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직 교수
서양사학과

남북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파격적인 발언으로 시중의 관심을 모은 박 대통령이 얼마 전 독일 방문에서는 독일 통일을 한반도 통일의 모델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세기말 40여 년의 분단을 그야말로 ‘일순간’에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한 독일의 사례에서 남북한 통일에 대한 의지와 신념을 다지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독일 통일을 통일 대박의 성공 사례로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오히려 분단의 극복과 통일에는 미처 예상할 수 없고,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커다란 어려움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데 있다.

독일 통일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다. 통일 이후 지금까지 독일 정부는 동독의 경제 재건에 연평균 100조 원, 총 2,000조 원 이상의 공공재정을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그 성과는 제한적이다. 생산성, 실업률, 소득과 생활수준 등에서 동서독 간에는 여전히 상당한 격차가 남아 있다. 통일과 함께 동독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단기간 내 경제적 통합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던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이 새로운 ‘개척지’에 쇄도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국가의 빚으로 통일비용을 조달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갈수록 늘어나는 통일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결국 증세에 나섰다. 통일비용을 국민이 ‘분담’하지 않고는 ‘분단’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직시한 것이다. 통합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였지만 그래도 통일 당시 동독경제는 동유럽사회주의권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현재 북한은 지구 상 최빈국 집단에 속한다. 삼사십 배에 달하는 남북한 경제의 격차는 서너 배에 불과한 동서독의 경우와 비교가 안 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독일 통일에서 경제적 통합보다 더 눈여겨 보아야 할 문제는 동서독 주민의 사회적 통합이다. 통일 이후 근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동서독 주민들은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있다. 양 지역 주민들을 갈라놓는 정신적, 심리적 벽 때문에 독일은 여전히 분단된 나라라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분단시대 동서독 간에는 무력 충돌이나 적대행위가 없었고, 주민들 간 상호 왕래가 가능하였다. 남북한은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을 경험하였고, 여전히 첨예한 이념적 갈등과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를 겪고 있다. 70여 년간 철저히 단절되어 살고 있는 남북한 주민이 말과 생김새가 같다는 것 외 서로에 대해 아는 바는 아무것도 없다.

독일 통일 과정의 어려움이나 한반도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해서 남북한 통일을 포기하고 체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독일의 통일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오늘날 독일은 통일 이후 한동안 이어진 혼란과 위기에서 벗어나 막강한 경제력을 토대로 유럽통합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뒤돌아보면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통일 자체는 잘한 결정이었다. 통일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던 1990년대 후반 여론조사에서도 80%가 넘는 압도적 다수가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독일 통일 직후 소련에서 나타난 변화, 즉 동독의 서독 편입을 용인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고려하면 독일의 통일은 분명 ‘글뤽스팔(행운)’이라 할 만하다. 독일 통일은 국제정치적으로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것이었고, 만약 당시 결단을 주저하였더라면 이후 통일의 기회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설혹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통일에 대한 꿈은 접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독일 통일의 또 다른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일 여부가 아니라 통일에 대한 준비가 문제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가슴’ 아울러 ‘차가운 머리’이며,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 대신 역경을 헤쳐 갈 ‘땀과 눈물’에 대한 호소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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