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어르신들 하루가 급합니다.”
기초연금을 둘러싸고 여야가 팽팽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전국에 현수막을 내걸고 야당이 기초연금제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며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공약 파기를 꼬집는 현수막을 내세워 맞대응을 하고 있다.
 
기초연금 논란은 “지키지 않을 약속은 하지 않는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이후 태도를 바꿔 기초연금 지급 대상과 연금 수령액을 축소하며 시작됐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일정 금액의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정이 부족하고 미래 세대가 져야 할 세 부담을 줄이겠다며 작년 말 기초연금 수정안을 제시했다. 수정안에는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수준 하위 70%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비례해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당은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되자 이에 적극 동의했다. 하지만 야당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정부의 안이 노후 빈곤을 방치하는 처사라며 반발했다. 이러한 여야의 입장 차로 기초연금법안 처리는 계속해서 미뤄졌고, 당초 7월로 계획됐던 연금 지급은 시행이 불투명해졌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부와 여야는 기초연금법을 조속히 처리하자는 합의를 도출하고 여·야·정 협의체를 마련하기로 했지만 실제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과의 연계, 청년에게 득일까, 독일까
정부의 기초연금 수정안은 국회를 넘어 청년들의 반발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26일(수) 고려대 서관에서는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참여연대가 주최한 대학 순회 간담회 ‘당신도 노인이 된다-영맨(Young Man) 연금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가 열렸다. 청년들과 시민단체는 간담회에서 기초연금과 관련된 주요 쟁점을 짚고, 현행 연금 제도를 점검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기초연금 논란의 중심엔 정부가 제시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방안이 있다. 정부가 작년 말 발표한 수정안에 따르면 기초연금 지급액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비례해 감소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년을 넘어서는 때부터 기초연금이 삭감되기 시작해 20년부터는 10만 원의 기초연금만을 지급받게 된다.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것은 청년 세대의 조세 부담 완화였다.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일괄적으로 지급하지 않고 기초연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게 되면 청년들이 미래에 노인 부양을 위해 납부해야 할 세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는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경우 1인당 세금 부담은 41만 원에 달하지만, 수정안을 채택하면 세금 부담이 28만 원으로 감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수정안을 반대하는 측은 수정안이 오히려 청년들의 노후소득을 위협한다고 비판한다. 수정안이 보장하는 기초연금의 크기는 이전부터 시행해온 기초노령연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은 소득 수준 하위 70% 이하의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으로, 단계적으로 지급액을 증가시켜 2028년에는 약 19만 원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연금을 수령할 나이에 도달했을 때 보통 국민연금에 장기간 가입한 상태이므로 수정안이 시행되면 기초연금 차등지급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따라서 청년들은 연금을 수급할 시점에 20만 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결국 청년들은 앞으로 자신이 지급받을 연금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부 수정안이 가져올 세금 인하를 무작정 환영할 수만은 없다.

또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제도에서 최대 9만 7천 원을 수령하고 있는 노인은 수정안이 채택되면 10~20만 원을 보장받게 된다. 정부의 수정안은 세대 간 불공평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이태형 대표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보면 정부안이 통과될 경우 지금보다 40대는 1,541만 원, 30대는 2,782만 원, 20대는 4,260만 원만큼 더 적은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며 “현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청년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동시에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아지는 공적연금, 커지는 노후불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가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공적연금의 기반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기초연금 지급 대상자를 축소하고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해 차등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후 세 달 만에 약 1만 명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가 탈퇴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국민연금 임의가입자는 약 3만 명 감소했는데 이는 국민연금 출범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임의가입자는 연금 수급자가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사람이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만큼 임의가입자 수는 공적 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따라서 이러한 임의가입자의 대규모 탈퇴는 국민연금제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임의가입자가 대규모로 감소한 이유는 정부의 수정안이 성실한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를 역차별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최소가입기간이 10년인 공적 연금으로 가입기간에 비례해 연금의 보장성이 높아지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이 국민연금의 가입기간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된다면 기초연금을 보장받기 위해 국민연금에 장기간 가입하지 않게 된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빈곤한 노후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층이 국민연금 가입을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은 당장의 생활비 감소와 기초연금 삭감을 감수하며 국민연금에 가입할 여유가 없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가입 기간 중 평균소득이 186만 원인 가입자는 국민연금에 20년 가입하면 40만 원의 연금을 지급 받고, 기초연금은 10만 원 삭감된다. 하지만 이는 1인 가구의 최저 생계비 603,403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즉, 차등 지급을 전제로 하는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될 경우 저소득층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기초연금만 선택할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원 제갈현숙 연구원은 “정부가 국민들이 공적연금에 가입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최저 혹은 그 이하의 생계수준만을 공적 차원에서 보장하려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가 제시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 방안이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한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지난 2007년 일련의 연금개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 중 연금으로 지급하는 비율)이 60%에서 40%로 낮아지자 정부가 국민연금의 낮은 보장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기초연금은 이러한 기초노령연금의 확대 실시안에 해당하는데, 기초연금이 기초노령연금의 확장인 만큼 보장성이 낮아진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의 기초연금을 삭감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갈현숙 연구원은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근로기간은 국민연금제도가 상정한 최대 가입기간인 40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국민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을 보장받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삭감하는 정부의 수정안은 앞으로 국민연금의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발생할 노인빈곤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공적연금의 역할이 축소되면 노후보장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과 시장에 돌아가게 된다는 점도 수정안에 반대하는 측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민간 연금제도를 통해 국민 모두가 충분한 노후대비를 하기에는 아직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제도와는 달리 민간 연금제도는 해약이 가능해 장기 가입률이 낮은 편이다. 실제로 사적연금보험의 경우 10년 이상 가입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20%가 안 되며 대부분이 중도에 계약을 해지해 노후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노동팀장은 “사적인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한다는 것은 허상”이라며 정부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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