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은 지상파 방송 위주의 독과점 공급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차원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방송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종편이 출범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종편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스스로 종합편성을 포기했다. 방송 콘텐츠의 질적 측면에서도 약속했던 투자계획과 달라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많고 많은 채널 중 4개에 불과하지만 방송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지 않은 종합편성채널. 종편의 출범부터 재승인까지, 종편을 둘러싼 문제를 짚어본다.

방송생태계와 종편의 등장

방송생태계의 주된 주체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다. 지상파PP(KBS·MBC·SBS)는 보편적 접근성과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 확보를 위해 종합편성의 의무를 진다. 원칙적으로 유료방송 PP(케이블TV·위성방송·IPTV)는 CBS(기독교), 엠넷(음악&버라이어티)처럼 전문적인 편성만 가능하지만, 종편 PP(TV조선·JTBC·채널A·MBN)는 지상파와 같이 뉴스 보도를 비롯한 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다룰 수 있다.

종편이 등장하기 전인 2001년, 상호 경쟁을 통한 방송산업의 발전을 위해 허가제였던 PP설립이 등록제로 변경됐다. 그러자 방송생태계는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됐다. 신규 PP들의 시장 진입이 자유로워지자 PP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하나의 사업자가 복수의 PP를 운영하는 것도 허용됐다. 자본의 힘으로 경쟁과 인수·합병을 거듭해 몸집을 불린 일부 사업자는 계열화를 이뤘지만 중소PP들의 상황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결국 2010년에 들어서 방송생태계는 지상파와 일부 대기업 계열사가 90% 이상의 채널을 장악하는 독과점 상태에 이르렀다.

종편은 이러한 방송 공급의 독과점 상태를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등장했다. 2010년 정부는 방송 콘텐츠의 독과점 공급 구조를 극복하고 방송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종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해 7월, 국회에선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사 지분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미디어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됐다.

2010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 사업자 선정 기준과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종합편성 방송 사업자가 되기 위한 장벽은 높았다. 기준 중에는 납입금 3천억 원이 조건으로 걸려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정도 역량은 있어야 종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신문사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로 대표되는 대형 신문사에 그쳤다. 그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4개의 종합편성채널사용 사업자(TV조선, JTBC, 채널A, MBN)를 선정했다.

특혜로 키워온 종편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기=2011년 12월 1일, 종편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출범했다. 출범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종편은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과감한 시도를 보였다. 정부는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종편에게 지상파(6·7·9·11번)와 근접한 황금채널(15·16·18·19번)을 배정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했고 종편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출범부터 2012년 11월까지 종편의 평균 시청률은 0.54%였다.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1%대에도 못 미친 것이다.

종편이 시작부터 좌초 위기에 놓이자, 정부는 종편에게 여러 가지 예외를 인정했다. 종편이 가진 대표적인 예외적 지위는 의무재전송 채널로 선정된 것이다. 의무재전송은 KBS1, EBS와 같이 공익성이 강한 채널을 케이블 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재전송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종편이 공공성을 위한 채널이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다른 케이블 사업자에게 종편 프로그램을 재전송하도록 했다.

종편은 방송사의 대표적 수입원인 광고 측면에서도 특혜를 받고 있다. 하루 19시간으로 방송시간을 제한받는 지상파에 비해 종편은 24시간 내내 방송이 가능하다. ‘60초 뒤에 뵙겠습니다’로 대표되는 중간광고 역시 허용됐다. 광고 금지 품목, 공익광고 비중도 종편은 축소 적용된다.

광고 영업방식에 있어서도 종편은 예외적이다. 뉴스를 할 수 있는 채널이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서면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에서 부당한 압력이 오갈 수 있다. 이를 막고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서 ‘미디어렙’이 있다. 미디어렙은 방송사에게 위탁을 받아 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역할을 한다. 방송사 입장에선 중간 판매자를 거치게 되니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편은 뉴스를 포함한 채널임에도, 정부는 종편 4사에게 각각 미디어렙을 운영하도록 해 사실상 광고의 직접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종합편성이 없는 종편=TV 프로그램을 세 장르로 나누면 크게 보도, 교양,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유료방송과 달리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시청할 수 있는 지상파는 종합편성이 의무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가 프로그램 장르를 골고루 방송하도록 관리 감독하고 있다. 방송법시행령에 따르면 지상파의 의무편성 비율은 보도, 교양 및 오락 방송 프로그램이 상호 조화를 이루도록 편성하되, 오락 방송 프로그램만은 전체 방송시간의 50% 이하로 편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JTBC를 제외한 종편은 종합편성이라는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 종편 4사의 지난해 보도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TV조선이 48.2%, 채널A 43.2%, MBN 39.9%, JTBC 14.2% 순이었다. JTBC를 제외하고는 출범 당시의 편성계획(TV조선 24.8%, 채널A 23.6%, MBN 24.3%, JTBC 23.2%)을 크게 넘어 종합편성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종편이 시사 토크 프로그램 중심의 보도 영역에 편중하는 이유는 종편의 콘텐츠 투자액이 출범 당시의 사업계획에 비해 미미하기 때문이다. 패널들을 발언대에 초대하는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제작비를 적게 들이고도 패널들의 자극적인 말을 앞세워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 삽화: 이예슬 기자

◇막말·편향적 방송 논란=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종편은 2011년 12월 개국부터 지난해 7월까지 부적합한 방송으로 인한 주의, 경고를 각각 36차례, 33차례 받아왔다. 방송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는 12건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징계 수단이었던 시청자 사과 역시 2건에 달했다. 특히 품위유지 조항 위반이 심의규정 위반 사유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여론의 다양화라는 취지와 달리 종편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 야당 인사에 대해서는 ‘젖비린내’, ‘싸가지 없는 며느리’, ‘종북 인사’ 등 원색적인 비난을 여과 없이 방송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아우라’, ‘눈이 살아 있다’ 등 칭찬으로 일관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에게 내린 법정제재는 2012년을 통틀어 42건이었지만 2013년엔 7월 말에 이미 42건의 제재를 받았을 만큼 종편의 막말·자극적 방송은 악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종편이 미치는 영향력

종편은 수백 개 채널 중 4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지 4개의 종편 채널은 예외적 지위를 가지고 방송생태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광고시장의 한정된 파이=방송생태계의 주 수입원은 광고 시장이지만 그 규모는 3조 원 정도로 한정된 상황이다. 방송 광고 시장의 한정된 규모 중에서 지상파 계열이 35%, CJ계열(CJ E&M)이 3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 외의 모든 사업자는 나머지 35%를 위해 싸우고 있다. 크기가 정해진 파이를 둘러싸고 방송생태계 주체들은 약탈적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종편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방송생태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방송생태계 내 다른 주체가 그만큼 타격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킬러 콘텐츠를 갖고 있는 지상파와 이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CJ계열을 종편이 단시간에 극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배려는 종편의 성장을 크게 도왔다. 종편이 황금채널을 배정받으면서, 기존에 해당 채널에 위치한 중소PP들은 밖으로 쫓겨나 고사 위기를 맞았다. 종편이 누리는 ‘광고 특혜’는 다른 사업자들의 출혈을 동반하고 있다. 2013년 1월~9월 종편 4사의 광고매출은 1,606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1,242억 원) 29.3%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지상파 방송의 광고매출이 같은 기간 동안 662억 원 감소했다.

한편 최근 방통위가 추진하는 ‘KBS 수신료 인상’은 한정된 파이를 종편에게 몰아주기 위한 특혜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신료 인상안은 KBS의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해 KBS의 광고를 줄이고 모자란 돈은 수신료 인상으로 메우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줄어든 KBS의 광고 수입 2~3천억 원이 시장에 풀리게 된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 이희완 사무처장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특정 사업자의 어려움을 일단 해결하고, 남는 돈으로 중소PP의 불만까지 잠재우겠다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물을 흐리는 종편의 콘텐츠=종편의 자극적인 방송은 지상파를 비롯한 다른 방송에도 영향을 준다. 케이블TV의 ‘19금 유머 코드’를 내세운 tvN의 ‘SNL코리아’, JTBC의 ‘마녀사냥’과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지상파로서는 이들과 함께 선정성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KBS의 ‘안녕하세요’ 프로그램은 얼마 전 ‘성인들만을 위한 사랑 특집’이라는 첫 19세 미만 시청금지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지상파가 종편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포맷을 따라가고 있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이희완 사무처장은 “최근 KBS가 오후 시간대에 시사 대담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로 했는데 이는 종편에서 채널의 구미에 맞는 출연자를 섭외해 방송사의 입장을 강조하는 통로로 악용돼온 형식”이라며 “지상파 역시 종편에 맞춰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초라한 성적표와 재승인

출범부터 지금까지 특혜·편파성·자극성으로 구설수에 올라온 종편은 출범 2년 4개월 만에 재승인을 받기 위한 심판대에 섰다. 방송사업자에 대한 사업허가 기간은 3년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종편의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종편의 성과와 영향력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내보냈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한두 곳은 재승인 과정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밝히자 국민들은 방통위가 종편의 성과와 과실에 대한 정량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재승인 심사위원의 구성에서부터 편파성 논란이 불거졌다. 전체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 15명 중 야당 추천 위원은 고작 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2명은 여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그 밖에도 TV조선에서 공정보도특별위원으로 활동한 인물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이해관계가 얽힌 인사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논란이 일었다.

2년 4개월간 종편이 남긴 정량적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고품격 방송을 만들겠다는 조건으로 허가받은 종편은 약속했던 투자 계획을 절반도 이행하지 못해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까지 받았다. TV조선은 사업 계획상 1,575억 원을 투자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604억 원에 그쳤다. 투자액이 가장 많은 JTBC역시 2,196억 원이라는 목표에 미달하는 1,129억 원에 그쳤다. 종편 4사의 2012년 영업적자 규모는 3,097억 원에 달한다.

콘텐츠 투자가 줄어든 만큼 프로그램의 재방송 비율은 상승했다. TV조선은 56.2% 재방송비율로 당초 계획(23.8%)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JTBC 역시 62.2%의 재방송비율로 사업 계획의 16.9%를 크게 웃돌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종편은 아예 사업계획서를 변경해 제출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앞으로 보도프로그램 비율을 오히려 더 높이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써냈다. ̒보도전문 종합편성̓ 채널이라는 모순적인 채널이 탄생한 것이다.

방통위 역시 당초 연구반이 제시한 기준보다 심사 기준을 완화했다. 재승인 기준에서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공익성의 실현 가능성,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 계획의 적정성에 대한 과락 기준을 만점의 60%에서 50%로 낮췄기 때문이다. 원래 기준대로라면 TV조선(57%)과 채널A(55.3%)는 탈락 대상이다.

재승인 심사에 대한 공정성 논란 속에서 지난달 19일 방통위는 종편3사(TV조선, JTBC, 채널A)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했다. 뒤늦게 출범한 MBN에 대한 재승인 심사는 올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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