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좌)
양자혁명: 양자 물리학 100년사(우)

과학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인 시대이지만, 개인은 생물학과 같은 인간에 대한 지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 지식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 지식은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인과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기존 인식 기제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 도전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꾼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두 기둥 중 하나로 여겨지는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어떤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을까? 고전물리학에서는 관찰자의 관측 여부가 자연의 물리 법칙이나 관측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이런 가정을 유지할 경우 미시세계의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관찰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연법칙이나 관측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방식의 설명은 물리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문임에도 양자역학은 직관적인 인식과 차이가 있는 탓에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고 싶지만 세상을 설명하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먼저 『양자혁명: 양자물리학 100년사』의 저자 만지트 쿠마르는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소개하는 대신 양자물리학 100여 년의 역사에서 나타난 주요 논쟁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만지트 쿠마르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양자물리학의 시작점이라 여겨지는 1900년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 발표부터 당대의 물리학계, 물리학자들 간의 상호작용, 당시 사회적 상황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현대 과학의 거대한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양자이론은 20세기 초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들 간의 이견과 토론을 기반으로 발달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물리학자들의 회의 중 가장 유명한 회의인 ‘1927년 5차 솔베이 학술회의’에서의 치열한 논쟁을 들 수 있다. 그 논쟁의 한편에는 덴마크 과학자 닐스 보어를 비롯한 양자이론 찬성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시세계의 현상들을 흔히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코펜하겐 해석에는 상보성 원리, 불확정성 원리 등 여러 주장이 융합돼 있는데, 먼저 ‘상보성 원리’란 양자계에서 모든 물리적 대상들은 입자로서의 속성과 파동으로서의 속성을 상보적으로 가진다는 의미다. 이전까지 빛은 파동으로 간주됐지만 아인슈타인은 광양자설을 통해 빛이 입자의 성질도 가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나의 물리적 대상이 이전에는 상호배타적 특성으로 여겨졌던 두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은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보어는 두 속성 모두 빛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며 어떤 실험을 통해 빛을 관찰하는가에 따라 파동 또는 입자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또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관측이란 행위 자체가 대상에 영향을 미쳐 물리적 대상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당시 널리 퍼져있던 ‘물리적 요인들을 모두 파악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 시각의 전제를 부정했다. 즉 어떤 현상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도 단지 확률적 예측을 하는 것 이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과적 세계관을 견지했던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보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와 같은 물리학자들 간의 상호작용은 양자물리학 100여 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과학자들의 인생, 그들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조금씩 그들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사적 논쟁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 독자들이 양자역학의 논리적 핵심을 간파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의 저자 한스 라이헨바흐는 앞에서 언급한 양자이론의 쟁점들을 철학적으로 명료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한스 라이헨바흐는 ‘논리경험주의’라는 철학적 운동을 이끈 과학철학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양자역학을 분석하기 어려운 많은 독자에게 철학 특유의 분석 방법을 통해 양자역학에 접근하는 라이헨바흐의 저작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머리말에서 “물리학자 본인도 과연 자신의 연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식적으로 돌이켜보고자 할 경우, 물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양자역학의 철학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양자역학의 철학이 모호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거나 부당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물리학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물리학의 철학은 물리학 그 자체만큼이나 간결하고 명료해야 한다”며 자신의 작업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책은 크게 일반적 고찰, 수학 개관, 해석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일반적 고찰과 해석 부분은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아 비교적 이해가 용이하다. 그의 핵심 주장은 책의 첫 부분인 일반적 고찰에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서는 양자역학의 중요한 요소인 불확정성 원리 등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다룬다.

저자가 지적한 양자역학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고전물리학이 인과 법칙을 바탕으로 한 반면, 양자역학은 확률 법칙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라이엔바흐는 책의 1부를 이 사실의 철학적 해석에 할애했는데, 그는 ‘횡단 법칙’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불확정성 원리를 설명한다. 몇몇 물리량들은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는데, 이렇게 물리량 간에 일종의 결합을 갖는 상태를 ‘횡단 법칙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물리량 간에 연결 관계가 없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두 물리량 간의 결합이 존재한다면 관측 결과에서도 두 물리량은 독립적일 수 없다. 이렇듯 횡단 법칙을 가지는 물리량 간의 관계들 중, 한 물리량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다른 물리량의 정확도가 낮아지는 관계를 ‘역상관 관계’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밝힌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 간의 횡단 법칙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특정한 확률 이상의 확실한 예측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과 법칙에서 확률 법칙으로의 인식론적 이행이 일어난다.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의 번역은 아직까지 양자역학을 세밀하게 철학적으로 분석한 국내 서적이 없던 상황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기존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은 철학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2012년 일본 연구팀에 의해 불확정성 원리의 식이 수정되는 일이 있었다. 이는 관측 기술의 발달을 통해 양자역학이 지속적으로 수정될 것임을, 세계를 물리학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신의 주사위 놀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두 책이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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