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희 교수
(국제대학원)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상호 의존과 문화적 상호 개방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와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히 잔재하고 있어 ‘아시안 패러독스(Asian Paradox)’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역사 화해를 통해 갈등을 잠재우고 점차 협력과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간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은 협력이 기대되는 시대에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아시안 패러독스가 발생하고 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자신감의 회복과 적극적인 대외전략의 전개로 인한 것이다. 중국은 개혁 개방 이후 경제성장을 계속해 왔지만, 지역문제에 대한 개입을 적극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였으며, 글로벌한 차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서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어 주창하고 있는 ‘신형대국관계’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이 대국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측면과 중국이 자신들의 핵심이익에 대한 주장을 강화하겠다는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 개념이다. 중국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해양 전략이 가시화되면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한 지역에서 중국은 전보다 강한 영토 주권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의 방공식별권 선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시안 패러독스가 나타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일본이 시도하고 있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 움직임과 깊은 관련이 있다. 2012년 정권의 자리를 되찾은 자민당은 아베 총리를 필두로 전후체제로부터 탈피하여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일본의 역사와 영토, 주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깔려 있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강한 일본의 부활’은 전후 성장을 계속했던 영예의 시대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전전의 패권적 질서에 대한 향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아시아에서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베내각의 인식에는 자신들이 관여한 전쟁이 반드시 부당하거나 정의롭지 않은 전쟁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잠복해 있다.

점차 대국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강한 일본의 회복을 통해 보통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에서 떼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일본은 한국을 중국편에 서서 일본을 두들기는 ‘리틀 중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을 두고 중국과 일본이 시샘과 경쟁을 하는 형국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체제와 가치관을 같이 하는 일본이 한국을 중국의 편으로 밀어내고 있는 아이러니이다.

그렇다면 아베가 추구하는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이 왜 동아시아에 잔주름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는 전후 체제의 본질에서 온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점령체제하에서 만들어진 ‘평화 헌법(peace constitution)’을 나라의 기본 질서로 받아들이고 군사적으로 거세된 국가로 살아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실제로는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함으로써 일본의 방위를 떠넘기면서 평화와 안심감을 느꼈고, 일본 나름대로 자위대를 가짐으로써 국가 방어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군사력을 보유하는 데 만족해 왔다. 일본이 버린 것은 전전 군국주의 질서가 추구한 군사대국의 영예였다. 군사적으로는 중급국가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경제적 대국을 추구해온 것이 전후 일본이었다. 또한, 전후 일본은 아시아의 주변국들에게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가했다는 ‘가해자 의식’을 바탕으로 역사 인식에 있어서 유화적이고 리버럴했다. 사죄와 반성, 그리고 보상에 기초한 역사 화해의 시도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중국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사자였고, 발톱을 보였던 일본은 거세된 국가로서 평화국가의 이상을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전후 일본의 모습에 익숙했던 일본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주변 국가들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하는 외교를 자학사관에 기초한 맥없는 외교, 유약한 외교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고 일본의 우파들이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존사관’에 기반을 둔 역사 수정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중국과 한국의 대일 압박외교가 강화되던 시점과 겹친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그 태풍의 핵심에 놓여 있었다. 아베 내각에 들어서서 고노담화나 무라야마담화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표면화되었지만 이런 움직임의 단초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존재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부상과 군사력의 강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또 다른 움직임이 방위 현실주의의 부각이었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부터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항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쌍무적으로 강화하고 글로벌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2009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시아외교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이 재등장하면서 중국 포위망 외교와 대중 견제 노선은 강화 일로에 있다. 중국의 적극적 해양 전략과 주권의식 표명에 대항하려는 현실주의적 노력은 군사적 족쇄를 풀어헤치려는 보통국가화 노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기관리체제 강화를 위한 NSC의 설치, 미국과의 쌍무적 동맹 강화를 위한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움직임, 무기수출 3원칙의 완화, 특정비밀보호법 도입 등은 일본의 자체 방위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시도들이다.

아베내각이 추진하는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은 결국 두 가지로 축소 환원된다. 하나는 자학사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역사수정주의(history revisionism)의 추구,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속적 방위태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위 수정주의(defense revisionism)의 추구이다. 이 두 가지는 전후 일본의 리버럴들과 혁신세력이 줄기차게 반대해오던 아젠다들이다. 하지만, 혁신세력이 몰락한 일본에서 보수 우파의 입김은 거침없이 커지고 있다. 보수와 혁신의 길항에 의한 일본의 자정 작용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이유이다.

전후 일본의 입장과 자세에 익숙한 한국으로서는 아베가 추진하는 두 가지 수정주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이 일본의 방위 수정주의에 대해서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용인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의 입장에 선 한국이 역사 수정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한 어정쩡한 아베 내각의 과거사 인식은 국제사회에서조차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역사수정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한 동아시아 주변국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아베내각이 양면적 수정주의를 쉽게 내려 놓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아시안 패러독스의 해결은 일본의 자기 결단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난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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