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식 교수 역사교육과
서의식 교수 역사교육과

대학생에게는 긍정하고 수용하기보다 부정하고 비판하는 사고방식이 더 요구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무조건 이해하려 애쓰고 그대로 암기해버리는 학습 형태를 몸에 익혀온 터라서 더더구나 그렇다. 그러나 부정하고 비판해보라 하니 이마저도 그대로 외워서, 이게 무슨 최고 지성의 만능의 사고방식인 줄 아는 학생이 있어 걱정이다. 부정만 해서는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지만, 학문적 성숙은 ‘이다’에서 ‘아니다’를 거쳐 다시 ‘이다’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학의 경우, 우리는 일제로부터 근대역사학의 방법론을 배워 실증에 입각한 과학적 인식이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의 정체성(停滯性)과 타율성(他律性)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고, 광복 후에는 이 식민주의사학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그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 실로, 잘못 배운 ‘이다’를 바로잡는 데는 무엇보다 ‘아니다’ 인식이 유효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는 타율적이지 않았고, 정체되지 않았으며, 일선동조론과 임나일본부설, 식민지근대화론은 사실이 아님을 밝힌 것이 그동안 한국사학이 이룬 가장 큰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의 역사학은, 동아시아의 발전 과정은 곧 중국민족의 확대 과정인 동시에 중국문화의 확산 과정이었다고 규정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여러 왕조를 오늘날의 중국과 일치시키고 지금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영토가 본디부터 그러했던 양 주장하며 현재의 중국인을 구성하는 모든 민족이 처음부터 중국민족의 여러 갈래였던 것처럼 인식하는 이율배반마저 서슴지 않았다. 다 알 듯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간주한 이른바 동북공정 역사인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 일본의 역사학은, 동아시아에는 대륙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해양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고대에는 대륙문화로부터 배웠지만, 중세부터는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탈아시아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런 까닭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에 대륙의 패자인 중국과 겨뤄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중국 중심의 문화가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발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입증했다고 한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이겨 동아시아 전체의 발전을 견인하는 주체로서 ‘대동아공영’의 기치를 내걸고 서양 제국주의의 첨병인 러시아를 물리치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했는데,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 전체를 수호하기 위한 이 ‘성전(聖戰)’ 과정에서 설령 몇 가지 사소한 실수가 있었다고 쳐도 굳이 사과까지 해야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인식이 일본 고위층의 잇따른 망언을 가능케 하는 배경이다.

우리가 남의 제언(提言)에 휘말려 ‘아니다’만 외치는 사이에 저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하고 가치를 주장해 왔으며, 또 어떻든 상당히 파급력을 지닌 형태로 발전시켜 온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다’다. 이제 우리도 더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식민사관 극복을 위한 ‘아니다’ 인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우리 민족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입증하는 ‘이다’의 인식으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추구해 온 인류의 보편가치를 드러내 보이고, 고조선을 계승한 여러 나라가 동아시아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 노력해 온 각고의 역정(歷程)을 사실로서 입증해 보여야 한다. 국사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이 협력해서 이 작업을 해내지 못하면 우리는 존재이유를 상실한 채 결국 스러지고 말 것이 틀림없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