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
김상배 저

최근 칠레 정부가 흔히 ‘몬산토법’이라 불리는 ‘식물재배법’의 제정을 막아 농업 주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법 관철을 위해 세계 최대 생명공학 기업인 몬산토가 칠레 정부에 로비할 것이라 예상된다. 이처럼 몬산토 같은 초국적 기업이 한 국가의 법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정치의 흐름을 파악하는 기존의 국제정치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중심의 국제정치학을 넘어 초국적 기업과 같은 비국가행위자를 고려한 ‘네트워크 세계정치이론’을 제시한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 김상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제까지 이름 그대로의 국제(國際, 국가 사이) 정치에 집중했던 국제정치학을 보완하기 위해 ‘초국적 네트워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전에도 『복합세계정치론』, 『거미줄 치기와 벌집 짓기』, 『네트워크 세계정치』와 같은 저서를 통해 꾸준히 네트워크 이론이 국제정치학에 반영돼야 함을 주장해 온 정치학자다.

책 제목에 들어간 ‘아라크네’는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 아라크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직물 짜기로 아테나 여신과 경합하다 거미가 된 여인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에 착안해 21세기 세계정치를 전쟁의 여신 아테나로 비유되는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와 ‘거미 여인’인 아라크네로 비유되는 초국적 네트워크 행위자 간에 경합으로 바라본다. 예전과 달리 세계정치 문제가 경제나 외교 같은 한두 영역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기술, 정보,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관련된 경우가 많아지면서 국가뿐만 아니라 여러 층위의 행위자가 충돌과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권 문제의 경우 경제, 외교뿐만 아니라 환경, 기술, 자원 등의 변수까지 개입하기도 한다.

1990년 미국의 사기업들로 구성된 한 협회가 칠레의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을 거부하고 법을 고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초국적 기업이 세계정치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오래된 일이다. 21세기의 세계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국민국가 중심의 정치학 패러다임을 뒤바꿔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