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현 강사
(교육학과)

최근에 내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이 있다. 정글의 법칙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는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해 의식주를 해결한다. 프로그램은 그들의 생존 기술에 초점을 맞추지만 내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 할거야’라는 꿈을 꾸며 모진 환경을 버티고, 출발할 때는 패기가 넘치지만 돌아올때는 지쳐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나는 그 모습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는 삶의 전형(典型)을 본다. 살아남기 위한 삶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버텨낼 뿐이다.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살아남았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존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생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미리 배워두라고 부추기며, 살아남기 위해 살라고 등 떠민다. 온갖 캠핑 도구와 서바이벌 기술로 무장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경외감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생존 기술을 익히고 모으느라 일생을 허비할까봐. 살아남은 후 허탈해할까 봐.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정글로 오해할까 봐.

우리 세대 역시 취업을 위해 생존 기술을 익혀야 했다. IMF 금융위기로 취업 환경이 변해 세상은 척박했으며, 취업 준비니 경쟁 사회니 하는 말이 없어도 낯선 세계가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16년을 살다 보니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바깥 세계는 실로 두려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글에 들어가기 위해 4년 동안 배낭을 꾸리지는 않았다. 내가 발붙이고 있던 학교와 20대 초반의 삶을 살면서 배낭을 꾸렸다. 그래도 살아 남았다.

혹자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얘기는 100년 전에도 200년 전에도 선대가 후대에게 들려주던 이야기이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시대 환경은 늘 변해 왔다. 어느 시대건 젊은이들은 생존 기술을 익혀야 했고, 사회 초년생이었으며, 사회는 늘 미지의 낯선 세계였다. 간혹 주변을 경계하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정글이 아니다. 혼자 밀실에서 불 피우고 물고기 잡는 연습을 무한 반복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바다가 없는 곳에 정착하면 물고기 잡는 법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두렵기 때문에 4년 내내 정글로 들어갈 배낭만 꾸리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한 번 만든 배낭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살다 보니 살아남은 것이다. 물고기 잡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살지 않았다. 살다 보니 물고기를 잡아야 했고, 하다 보니 조금 더 능숙하게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짧은 기간 동안 가진 자원만으로 버티고 돌아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다. 기본 물품으로 시작해도 살면서 새로운 물품을 구비할 기회는 얼마든지 주어지며, 나의 지식과 기술도 늘어 간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서로의 배낭에서 필요한 것을 빌려오기도 하고, 빌려 주기도 하면서 팔십여 년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셋. 옛 어르신의 말씀처럼 세상 보는 눈도 넓어지고, 신념도 확고해져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넘겼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대에게도 그리고 40대에게도 산다는 건 그런거다. 너무 무거운 짐을 꾸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으며, 휴게소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긴다는 심정으로 가장 중요한 내 신발끈만 고쳐 매 보자. 인생살이가 한결 편안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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