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들의 시대'를 추억하며
'논객들의 시대'를 추억하며
  • 대학신문
  • 승인 2014.04.13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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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규 박사과정
언론정보학과

최근 서점에서 스스로를 ‘청년논객’으로 부르는 노정태의 『논객시대』라는 책을 발견하고, 뭔가 알 수 없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등 9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활약해 온 소위 ‘논객들’에 대한 인물론과, 그들이 뛰어들었던 2000년대의 대표적인 논쟁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제목을 봤을 때 느꼈던 이상한 두근거림은 마치 옛 사진을 우연히 봤을 때 느끼는 노스탤지어의 정서와 비슷했다. 막막하고 아련했다.

당신은 논쟁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쟁말고 논쟁말이다. 좋아하는 논객은 있는가? 공식적으로 어떤 입장을 지지하거나 비판해 본 일이 있는가? 정말이지 한국 사회에서 ‘논객의 시대’라 부를 만한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마치 검객을 연상시키듯, 글쓰기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사람들이었다. 얼마간의 허세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에게는 진정성이 있었고, 비장했으며, 숭고하기까지 했다. 물론 때로는 다소 경박하기도 했다.

그들은 안티조선, 촛불집회, 한국사회의 내셔널리즘, 한미 FTA, 청년에 관한 세대론, 페미니즘 논쟁, 자유주의·우익 정권 비판 등 수많은 문제들과 논쟁의 중심에서 글들을 쏟아냈다. 고백컨대, 나는 특히 김규항과 박노자, 진중권의 글을 좋아했다. 내가 만약 노정태였다면 그 목록에 장정일을 추가했을 것이다(미안하지만 ‘보수 논객’ 중에서는 그 목록에 들어갈 만큼 영향력 있었던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그들의 글을 읽으며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노정태와 같은 우리 세대의 많은 동료들이 그들의 글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건 우리 시대의 교양이었다. 우리는 논쟁을 읽고 구경하면서 때로는 질투하거나 욕하고, 때로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그들을 떠올리며 새삼 가슴이 막막하고 아련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노스탤지어가 어떤 상실을 반영한다고 본다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열심히 살았는데 졸업할 때가 되자 ‘88만원 세대’라는 딱지가 붙고,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된 세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여, 닥치는 대로 스펙 쌓고 자기 PR을 해야 하는 세대. 우리는 근사한 사유의 수단이자, 소통의 수단이었던 ‘글’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었던, 소위 ‘지식인’의 풍모가 뭔지 보여주었던 논객들과 논쟁을 잃어버렸다. 그런 여유 혹은 정취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단순히 그럴듯한 말이나 글의 상실에 그치지 않았다. 논쟁을 모르고 논객이 될 수 없는 대학생들은 ‘고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된다. 혹은 너무 빨리 ‘기업가형 인간’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러한 이 시절, 나와 동시대를 보냈던 일군의 청년들이 다시금 논객들의 시대를 연상시키고 있다. 노정태, 한윤형(미디어스), 이승환·임예인(ㅍㅍㅅㅅ), 최서윤(월간 잉여) 같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내공’은 아직 좀 부족할지 모르나, 그들은 온·오프라인의 담론 공간을 근사한 말과 글로 조금씩 수놓고 있다.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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