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최근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음식에 열광하고 있다. TV를 켜면 「식샤를 합시다」, 「야간 매점」과 같이 음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인터넷엔 아프리카TV의 ‘먹방’이나 맛집을 추천해주는 블로그가 넘쳐난다. 이런 ‘음식의 홍수’ 속에서 문화적인 맥락을 찾아 글로 엮는 사람들이 맛칼럼니스트다. 이들은 왜 이 음식이 유명해졌는지,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통해 밥상에 오르는지에 대해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녹여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맛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인물은 황교익 씨다. 그는 『맛 따라 갈까 보다』, 『서울을 먹다』와 같이 향토음식의 기원을 추적하고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모은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또한 각 분야의 달인을 보여주는 TV프로 「생활의 달인」에서 맛집 평가위원으로 출연하고 시사와 요리를 결합한 팟캐스트 ‘밥 한번 먹자’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런 그를 팟캐스트 ‘밥 한번 먹자’를 촬영하는 탁현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파마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인터뷰 내내 안경 너머로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음식에 주목하다= 국내 최초의 맛칼럼니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음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 꽤나 쓴다’는 소리를 들어와 고등학생 땐 막연하게나마 시인이나 평론가가 되기를 꿈꿨어요. 한편으론 세상엔 이미 뛰어난 시인과 평론가가 많으니까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이런 고민을 안은 채 그는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여러 언론사에 낙방하다 우여곡절 끝에 「농민신문」에 입사해 ‘글쟁이’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곳에서 그는 주로 농산물이 생산·판매되는 과정이나 농업 정책에 대한 글을 썼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기사에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려니 기사에 현장감이 없었어요.

문득 농산물 자체가 아닌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그는 91년도에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가면서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라 하면 요리법을 소개한 책이나 방송 정도였다. 반면 일본은 요리대결과 같은 TV예능이나 만화『맛의 달인』이 인기를 끌고 ‘전 국민이 음식 평론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음식에 관한 기사를 쓰겠다는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집사람한테 밥 먹다가 ‘나 이제 음식 전문기자 될 거야’하니까 비웃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자는 없었거든.”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잘될 것이라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다져나갔다.

◇맛칼럼니스트가 되다= 황교익 씨는 “당시엔 음식에 대해 정리된 자료가 거의 없어 이 분야를 개척하다시피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겨울 새벽 4시에 바닷가에 있는 수산경매장으로 찾아갈 만큼 열정적으로 기삿거리를 모았다. 음식에 관한 기사라곤 원고지 3, 4매 정도로 맛집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시절, 그는 음식과 관련된 모든 현상에 “왜?”라는 물음을 던졌다. ‘딸기를 딸 때는 왜 검지와 중지사이에 딸기를 집어서 딸까?’와 같이 사소한 부분에도 의문을 가졌다. 그는 언양 불고기에 관한 기사를 준비할 때를 떠올렸다. “왜 하필 ‘언양’에 불고기 집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내려고 1박 2일 동안 유명한 불고기 식당들을 돌아다녔어요. 이틀 동안 먹은 불고기만 10판 이상이야. 아침부터 밤까지 쇠고기만 주구 장창 먹어봐. 한 달 동안 고기 냄새도 맡기 싫어.” 취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소 사육 농가와 도살장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단순한 맛집 안내서가 아닌 이렇게 발품을 팔아 모은 정보로, 음식의 연원을 다룬 그의 기사는 많은 호응을 받았다.

생생한 취재를 위해선 취재원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했다. 그는 향토 음식에 대한 글을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하면서 농민과 접촉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농촌현장을 취재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농민들 중에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아 인터뷰를 요청해도 잘 대답해 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 경계심을 무너뜨려야 진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농민의 옆에 바짝 붙고, 같이 밭에 퍼질러 앉아 수다도 떨고 마을 근처도 둘러보다 보면 이분들이 그래요, ‘어? 아직도 안갔어요?’ 처음엔 경계하던 분들이 나중엔 밥 같이 먹자고 부르기도 해요. 그렇게 취재원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거죠. 카메라는 절대 처음부터 들지 않아요. 그 사람하고 친밀해졌다는 판단이 들 때 들어야지.”

발로 뛰는 취재도 중요하지만 음식 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도 필수다. 최근엔 인터넷 블로그에 맛집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전문가로서의 차별성을 주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고등학교 농업교과서를 독학하고,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지 알기 위해 생리학, 신경과학 영역까지 공부해야 했다. 가령 사람들이 매운 맛에 끌리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선 ‘캡사이신’이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캡사이신이 입안에서 통각을 자극하면 몸에서는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게 되니 사람들이 매운 맛을 즐기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맛’을 향해=그렇다면 맛칼럼니스트가 말하는 ‘맛있다’란 무엇일까? “식재료가 본래 갖고 있는 특징들을 잘 드러낸 음식이 진짜 맛있는 음식이에요. 요리는 완전히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에요. 요리사는 식재료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만 살짝 제거해 입에 들어가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지. 먹으면서 ‘야 봄이네’ 하는 식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그는 신선한 식재료를 제철에 먹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어떤 식재료든 가장 맛있는 순간이 있어요. 이 타이밍들을 아는 것만으로 1년 내내 행복해질 수 있지. 제철에 맞게 먹으려 하면 자연을 알게 돼. 쑥은 싹이 막 나서 바닥에 딱 붙어있을 때가 가장 맛있는데 이걸 알면 쑥이 나왔는지 대가 올랐는지 쳐다보고 기다리게 된다고.”

벚꽃이 한창 피고 이제 조금씩 지고 있는 시점이다. 요즘 맛있는 음식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빙그레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보통 11, 12월에 굴 구이 집에 많이 가는데 그땐 살이 덜 찬 상태야. 사실 벚꽃이 한창일 때가 굴속이 탱글하게 차있을 때에요. 근데 딱 이 며칠이 지나면 쇳내가 나서 못먹어.”

“대중과 소통을 하면서도 전문적인 부분을 잃지 않는, 그 접점을 찾는 게 목표다”고 말하는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황교익 씨가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맛깔스런 단어는 대중이 음식을 즐겁게 탐험할 수 있게 한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더 넓은 맛의 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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