다. 미국 의회는 1917~18년 사이 행정 및 치안과 관련된 법률을 잇달아 승인하며 대통령의 전폭적인 권한을 인정했다. 그 외 벨기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국가들에서도 여러 법률들을 통해 행정부의 예외적인 권력 확대를 도모했다.
 

특히 1919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정한 ‘헌법 제48조’는 1933년까지 존속하며 국내 정치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조항의 요지는 “독일 제국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대통령이 헌법상에 규정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에선 일시적으로 적용돼야 할 법률이 일종의 장기적인 ‘통치 패러다임’으로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예외상태에 관한 법률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그리고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예외상태’란 개념을 정치적 ‘독재’와 연결시킨다.
 

칼 슈미트의 『독재론』에서 독재는 ̒위임적 독재’와 ‘주권적 독재’로 나뉜다. 위임적 독재는 “헌법의 구체적 존립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을 효력 정지시키는 것”이다. 반면 주권적 독재는 현행 헌법을 효력 정지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한정하지 않는 것이며 ̒참된 헌법이라고 생각하는 헌법을 제정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의 창출’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차대전 시기 각국이 포고한 계엄령은 대표적인 ‘위임적 독재’ 상태이며 이때 예외상태는 기존의 헌법이 제시하는 법 규범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종의 아노미적 상태이다. 따라서 법률은 잠시 적용되지 않지만 그 효력 자체는 인정된다. 그런데 ‘위임적 독재’ 개념만으론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레닌 집권기와 같은 당시의 사건들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었다. 이들 사례에서 예외상태는 기존의 법질서를 총체적으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슈미트의 ‘주권적 독재’ 개념은 기존의 헌법에 대항해 새로운 헌법을 구성하려는 ‘제헌 권력’이란 힘을 설정함으로써 그런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나아가 슈미트는 주권자가 필요하다면 제헌 권력을 이용해서 문제상황을 해결하고 곧 법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칼 슈미트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조르조 아감벤 역시 예외상태를 ‘주권론’ 즉 주권자의 통치방식이란 틀에서 분석한다. 그런데 그는 예외상태의 일시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정당화한 슈미트와 달리 예외상태가 상례화되면서 국가권력의 통치수단이 된 점에 주목한다. 그는 예외상태를 법질서에 포섭함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슈미트를 비판하며 “예외상태는 법이 없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예외상태에선 “법이 없는 법의 힘”이 작용하며 주권자는 법 규범이 아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법의 힘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감벤이 바라본 예외상태는 주권자가 자의적으로 법의 효력을 관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입한 아노미이다. 이때 아노미는 기존 법률을 효력 정지시킴과 동시에 또 다른 규범의 작동 기제가 된다.
 

아감벤은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제48조 조항이 장기 적용된 것을 예시로 들며 “히틀러의 집권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먼저 1919~33년 사이에 이뤄진 이 조항의 사용과 남용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간 동안 의회의 기능은 지속적으로 마비됐으며 대통령이 전권을 가지는 정부 형태가 자리매김했다. 특히 1930년대의 3년 동안 바이마르 공화국은 완전히 예외상태 체제로 운용됐으며 히틀러는 그런 배경 속에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전권위임법’ 등을 제정한다. 아감벤은 이 시기 남용된 예외상황이 법과 법이 아닌 것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주권자가 자의적 권력에 기반을 둔 ̒법이 없는 법의 힘’을 행사하는 배경이 됐다고 비판한다.

 

현대 통치술로서의 예외상태
 

이렇듯 1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된 예외상태는 단순한 긴급상태, 법적 아노미 상태를 넘어서 독재와 정치술 등 통치과정의 한 수단으로서 폭넓게 논의됐고 실제 역사적으로 그렇게 사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아감벤은 자신의 예외상태 연구를 “우리 시대 최고의 지배의 비밀을 관장하고 있는 픽션을 백일하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우리 시대’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통치술로서의 예외상태는 과거 역사 혹은 유럽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본국임을 자부하는 미국, 그리고 이미 ‘민주화’를 과거형으로 여기기 시작한 한국의 어제와 오늘에도 아감벤의 예외상태 논의를 적용하는 시도들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아감벤은 미국 역사 전반을 예외상태의 틀로 되짚으며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국에서조차 예외상태를 이용한 통치가 지속적인 현상이었음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남북전쟁기의 링컨이나 1차대전기의 윌슨, 그리고 경제공황기의 뉴딜정책 등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기존 규범을 효력정지하고 나아가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려는 권력의 흐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감벤과 입장을 같이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셸던 월린은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서 ‘전도된 전체주의’라는 도발적인 명제를 제시하며 9·11 사태 이후 미국 법질서의 전환에 주목한다. 원래 행정부와 의회 간의 지속적인 상호견제 시스템에 기반을 두던 미국 정치는 9·11 이후 일방적인 행정부 권력의 확대로 이어졌다. 2001년 10월엔 ‘미국 애국법’이 가결돼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생각되는 외국인들을 구류할 수 있게 됐다. 그해 11월 부시 대통령은 ‘군사 명령’을 선포해 테러활동이 의심되는 외국인을 무기한 구금할 수도 있었다. 미국 시민들 또한 도청 및 감시활동을 당하는 등 국가에 의한 기본권 침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국의 행보는 나아가 국제법질서까지 무시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전쟁 중 미군에 의해 붙잡힌 탈레반은 제네바 협약이 규정한 전쟁포로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비록 아감벤이 직접적으로 한국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예외상태론을 현대 한국 정치사와 접목시키려는 연구들 또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국가건설, 혁명, 내전, 분단과 냉전 등의 역사적 상황을 빌미로 ‘예외상태의 상례화’가 이뤄졌고 이는 독재의 발판이 됐다고 분석한다. 사회발전연구소 강성현 연구원은 광복 이후 제정된 ‘국가보안법(1948)’과 ‘계엄법(1949)’을 예외상태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두 법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계기로 비상조치로서 탄생해 계엄상태를 창출한 예외상태 법이었다”고 말했다. 홍민 교수(동국대 북한학과)는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이 야기하는 안보 프레임과 그에 따른 법질서를 예외상태로 파악한다. 그는 “안보는 표면적으로 북한 또는 외부의 위협을 대상으로 삼는다”며 “하지만 군대를 동원하고 세금을 소비하고 사회를 감시 및 검열하는 법적, 제도적 근거를 그로부터 확보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광복 이후부터 군사정권 시절, 그리고 가장 최근의 정치적 사건들까지 안보 프레임은 그때마다 주요한 쟁점으로 제기됐으며 예외적인 권력행사 및 법률집행의 개입 여지를 인정하는 논지로 기능했다.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상례화하는 근대 통치 권력이 현대판 ‘호모 사케르’를 양산한다고 말한다. 본래 호모 사케르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고대 로마의 범죄자들을 지칭하던 용어였다. 누군가 이들을 살해해도 책임을 지지않아도 될 정도로 이들은 법 밖으로 쫓겨난 존재였다. 현대 국가의 통치 기술과 법망이 점차 정교해지며 호모 사케르로 지목될 수 있는 이들은 점차 많아졌다. 나치 치하 독일의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수용자들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들처럼 법이 직접 살해를 허하진 않더라도 국가에 의해 합법적으로 배제된 이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9·11 이후 미국 국가안보국이 상습적으로 시민들을 도청 및 감시하는 현상은 일반 시민들도 잠재적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아감벤은 예외상태라는 독특한 시각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폭력의 피해자들을 포착해낸다. 그런데 호모 사케르는 법의 외부에서 그 균열을 조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은밀히 진행되던 통치 권력에 대항할 주체 세력이 될 수도 있다. 아감벤이 우리 시대 권력의 비밀을 폭로한 지금, 우리 잠재적 호모 사케르들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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