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담은 ‘인문정신문화정책’을 위해
인문학을 담은 ‘인문정신문화정책’을 위해
  • 강수원 기자
  • 승인 2014.04.0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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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전수만 기자 nacer8912@snu.kr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 4대 기조로 내세운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양한 ‘인문정신문화’ 진흥 방안이 준비되고 있다. 작년 말엔 인문사회과학진흥법, 인문정신문화진흥법,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지원법 3개가 계류된 상황이다. 올해 2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문화기반국 산하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해 문화융성을 통한 국민행복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집권 초반에 ‘인문정신문화정책’이 140대 국정과제 중 113번째로 후순위에 지정됐던 상황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정부가 갑작스레 ‘문화융성’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단으로 인문학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이에 문화연대와 공공운수노조연맹 세종문화회관지부의 공동 주최로 지난 2일(수)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안을 준비하는 문화정책 포럼’(사진)이 열렸다. ‘정부의 인문정신문화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하는 이번 포럼의 참가자들은 인문학의 기본 정신을 돌아보고 현 정부의 ‘인문정신문화정책’ 전반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기조 강연을 맡은 강내희 교수(중앙대 영어영문학과)는 국내 인문학이 거대 자본에 의한 대학의 기업화, 교양 영역을 축소하는 정부 정책을 겪으며 위기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정부의 ‘인문정신문화정책’도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인문학자들이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판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오창은 교수(중앙대 교양학부대학)는 인문학을 국가 정책의 도구로 이용하고 성과 위주로 접근하는 현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40년 전 박정희 정부가 실시한 ‘문예진흥 5개년 계획’의 ‘문예진흥’ 대신 ‘인문학’을 넣은 단어 차이를 제외하면 인문학과 경제를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문정신문화정책의 문제점이 크게 △성장 정책에 인문학 편입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집중 △인문학 학문 토대 형성 간과 △도서관·박물관 중심 협소화 순으로 발제됐다.

먼저 인문학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정책 방향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됐다. 지난 3월 발간된 문화진흥기본계획 워크숍 보고서는 ‘경제발전의 새로운 차원의 동력으로서 콘텐츠 및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학진흥원은 전통 이야기를 콘텐츠화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를, 국립중앙박물관은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문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명원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산업적 차원의 문화 콘텐츠 진흥을 ‘인문정신진흥’이라는 느슨한 용어로 인문학과 연계시켜 정책을 진행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이 인문학 대중화에 치우쳐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문학 연구 분야가 수치화하기 쉽고 성과가 빠르게 가시화되는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밀려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융성위원회가 작년 10월 25일 발간한 보고서는 ‘고전의 현대적 번역을 통한 인문학 대중화’, ‘알기 쉬운 인문학 교재 보급’ 등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중점으로 삼고 있다. 교육부가 올해 책정한 인문학 대중화 사업 예산은 6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증액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창은 교수는 “인문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할 구조적인 지원 없이 대중화를 우선하는 것은 성과 위주의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인문학 연구 분야를 활성화할 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부는 ‘HK사업’이나 ‘BK21 포스트 사업’을 토대로 대학 내 인문학 연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대학 특성화 사업’에 따라 인문계열 학과가 통폐합되고 교양과정이 축소되는 상황과 모순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명원 교수는 “대학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인문학을 압살과 가까운 상태로 몰고 가는 정부가 한쪽에서 인문학을 부흥시키겠다는 건 형용모순”이라고 말했다.

문체부가 정책 추진을 도맡다 보니 사업이 도서관과 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문제도 거론됐다. 이는 ‘인문정신문화과’의 전신이 ‘도서관 박물관 정책 기획단’이라 기존 사업과 새로운 정책이 연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도서관과 박물관이 담당하던 역할에 ‘인문정신문화’라는 이름만 붙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기존에 도서관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문체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약간의 인문학적 내용만 추가하고 ‘인문 독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는 “현 상황에선 기존에 도서관이 자율적으로 인문학을 활성화하던 역할마저 축소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포럼 참가자들은 ‘인문정신문화정책’의 문제점이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인문학을 ‘인문정신문화’라는 이름 아래 관광, 독서, 여가 등 대중이 소비할 ‘문화 산업’의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성과가 가시화되기 쉬운 사업 위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경제 성장을 달성할 정치적 도구로 취급하는 것도 자율적인 학문으로서 인문학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창은 교수는 자본과 국가 권력이 인문학을 장악하려는 상황에 맞서기 위해 앞으로도 공론의 장을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하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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