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관 교수
정치외교학부

동아시아 평화는 곧 세계 평화의 핵심이다. 동아시아 속에 상승대국 중국과 기존 패권국 미국, 여기에 과거 소련의 위상 회복을 원하는 러시아, 국력 쇠퇴로 불안해 하는 일본까지 있다. 이들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대결과 협력의 역학이 곧 세계정치의 골격이 될 것이다.

금년은 1차대전이 벌어진 지 정확하게 100년이 되는 해다. 권력정치의 전개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은 1차대전 직전의 유럽 정치와 상당히 닮아있다. 1차대전 이전에도 지금처럼 국가들 간에 경제적 상호의존이 깊었다. 그래서 영국의 노만 에인절같은 사람은 경제적 상호의존 때문에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겨우 4년 후에 1차대전이 발발했다. 지금도 중국, 미국, 한국, 일본 간의 상호의존은 상당히 높지만 동시에 긴장도 팽팽하다.

또 한 가지 유사점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 국가의 권력 상승과 하강이 교차하는 전환기적 시점이라는 점이다. 1871년 통일 이후 독일의 상대적 권력은 급상승했다. 반면 19세기 유럽질서를 주도하던 영국의 상대적 권력은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비스마르크 재상은 독일 국력의 상승에 대해 주변국들이 불안해하면서 숙적인 프랑스와 손잡고 자국을 포위하지 못하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 다양한 동맹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다른 나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식민지 경쟁에 끼어드는 것도 자제했다. 그러면서 기민하고 온건한 외교로 현상유지 정책을 펼쳤다.

문제는 젊은 새 황제 빌헬름 2세가 1890년 비스마르크를 해고하면서부터였다. 입이 거칠기로 유럽 군주들 중에 제일이었다는 그는 외교정책도 강성으로 나갔다. 주변국들을 달래서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한 독일의 힘과 위상을 인정받기 원했다. 비스마르크가 구축해놓은 동맹의 네트워크도 하나씩 깨버렸고, 해군력 경쟁에 나서면서 당시 패권국 영국을 정면으로 자극했다. 그 결과 유럽정치는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양극화되면서 양 진영 간에 긴장이 고조되었고 결국 1914년 6월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1차 대전이 발발했다.

한편 오늘날은 어떤가? 1991년 소련 붕괴와 냉전 해체가 미국을 단극 국제질서의 최정상에 올려놓았다면 2008년 세계경제위기는 미국을 그 최정상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미국은 이제 다극 국제질서의 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상당 기간 미중관계가 주도하는 다극질서일 것이다. 상대적 경제력은 하강하고 있으나 아직도 미국의 군사력은 중국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판단이었다. 그들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미국 패권시대 종말의 시작으로 판단했던 듯하다. 그것은 2010년 즈음에 중국이 갑작스레 보여주던 공세적 외교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2009년 말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상에서 중국은 개도국을 이끌고 미국에 도전했고, 2010년 위안화 절상, 달라이라마 미국 방문, 대만 무기 판매 문제 등에 대해 전례 없이 강하게 나왔다. 이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놀라워했다. 물론 2010년 말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중국은 평화발전 노선을 지속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강성외교의 톤을 다소 낮추었다. 그러나 중국은 작년 연말 동중국해에서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올해 초 남중국해 진입 외국 어선들의 신고 의무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공세외교의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중국 외교는 과거 1890년 이후 독일 외교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독일의 빌헬름 2세가 그러했듯이 중국은 주변국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주변국들이 포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미국은 중국의 공세적 태도에 자극받아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며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일본은 보수우경화하면서 미일동맹과 호주, 필리핀 등과 국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나아간다면 과거 영국과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1세기 전 역사의 악몽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의 실마리는 아마도 미중간의 정치적 대타협일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상승 경제력을 인정하고 국제경제 영역에서 중국의 대표권을 확대시켜주고, 양안 관계 개선을 감안하여 대만에의 무기 판매를 줄이면서 중국에 긍정적 시그널을 보낼 필요가 있다. 대신 중국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안보영역에서의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미중간의 군사대화 채널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미중 타협을 시작으로 여기에 러, 일이 포함되는 다자적 협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중 양국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역량이다. 무엇보다 미중관계를 대결적 관점에서 보는 군부나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을 통제할 리더십과 새로운 국제질서의 틀을 짤 전략적 비전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다.

이 같은 세계질서의 전환기적 시점에서 한국은 평화와 통일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북한의 불안정은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좀 더 적극적인 경제개혁과 개방이 필요한데 주민에 대한 정치적 통제 능력 약화가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대신 핵과 미사일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을 동맹국으로 중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결국 한미동맹은 동맹대로 발전시키면서 한중협력 관계도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10여 년 전 유행했던 미국이냐, 중국이냐 둘 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한다는 식의 단순논리는 외교의 하책(下策)이다. 양 대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주장 또한 소극적인 소국적(小國的) 발상이다. 균형이 아니라 양국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품어 안는 중첩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만일 서독이 동맹국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 잡는 외교를 하겠다고 나섰더라면 통일이 가능했을까?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에 대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도, 마음 터놓고 통일 협상을 할 정도의 소련과의 신뢰관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제는 세계 14위 선진국이라면서 외교를 보는 시각은 50년 전 개도국이나 구한말의 피해의식과 소국의식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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