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근 박사 수료
철학과

널리 알려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마무리 짓는 제7항의 명제이다. 이에 소설가 이만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하지만 일단 언어를 통해 진실을 담아내려면 진실에 이를 때까지 언어를 정밀하고 명료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또한 침묵해야 한다.”(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234쪽) 시사해주는 바가 많은 덧붙임이다. 과연 언어에 진실을 담아낸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더 나아가 그러한 진실을 표현할 언어가 있는지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이 문장의 원문은 “What we cannot speak about we must pass over in silence.”이고, 한 번역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영철) 이 문장은 ‘must’가 지니는 의무의 어감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중의 부정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 번역을 받아들이기 전에 과연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 한 예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가결된 참석 대의원에 대한 거마비(교통비) 지급건 ‘논란’을 들고 싶다. 『대학신문』에서는 ‘전학대회의 ‘거마비’ 예산안 가결을 우려한다’(2014년 3월 23일)라는 사설로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 사설은 참여를 돈으로 보상하려는 발상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거기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일종의 충고를 덧붙였다. 그러나 과연 “학생자치 활동에의 참여는 자발적인 권리이자 학생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이지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을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되어야 했던 것일까.

이 건은 D포털 사이트의 탑뉴스가 되면서 사회적으로도 알려졌다.( ‘서울대 학생대표회의, ‘거마비’ 지급 논란’, 「뉴시스」 2014년 3월 18일자) 그리고 얼마 후 유력 일간지에 반응을 전하는 기사가 다시금 등장했다.(‘회의 참석하면 ‘거마비 5만원’…서울대 학생 대표들 교통비 논란’, 「한겨레」 2014년 3월 25일자) 이러한 기사들이 이 건을 ‘논란’이라 전하고 있다면, 그것은 함께 생각해볼 어떤 것이라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대학신문』에서도 위와 같은 선언을 통한 봉합이 아니라, 보다 가열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시도를 했으면 어떨까 싶다. 물론 이보다 앞서 전학대회에서 제출되기 이전에 이 안건을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언제나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포기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의 저 명제는 ‘pass over’가 강조되어,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으로 지나쳐 가야만 한다.” 또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 속에서 불문에 부쳐야만/묵허해야만 한다.”와 같이 옮겨질지도 모른다.

그리된다면, 우리는 그 어떤 문제틀도 ‘함께’ 결정하지 못한 채 침묵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함께 반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자, 과연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고 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내뿐만이 아닌 바깥의 사회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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