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9일부터 5월 16일까지 2주간 보건진료소에서는 학부 및 대학원생 5,241명을 대상으로 학생정기건강검진(건강검진)을 실시했다. 건강검진 내에서도 △우울 △불안 △자살 위험 △스트레스 정도 △인터넷·게임 중독의 총 5개 항목으로 구성된 정신건강검진 결과는 학내 구성원의 정신건강 현황에 대해 새삼 경종을 울린다. 『대학신문』은 건강검진을 통해 드러난 학내 정신건강 문제의 실태를 짚어본다.

◇우울과 불안, 정신적인 재충전이 필요한 때=건강검진 결과 우울의 경우 응답자의 28.9%(경도 21.8%, 중등도 6.6%, 중증 0.5%), 불안의 경우 응답자의 22%(경도 18.6%, 중등도 이상 3.4%)가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신과 전문의의 치료를 요하는 기준은 중등도 이상이지만 보건진료소 정신건강센터 노명선 교수(신경정신과)는 우울 및 불안 판정을 받은 경우 보다 정밀한 검사를 통해 본인의 상태를 정확히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보편적인 문항으로 결과를 집계하는 집단검사의 특성상 경도 상태로 진단을 받았어도 막상 개인 검진을 실시하면 중등도나 중증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보다 정밀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흔히 마음의 감기로 비유되는 우울은 객관적 척도에 의한 검진에서는 28.9%가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응답자 본인에게 경험 여부를 묻는 문항에서는 59.0%가 우울을 경험했다고 답해 정신건강문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우울은 단순한 우울감뿐만 아니라 의욕 저하, 심한 자책감, 자살 충동 등의 정신적 증상과 소화 불량, 수면장애, 섭식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는 몸과 뇌의 병이기도 하다. ‘2013년도 서울대학교 학생정기건강검진 보고서(보고서)’에 따르면 섭식장애를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이 17.8%를 차지했으며 수면장애를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은 30.4%에 달했다.

불안은 외부의 위험 요소에 대한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지만 실제 외부 환경에 비해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불안해하는 상태가 지속될 경우 정신적인 문제로 분류된다. 주요 불안장애로는 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증, 범불안장애 등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공포증을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이 10.7%를 차지했으며 강박사고 및 행동의 경우 22.8%, 공황장애의 경우 4.9%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우울 및 불안 증세의 원인으로 노 교수는 정신적 압박 상황이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잘해야만 하는데’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이 지속되다 보면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이는 곧 우울이나 불안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한편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8%의 학생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1.7%는 ‘자살계획 경험자’이며 45명에 해당하는 1%의 학생이 ‘자살시도 경험자’이다. 자살 동기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 것은 우울 및 절망(55.4%)이었으며 학업문제(26.1%), 취업 및 진로문제(23.7%), 가족갈등(22.5%)이 그 뒤를 이었다.

◇누적되는 스트레스, 신체 질환 초래한다=통계청에 공시된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대한 체감 정도를 나타내는 ‘스트레스 인지율’ 항목에서 19세부터 29세 사이 연령대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34%) 나타났다. 건강검진 결과에 드러난 학내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검사자가 본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자가진단을 하는 ‘주관적 건강상태’ 항목에서는 전체 학생의 42.4%가 본인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높음 35.7%, 매우 높음 6.7%) 주관적 스트레스 수준이 높다고 답한 사범대의 한 학생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친구들과의 수다나 음주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다른 욕구의 충족을 통해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환경적 변화로 인한 심리적 긴장으로서 모든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번 건강검진 내 객관식 문항을 통한 ‘스트레스 반응 정도’ 검사에서는 응답자의 83.9%가 적정 수준의 스트레스를 유지하는 ‘스트레스 예방군’에 해당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약 10%는 스트레스 정도에 있어 주의를 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응답자의 3.9%는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나 신체적 질병으로 발병할 소지가 있는 ‘스트레스 관리요망군’으로 판명됐다. 노 교수는 “관리요망군의 경우 통제 불가능하고 불확실하며 강한 정도의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가해진 경우로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부수적인 신체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농후해 정신건강 상담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어구처럼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축적되면 2차적 정신질환 및 신체적인 증상으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노 교수는 “스트레스로 인해 긴장 상태가 지속될 경우 정서적 불안이나 집중력 저하 등의 정신적 문제뿐 아니라 과민성 대장증후군, 심장병을 비롯한 전신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며 “운동 등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자신만의 수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게임 중독 비율 높아… 스마트폰 중독도 한몫=이번 건강검진에는 이례적으로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에 대한 중독 검사도 포함됐다. 그 결과 응답자 중 중독 증상을 보인 비율이 74.1%에 달했다.(경도 37.4%, 중등도 24.6%, 고도 10.3%, 최고도 1.8%) 노 교수는 “중독에 대한 이번 검사는 약식으로 진행됐으나 인터넷, 게임 중독이 예상보다 심각한 문제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며 “이런 결과를 반영해 올해 실시될 종합건강검진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검사 문항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노 교수는 인터넷 매체가 접근성이 높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인터넷이나 게임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종종 우울의 2차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며 “다른 것을 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활문화원(대생원)은 중독의 원인으로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도피를 지적하기도 했다. 대생원은 “내담 사례를 보면 공부가 안 돼서, 외롭고 우울해서 등 개인이 가진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인터넷, 게임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과대학이 주관한 ‘2011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는 인터넷 중독이 있는 경우 하나 이상의 정신장애를 경험한 경우가 75.1%였다. 인터넷 중독의 39.9%에서는 불안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고, 39.1%에서는 우울을 포함한 기분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게임 중독 외에 일일 컴퓨터 사용시간 및 스마트폰 사용시간에 대한 검사도 시행됐다. 컴퓨터 사용시간의 경우 일일 ‘4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학생이 전체 응답자의 14.3%였으며 스마트폰 사용시간의 경우 18.1%가 하루 4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자유전공학부의 한 학생은 스마트폰의 중독 요인으로 “스마트폰이 가지는 즉각성이 중독을 유발하는 것 같다”며 “시시때때로 메신저, SNS 등에서 알림이 오고 그걸 당장 보지 않으면 나중에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 소비 속도가 너무 빨라 스마트폰을 제때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밝혔다.

◇정신건강문제, 도움의 손길은 우리 주변에 있다=정신건강센터 측은 건강검진을 통해 항목별 결과를 종합한 뒤 상담 및 치료를 요하는 고위험군 학생에 한해 개별적으로 재검 판정 결과를 통보했다. 전체 검사자 중 5.5%의 학생이 ‘재검 요망’ 판정을 받았으며 이들 중 재검 의사를 밝힌 16%는 검사 및 개별면담 등의 평가를 통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의뢰, 정신건강센터 및 학내 상담 기관 상담 연계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정신건강서비스시스템에 인계됐다.

건강검진 관련 업무 이외에도 정신건강센터는 신경정신과 진료를 상설 운영하고 있으며 뉴로피드백, 명상 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정신건강센터는 대생원과의 유기적인 연결 체계를 통해 방문자의 성별, 연령, 심각성, 호소 문제에 따라 개인에 맞는 치료도 상시 제공하고 있다. 대생원은 “정신건강센터는 상담 치료가 필요한 방문자들을 대생원에 의뢰하고, 대생원은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약물치료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정신건강센터 방문을 권유하는 식으로 연계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대생원은 심리검사 및 개인상담,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위기상담전화 서비스 스누콜(SNU Call)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상담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심리 상담과 동일하며 심리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전공자들이 상담원으로 등록돼 있다. 내담자의 상담 신청이 접수되면 면접 과정을 거쳐 얻어진 내담자의 정보를 토대로 회의를 통해 적합한 상담원을 배정한다. 이 같은 절차에 대해 대생원은 정신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설명했다. 대생원은 “신체질환은 대개 병소가 명확해 약물치료나 수술을 통해 병소를 제거하는 식으로 치료가 이뤄진다”며 “이에 반해 정신질환은 원인이 다층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생원은 스누콜의 도입 배경에 대해 “개인상담은 항상 열려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살과 같은 충동적인 결정에 도움을 주기 어려워 이를 대비해 스누콜을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기 이해는 정신 건강의 첫걸음이자 종착역=그러나 근처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 결과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했을 때 전문가의 진단이나 치료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경우는 전체 응답자의 6.4%에 지나지 않았다.

‘상담이나 약물치료만으로 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와 같이 흔히 갖기 쉬운 정신 치료에 대한 회의감에 대해 정신건강센터와 대생원은 공통적으로 정신건강문제에 대한 자기 상황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할 것을 당부했다. 대생원은 상담자가 전문성을 기반으로 객관적인 자기 인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생원은 “일례로 발표 불안 및 사회공포증이 있는 내담자를 위해 발표 훈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 불안한지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상담을 진행한다”며 “물론 긴장이나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순 없겠지만 불안의 이유를 안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끔찍하게 보지는 않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 외 기록 및 약물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 노 교수는 “정신건강센터에서는 요청 시 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기록을 일절 남기지 않는다”고 답하는 한편 약물치료에 대해 “약물치료가 심각하고 만성적인 경우 가장 빠르고 안전한 치료법이긴 하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의 상태나 증상에 맞춰 상담과 병행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권장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울 치료를 위해 1년 반 가까이 정신건강센터에 내원해온 자연대의 한 학생은 정신 치료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정신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마음속 허들을 낮출 것”을 조언했다. 그는 “전문의에게 자신의 상태를 풀어내면서 감정의 본질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다 보면 몇 가지 경험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른다”며 “때로는 부끄럽고 고통스러웠지만 이처럼 나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이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이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자기 이해의 첫 걸음은 결국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는 데서 온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시끌벅적한 사회 속에서 이제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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