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법학자 헨리 섬너 메인 경은 그의 비교법제사적 연구가 담긴 『고대법』에서 유언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본래 유언은 사망하기 전 자신의 의사를 제3자에게 자유로이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닌, 가족의 연속성, 동질성을 담보하기 위해 발명된 매개체라는 것이다. ‘단체의 성질을 지니기에 당연히 육체적 차원의 소멸이 있을 수 없는 가족’의 연장. 이렇듯 유언은 불균질적인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하는 가장(patriarch)의 질서를 재구현 내지는 박제하기 위한 기제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유언을 헨리 메인 식으로 정의한다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록들은 독특한 함의를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먼저 시민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수많은 법 조항들은 유무형의 역사적 경험이 문자 형태로 치환되며 걸러지고 선별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규모는 작지만 이와 유사한 양상의 기록물로서는 학생회칙을 들 수 있다. 어쩌면 학생회칙은 성문법보다 더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이전 세대가 거친 무수한 담론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안을 박제해낸 이런 규범들은 이를 공식적으로 기록해낸 이전 세대의 권위가 켜켜이 쌓인, 그래서 우리에게 어느 정도 강제된 선택지들이다. 현재 내가 내리는 판단은 이전 세대의 판단들이 이룩해낸 지적 토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규범처럼 우리들의 의사 결정 절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레퍼런스로써 기능하는 유언들도 있다. 사건의 발단과 종결이라는 유통 기한을 지닌 ‘운동’들이 출판물의 형태로 재매개된 기록물들이 바로 그것이다. 운동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기록을 공식화하지 못한 주체들은 종종 자신들의 집단 기억을 아카이빙한다. 이런 일련의 이벤트를 통해 ‘독자층’을 형성함으로써, 운동의 이전 세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현재화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현재도 학내 곳곳에 배치된 『관악 안녕』을 들 수 있겠다. 공론장을 실시간으로 형성하던 대자보들은 이제 그 상호작용성을 잃은 채 박제돼 오늘의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그러나 그 기억을 사후적으로 접하게 될 누군가에게 이 책자들은 부동의 활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활자는 공감각적으로 수용되는 ‘경험’과는 달리 감상자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매체다. 이렇듯 상속자와 유언자 간의 극복 불가능한 괴리는 감히 이전 세대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허용케 한다. 후속 세대의 정치는 역사에 빚질 수밖에 없지만 이를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박제된 운동 – 집단 유언 – 의 현재적 정치성은 이 과정에서 발현된다. 박제된 운동을 박물관에 넣는 대신 이를 해체하고 개선의 여지를 상상할 수 있는 이들은 가장이 아닌 그 자식들이다.

이는 아무리 매체가 발전한다하더라도 모든 기억의 요소가 기록될 수는 없기에, 이로써 생기는 문자와 문자 사이의 흰 여백은 독자의 해석으로 메워질수밖에 없기에 가능한 일은 아닐까. 해석이 개입한 유언은 이제 과거가 아닌 미정(未定)의 미래를 향한다. 나는 이 박제된 운동의 여백을 굳이 메우고자 하는 시도, 과거를 현재화시키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 시도들을 ‘박제 이후의 운동’이라 부르고 싶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유언은 말 그대로 어떤 움직임의 한 줄 요약이 될 수도, 화면 너머를 겨냥해 뻗어 가는 소실점을 지닌 거대한 역사화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기록들 위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켜켜이 먼지 쌓인 박제의 시대 속에 살 것인가, 방부 처리된 과거를 의심하고 ‘나’의 또 다른 문장을 석판 위에 적어넣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할 것인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