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상황을 상상해 보자

당신은 길을 가다 불에 타고 있는 집을 발견했다. 불타고 있는 집에는 두 생명체가 있다. 하나는 당신의 어린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개다.
불길이 너무 거세서 당신은 아들이나 개 둘 중 하나만 구할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아들을 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을 조금 바꿔보자. 불타는 집에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있다. 당신은 이 둘을 모두 모르지만 도덕적인 사람이라 둘 중 하나는 꼭 구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역시 사람인가?
마지막으로 가정을 바꿔보자. 불타는 집에는 극악무도한 흉악범 한 명과 당신이 오랫동안 가족처럼 길러온 개 한 마리가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세 가지 상황에서 당신을 이끈 도덕적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1. 우리에게 동물은 그저 불쌍할 뿐이야

동물 보호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4월, 자동차 트렁크에 개를 매달고 달려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던 ‘악마 에쿠스’ 사건은 동물 학대를 반대하는 여론을 증폭시켰다. 동물 학대에 대한 언론의 보도 역시 급증했다. 인터넷 포털 뉴스에서는 동물 학대를 다룬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그럴 때마다 이를 비난하는 대중의 목소리는 거세졌다. 이에 더해 이효리, 김혜수 등 인기 연예인들이 동물 보호 캠페인에 동참하고 SNS를 통해 이를 알리면서 동물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정부도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2012년 전면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해 동물 학대를 저지른 사람에게 징역형을 부과하는 조항이 담겼다. 2013년에는 규정이 더 강화돼 동물 학대 영상물을 유포한 사람에게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하는 등의 조항이 추가됐다. 이는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범죄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된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가 2013년에 발표한 ‘서울시 동물헌장’에는 동물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동물에 대한 학대와 폭력이 비윤리적 행위임을 지적하며, 서울 시민은 동물보호법과 조례를 준수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밝혔다. 2008년부터 시범 지역을 중심으로 시행돼온 ‘반려동물 등록제’는 유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3년부터는 그 시행이 전국으로 확대됐고, 올해부터는 미등록 시 과태료 40만 원이 부과된다.

2012년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가 실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서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국민의 의식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98.1%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94.1%의 응답자가 동의를 했다. 동물 학대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대해서는 89.6%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수년 전에 비해 동물 보호의 필요성과 의무감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범위는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반려동물과 유기동물, 멀게는 동물원까지다. 그리고 그 인식은 ‘동물들이 불쌍해!’에서 그친다.

동물을 마주치는 방식은 다양하다. 매일 아침에 바르는 화장품의 대부분은 동물 실험을 거쳐 만들어졌고, 신고 있는 구두는 한때 동물의 몸을 덮고 있던 가죽이었다. 또 매끼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는 농장 동물의 사체를 썰어 놓은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축산 시설에서 기르는 농장 동물은 1억 6천만 마리 수준으로 추정된다. 농장 동물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동물 학대 사건의 동물들보다 더 심한 고통을 태어날 때부터 도축될 때까지 겪고 있다. 가해지는 학대의 정도와 개체 수를 고려했을 때 동물 학대의 수준이 가장 높은 것은 농장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연민의 대상이 되는 반려 동물의 학대 사건과 달리 이용의 대상인 농장 동물에 대한 학대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 2010년 말 발생해 2011년 봄까지 전국을 휩쓸었던 구제역 사태 때 소 15만 마리와 돼지 330만 마리가 살처분 후 매몰됐다. 살처분은 가축의 전염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가축들을 죽여서 묻거나 태우는 것을 말한다. 가축 전염병에 대한 대책으로 살처분 매립이 적절한가는 차치하더라도 당시의 살처분은 ̒살(殺)̓처분이 아니었다. 긴급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산 채로 수백 마리의 살아있는 돼지들을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에 2012년 녹색당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축산법의 일부 내용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이에 국민들의 관심은 시들했다.

2013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동물을 매몰하는 경우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지만, 2014년 초 조류 독감이 창궐하며 같은 일이 닭과 오리에게 또 벌어졌다. 1천만 마리가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묻지마 살처분’에 이번에는 동물보호단체부터 종교단체까지 사회 각계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여전히 일반 국민 대다수의 반응은 “어쩔 수 없다”였다.

2. 동물에게 복지를 허하라

현대의 축산 농가는 대부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동물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공장식 축산은 동물 이용의 윤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빽빽하게 밀집된 공간을 ‘닭장 같다’고 표현하듯 공장식 축산에서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매우 비좁다. 과거에는 마당에서 뛰놀며 길러지던 닭은 이제는 A4용지 한 장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날개도 펴보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한다. 알 낳는 기계로 취급받는 ‘산란계’는 달걀을 최대한 많이 낳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받는다. 빛의 양이 많아지면 달걀을 더 많이 낳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불을 밝히며, 달걀을 더 이상 낳지 못하면 강제로 털갈이를 시켜 다시 낳을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닭이 죽는 경우도 많지만 양계업자 입장에서 수입과 손실을 계산해보면 그래도 수익이 훨씬 남는 장사다.

돼지 역시 공장식 축산에서는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된다. 수백 마리가 좁은 축사 안에서 뒹굴면 배설물로 인해 유독가스가 발생하는데 돼지는 콧속에 털이 나지 않기 때문에 폐질환에 쉽게 걸린다. 이 때문에 새끼 돼지의 폐사율은 대한양돈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4.7%로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공장주에게는 환경을 개선하기보다는 몇 마리쯤 죽는 편이 수익이 더 높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가축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이상 행동을 보인다. 닭은 부리로 서로를 쪼아 상처를 내고, 돼지는 동료 돼지의 꼬리를 물다가 엉덩이까지 물어뜯는다. 이러한 동물의 이상 행동에 ‘제품’에 상처가 나 제값을 받기 어려워지자 공장주는 손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부리 끝을 자르고 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방식 역시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든다.

이러한 공장식 축산과 동물 학대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동물해방전선’은 실험실을 습격해 동물을 구출하거나 동물 학대에 가담한 농장주를 협박해 농장을 폐쇄시키기도 하는데, 때론 테러에 준하는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보호단체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변화를 꾀한다.

동물보호단체 중 ‘동물복지’ 진영은 인간과 동물의 평등을 주장하며 동물에게 복지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평등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뜻과 차이가 있어 대중의 오해와 반감을 일으킨다.

평등은 인권 차원에서는 동등한 정치사회적 권리의 부여를 뜻하지만, 동물복지 차원에서는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의 개념을 뜻한다. 공리주의의 시조인 제레미 벤담은 “각 개인은 한 명으로 계산되며 그 이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이익의 총합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계산할 때 지능이나 인종, 성별 등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차이를 근거로 차등을 둬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또 벤담은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개인은 모두 동등한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이를 계승하는 동물복지 운동가는 벤담의 주장에서 ‘개인’은 이제 ‘개체’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등동물을 제외한 대다수의 동물이 고통과 쾌락을 느끼고 있고, 이는 과학적으로도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이들은 동물도 인간과 같이 동등하게 이익이 고려돼야 하며 도덕적 지위도 가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지위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최소한 식탁에서 식사를 해야 만족하지만 개는 개밥그릇에 개밥을 담아줘도 만족한다. 이익동등고려의 원칙은 이처럼 동물과 인간의 이익은 동등하게 고려하지만 각자를 대우하는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동물복지 진영의 주장은 생소해보이지만 이미 우리 사회가 실시하고 있는 동물보호 정책의 사상적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 제29조에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가 마련돼 있다. 이는 영국에서 1994년 시작한 ‘Freedom Food 인증제’를 모델로 하는 것으로, 국가가 정한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 돼지, 닭 사육농장에 대해 국가에서 인증을 해주고, 인증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마크’를 표시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양돈 농장의 경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돼지를 좁은 공간에 가두어 기를 수 없고, 항생제 사용이 금지되며, 꼬리 자르기와 송곳니 뽑기가 금지되는 등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2012년 3월 산란계를 시작으로 2013년에는 양돈 농장까지 확대가 됐으며 앞으로 소 사육농장까지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동물복지 축산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아직 높지 않다. 2012년 실시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87%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모른다고 응답했으며,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축산물을 구매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36.4%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녹색당, 카라, 심상정 의원 등은 지난해 4월에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 제안서’를 내놓은 바 있다. 이들은 제안서를 통해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명하고, 동물이 생명을 마감할 때까지 본연의 삶을 영위하는 복지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자고 발표했다. 또 동물복지 진영에서는 정부가 로하스(LOHAS) 인증이나 해썹(HACCP) 인증처럼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역시 대대적 홍보를 통해 시민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인지도를 높여서 윤리적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동물복지 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어차피 식용으로 도살될 동물에 대해 복지가 무슨 소용이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동물복지 운동가에게 생명을 잃는 것과 살아있는 동안 고통을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동물복지 진영은 철저하게 공리주의에 의거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진영은 동물을 불가침의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동물을 인간의 수단 혹은 재산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이 동물을 이용할 때 역시 인간과 동물의 이익의 총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의 조건은 만족돼야 한다. 때문에 동물복지 운동가는 농장 동물이 식량으로 이용돼 인간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이 가해지는 것은 공리주의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 감정적 접근보다 이성적 접근으로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것이 동물복지 진영의 특징이다.

3.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물권리’ 이론을 제창한 미국의 철학자 톰 리건(Tom Regan)은 정신적으로 한 살 이상의 포유동물은 하나의 ‘삶의 주체’로서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합리적 존재로 행동할 수 있는지와 상관없이 본래적 가치(inherent value)를 지니듯, 동물도 이와 같은 본래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권리론자는 동물 착취뿐만 아니라 동물의 이용도 반대한다. 이들은 윤리적 육식이든 이익을 고려한 실험이든 동물을 수단화하는 모든 행위는 동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본다. 칸트의 의무론적 권리론의 입장을 취하는 이들에게 동물은 목적 그 자체로 대접해줘야 할 존재이다.

때문에 동물권리 진영과 동물복지 진영은 많은 부분에서 동물보호 방법에 대한 입장차를 보인다. 이를테면 ‘죽음의 도덕성’을 두고 동물권리 진영에서는 동물에게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안락사라 할지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죽음보다 고통에 집중하는 동물복지 진영에서는 안락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그렇지만 동물권리론자가 동물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와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동물에게 투표권이나,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동물의 권리로 인정하는 것은 ‘도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동물권리론자는 닭이 날개를 퍼덕이며 모래 목욕을 하고, 돼지가 햇볕을 쬐며 땅을 파는 것과 같이 동물은 타고난 습성대로 자신의 본래적인 가치를 발현할 도덕적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동물권리에 대한 오해를 풀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로는 인간이 같은 종에게 유리한 선택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로는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우월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언어와 도구를 이용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동물과는 차별적 지위를 가진다는 것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동물권리를 윤리 이론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동물권리론자에게 이러한 주장은 당위성이 없다. 우선 첫 번째 이유인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인간의 입장은 팔이 안으로 굽는 모든 부조리를 용인하는 것으로 보편적 윤리가 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인 인간은 동물에 비해 우월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물권리론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의 우월함이 동물을 이용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만약 그것이 용인된다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갓난아기나 지적 장애인의 도덕적 권리를 박탈해도 되느냐고 동물권리론자는 반문한다.

이에 대해 동물권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갓난아기와 지적 장애인은 인간이며 동물과는 엄연히 다른 종이기 때문에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답한다. 이러한 ‘종 차별주의’적 입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있는데, 최훈 교수(강원대 교양학부)는 그의 저서 『벤담&싱어:매사에 공평하라』를 통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만약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외계인이 지구에 출현해 인간을 사육하고 착취한다고 했을 때, 인간은 그동안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박탈해온 것처럼 외계인에게 그것을 박탈당해도 정당한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동물권리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상향으로 비춰지기 쉽다. 하지만 동물권리에 기초한 동물보호 정책 역시 조금씩 우리나라에 자리 잡고 있다. ‘길고양이 TNR(trap-neuter-return) 사업’은 인간과 마찰을 빚는 길고양이를 안락사하지 않고 중성화를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길고양이는 인간에게 특별한 이용 가치가 없지만 본래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락사로 도덕적 권리를 임의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은 문명 이전부터 이 세상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동물은 엄연한 지구의 거주민으로서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서울시 동물헌장의 동물권리 정신을 반영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4. 동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1988년 오스트리아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로 보호한다.’고 규정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에서 동물이 상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손상된 재산 가치가 아닌 실제로 치료에 지불한 비용을 기준으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민법상 동물이 재산으로 고려된다. 때문에 많은 경우 동물은 법의 울타리 안에서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물복지 활동가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통해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려 노력하고, 동물권리론자는 동물을 삶의 주체로 격상시켜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동정심과 경멸감만으로 구성됐던 동물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는가? 동물과 인간의 동등한 이익 고려, 본래적 가치를 가진 동물의 도덕적 권리.

선택지를 확인했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해보자.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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