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115명, 한양대, 서울대 각 110명, 연세대, 고려대, 경북대 각 100명…’
지난 1월 삼성이 발표한 채용제도 개편안에 한국 사회가 술렁였다. 삼성이 대학 총장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대학별로 총장이 추천할 수 있는 인원을 할당해 각 대학에 통보해 온 것이다. 결국 삼성은 거센 여론의 반발에 밀려 채용제도 개편안의 시행을 무기한 유보했지만 이번 논란은 대학에 대한 기업의 입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은 이유

중앙대의 재단이었던 김희수 재단은 ‘천 원 재단’으로 불렸다. 재단이 대학 운영을 위해 학교에 달랑 천 원을 재단전입금으로 지급해 온 탓이다. 재단의 부실은 곧 대학 운영의 부실로 이어진다. 일본의 부동산 재벌이었던 김희수 재단은 경기 침체로 자금력을 상실해 중앙대의 낙후된 건물과 7백억 원의 부채를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대 구성원들은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자 기대감에 부풀었다.

사립대학은 대기업 재단이 대학 재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기업의 대학 경영 참여를 필요로 한다. 2012년도 기준으로 사립대는 대학 재정 중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16%에 불과해 대학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따라서 재단이 부실한 사립대의 경우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재단을 인수해줄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게 된다.

성균관대 역시 재단을 운영하던 봉명 그룹이 1991년 부도를 맞자 1996년 삼성그룹을 재단으로 선정해 지금까지 1조 원이 넘는 전입금을 지원받았다. 성균관대와 중앙대는 대기업 재단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건설 투자와 연구 지원을 실시했고, 이들의 대학 평가 순위는 5단계 이상 상승했다. 이는 다른 사립대가 대기업을 재단으로 유치하는데 뛰어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대학의 경영 참여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대학의 재단이 되는 경우 여러가지 유무형의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은 교육 사업을 운영함으로써 사회 공헌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재단에 기부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법인세가 감면돼 세금 절감 혜택도 누리게 된다. 이 외에도 재단으로 참여한 기업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건설 공사를 계열사에 몰아주거나 신축 건물에 입주한 업체로부터 고액의 임대료를 받는 방법 등으로 부수적인 이익을 얻기도 한다.

기업가의 방문

기업이 인수한 대학을 중심으로 시장 논리가 유행하고 있다. 기업은 사립대 재단을 인수하면서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기업은 매년 재단 전입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총장 임명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고, 그룹의 직원이나 임원을 이사로 파견해 대학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 명분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개혁의 추진력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의 기업식 개혁에 대해 반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어독문학과)는 “총장 임명제는 학내 민주주의의 후퇴를 의미한다”며 “이사회에 의해 임명된 총장은 재단과 이사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정작 대학 운영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교수와 학생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사회와 총장 임명에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기업은 대학의 최고 의결권과 운영권을 손에 넣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은 선호에 따라 일부 학과를 통폐합하고 특정 학과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실제로 중앙대는 얼마 전 학과 통폐합으로 또 한 번 홍역을 앓았다. 학교 측이 지난 2010년 어문계열 학과의 학부제 통폐합에 이어 작년엔 비교민속학과와 아동복지학과를 비롯한 인문사회계열 4개 학과에 대한 통폐합을 결정한 것이다. 학교 측은 통폐합의 명분으로 대외경쟁력 있는 학과와 국제 사회가 선호하는 인재의 육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앙대 구성원들은 학교가 단순히 기업의 선호를 좇아 경영대를 확대 재편하기 위해 타 학문을 홀대하고 있다며 여전히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초학문의 교원 충원 및 지원에는 소홀해졌지만, 경영학이나 공학 등과 같이 기업에 취업할 인력을 양성하고 의대와 병원과 같이 직접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분야에는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삼성은 성균관대를 인수하면서 반도체시스템공학과와 휴대폰학과(현 IT융합학과) 등을 개설했고, 약 1천억 원의 재단전입금 중 60% 이상을 해당 학과와 의대 및 병원 운영비를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중앙대 역시 교양교과목을 절반가량 축소하는 와중에도 회계학 교양과목인 ‘회계와 사회’를 졸업 필수 과목으로 선정하고,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과 개편을 단행해 경영대의 정원을 늘렸다.

이 같이 기업가 정신에 의한 대학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재단과 학교가 학내 여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환 교수(성균관대 동양철학과)는 “이미 삼성이 들어올 당시 구성원들이 알아서 기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학생회는 성격이 전환됐고 직원노조는 비판적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기업의 학내 여론 통제는 학교의 총학생회 선거 개입, 재단과 학교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교수에 대한 임용 거부, 자치 언론 탄압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작년 말 성균관대 총학생회 선거에선 학교 측이 단독으로 출마한 비운동권 선본의 당선을 위해 투표소에서 간식을 제공하는 등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확연히 대조되게도 기업재단과 총장, 학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중앙대의 진중권 교수와 성균관대의 류승완 박사는 뚜렷한 이유 없이 재임용이 거부되거나 강사직을 박탈당했다. 성균관대 학보 「성대신문」은 류승완 박사 해고 통보에 대한 기사를 내려다 결호 조치를 당했고,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는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당했다.

기업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비단 기업이 인수한 대학에서만 대학의 기업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의 대학평가가 대학으로 하여금 기업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기업 의존도를 높이도록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률 등의 정량적 지표를 중심으로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의 대학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정 지원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들은 정부 지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취업률과 연구 성과가 높은 학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또 정부의 재정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학은 기업이 제공하는 자금 지원을 마지막 보루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부응 교수(중앙대 영어영문학과)는 “정부의 방침은 기업의 구미에 맞게 대학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는 대학 교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사립대는 주된 자금의 공급자인 기업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문제 있는 사립대에 정부의 자금을 투입해 공립 내지 준 공립으로 대학 체제를 재편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립대학의 비중을 높여 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안적 대학 모델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작년 11월 김세균 명예교수(정치외교학부) 등이 창립한 ‘지식순환협동조합 노나메기 대안대학’이 대표적이다. 노나메기 대안대학은 협동조합인 만큼 조합원이 납부하는 출자금과 조합비, 강의 수강료로 운영된다. 따라서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조합원들 간 협력을 통해 집중적인 기초 교양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자본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업으로부터 대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켜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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